밤에는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습니다. 그 바람에 과일들이 많이 떨어졌고 악어는 과일을 주워 깨끗이 씻었습니다. 오전에 비구 스님들이 탁발을 왔고 악어는 정성스레 과일들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오후 내내 악어는 유익한 마음들이 일어났고, 때로는 평온하고 때로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탁발오신 스님들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라 감격했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그날 밤 악어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죽었습니다.
전기수는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요소(界) 경(S14:1)을 읽었습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요소들의 다양함인가?
눈의 요소, 형색의 요소, 눈의 알음알이의 요소,
귀의 요소, 소리의 요소, 귀의 알음알이의 요소,
코의 요소, 냄새의 요소, 코의 알음알이의 요소,
혀의 요소, 맛의 요소, 혀의 알음알이의 요소,
몸의 요소, 감촉의 요소, 몸의 알음알이의 요소,
마노의 요소, 법의 요소,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요소들의 다양함이라 한다.”
그동안 전기수는 ‘안,이,비,설,신’ – ‘색,성,향,미,촉’ –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은 조금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의(意) – 법(法) – 의식(意識)’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①눈으로 김철수를 보는데 어릴 적에 같이 뛰놀던 김태홍이 떠올랐습니다.(떠오른 김태홍-법, 김태홍이라고 안 것-의식(意識=마노의 알음알이) ②귀로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마당에 늘어놓은 벼 위를 걷는 아기가 떠올랐습니다.(떠오른 아기-법, 아기를 분별하여 안 것-의식) ③김철수 어머니가 코로 고등어 굽는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병원에 있는 자식 생각이 났습니다.(떠오른 자식-법, 자식이라고 분별하여 안 것-마노의 알음알이) ④혀로 케이크를 맛보며 먹었습니다. 갑자기 우 선생 댁에서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케이크를 먹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떠오른 우 선생님 댁-법, 우 선생님 식구들이라고 분별하여 안 것-마노의 알음알이) ⑤몸에 이상한 나뭇잎이 닿았는데 감촉이 이상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예전에 발로 밟으면 돌아가는 기계로 보리를 타작하는데 형이 몸에 닿는 그 보리 꺼풀의 나쁜 감촉들을 견디며 기계 앞에서 나오는 보리와 다른 티 꺼풀을 분리하면서 일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떠오른 형-법, 형이라고 분별하여 안 것-마노의 알음알이) ⑥‘의-법-의식’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이것이 법이구나, 이것이 의식이겠구나’하는 앎이 일어났습니다.(떠오른 개념들-법, 그 개념들을 알아차린 것-의식)
이제 전기수는 18개 중에서 17개는 개념적으로나마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 의(意)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의란 무엇일까? 무엇을 두고 의라고 하는 것일까?
어느 일요일 오전 김향원은 불교수행반에서 강가에 사는 악어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문하시는 스님이 문제를 냈습니다. 예전에 그 악어는 육내입처 중에서 눈, 귀, 코, 혀, 몸에 대해서는 사색했습니다. 그때 그 악어는 재가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눈, 귀, 코, 혀, 몸이 대상을 알아낸다거나 인식한다고 보는 것도 좋은 의견이시지만, 아비담마적으로 본다면 아래와 같이 생각합니다. ①눈, 귀, 코, 혀, 몸은 그 대상인 색, 성, 향, 미, 촉과 부딪쳐서 감각접촉에 관여한다고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②그리고 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의 부딪힘에 따라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의 알음알이(식), 즉 전5식이 일어나서 대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한다 까지만 이해하면 좋을 듯합니다. ...”
그래서 악어는 눈, 귀, 코, 혀, 몸을 물질로 이해했고,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을 마음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악어는 로봇의 눈과 사람의 눈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했습니다. 즉, 사람의 눈은 식(마음)을 생기는데 조건이 되고, 감각접촉에 참여하고, 감각접촉(촉)을 조건으로 ‘수, 상, 사’가 일어나고, 그 과정에 해롭거나 유익한 마음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그러나 로봇의 눈은 색을 보아도 식(마음)이 생기지 않고 그래서 삼사화합인 감각접촉이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수, 상, 사가 진행되지 않고, 유익하거나 해로운 마음들이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정리했던 것이지요.
자, 법우님들, 그러면 이제 ‘의(意)와 법(法)과 의식(意識)’은 무엇입니까? 다음 주까지 공부해 오십시오.
밖으로 나와 김향원은 양 대리 일행 쪽으로 갔습니다. 송 부장과 회사 동료들이 각자 이해하는 의(意)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김향원은 그냥 한자어 풀이로 의를 마음에서 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말이 모두 끝나자 양 대리가 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노는 한자의 意라고 하기는 무리한 용어라고 하셨는데, 마땅한 단어가 없어 意라고 임시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왕이면 마노라고 하면 좋을 듯합니다.” 김향원은 이제 마노라는 용어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양 대리의 말(아래 포함)은 모두 예전의 ◌◌ 법우님의 댓글에서 인용했음)
양 대리가 계속 말했습니다. “마노는 마음이지만, 다만 감각기관 정도로 하자면, 마노는 3가지 마음(과보마음인 받아들임2, 단지작용만하는 마음인 오문전향)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노가 마음이기에 인식한다고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믄 맞지만, 법우님들께서도 말씀하셨듯, 아비담마적인 분석적 눈으로 보면, 마음을 애써서 안이비설신과 더불어 정신적 감각기관인 마노라고 별도로 배대시킨 것이므로, 마노는 그저 눈,귀,코,혀,몸과 같이 감각기관으로 볼 수 있으므로, 마노와 마노의 대상인 법(전오식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 만났을 때, 76가지 마노의 알음알이가 일어나 법이라는 대상을 인식한다고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갑자기 김향원은 먹먹해졌습니다. 아비담마, 마노의 알음알이라는 말에 마음이 멍해졌습니다. 양 대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김향원은 몰랐습니다. 양 대리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노는 색성향미촉의 5가지 대상이 나타나면 그것으로 마음을 ①전향시켜주어 전오식과 연결해주고, 전오식이 보고,듣고,냄새맡고,맛보고,감촉한 것을, ②받아들여서 조사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와 연결시켜주는 것이라고 단순히 이해하고, 이러한 토대위에서 전개해가면 어떨까하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
송 부장과 다른 직원들은 아, 그렇구나 하며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김향원은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공부하지 않아서 양 대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립도서관에 들러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대출했습니다. 잠시 근처 벤치에 앉아 서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옆 벤치에 어떤 50대의 남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향원이 들고 있는 책을 보고는 머뭇머뭇하다가 말을 건네 왔습니다. 자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누구로 불교를 배우는 재가신자인데 선생님이 들고 계신 책에 이끌려 인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김향원은 오늘 있었던 스님의 법문과 양 대리의 설명을 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전기수는 집으로 돌아와 김향원이 들려준 양 대리의 말을 사유했습니다. 그러고는 서점에서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사서 읽고 인터넷으로 각묵 스님의 아비담마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기수는 생각했습니다. (‘마노-법-마노의 알음알이’에서 마노는 나처럼 배우지 못한 범부는 알고 볼 수 없구나. 그래서 마노를 모르는구나. 그러나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내용으로 이해하면 이해가 되겠구나.) 그래서 전기수는 스스로 여러 가지 비유를 만들면서 마노를 이해해 나갔습니다. 마치 조선시대의 사람이 진짜 신호등의 파란불은 못 보았지만 ‘이런 것을 신호등이라고 하는데 신호등에 파란불이 오면 도로를 건너간다’는 내용을 배워서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있듯이, 전기수도 진짜 마노는 모르지만 개념적으로 이해하려고 비유를 만들면서 그 뜻을 생각해 나갔습니다.
‘이 몸은 한 평생 머물 것이다. 오늘 1시간 동안 몸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시간 동안 없어졌다가 다시 생기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오늘 하루 종일 이 마음이 머문 길이가 24시간이라면 24시간 동안의 길이를 1에서 100,000까지 번호를 매겨보자.
마음순가이 1부터 흘러가는데 6일 때 김태홍이 떠올랐다. 그럼 이 6일 때의 마음을 의(意)라고 하는 것일까? 마음 순간순간이 흘러가다가 120일 때 벼 위를 걷는 아기가 떠올랐다면 이 120번 째 마음순간이 마노일까? 그래, 병원에 있는 자식 생각이 났을 때 마음순간이 1200이었다면 그 1200번째 마음순간을 마노라 하겠구나. 마음이 죽 흐르는 가운데 우 선생님 댁 식구들과 케이크를 먹던 생각이 떠올랐을 때가 2400번째 마음순간이었다면 그 2400번째 마음순간이 마노인가보다. 마치 몸에 바람이 닿으면 감촉(시원함 등)을 알듯이, 마음에도 무엇이 떠오르면 분별하여 안다. 그래서 마음에는 ‘의-법-의식’의 요소(界)로 분류하는구나. 마음에 어느 순간 타작하는 형의 모습이 떠오르면(3600번째 마음순간에서) 그러면 그 3600번째 마음을 마노(意)라고 하는가보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일을 하면 모자를 벗을 때까지는 머리에 모자가 있듯이 <눈, 귀, 코, 혀, 몸>의 감각기관 말고 마음에 무엇인가 떠오르면 그것이 본 것이든, 들은 것이든, 냄새 맡은 것이든, 맛본 것이든, 몸에 닿은 것이든, 마음에 떠오른 것이든 간에 이런 것들이 마음에 나타나면 그것들이 나타난 그 마음순간들이 의(意, 마노)라고 하는가보다.’
이렇게 전기수는 의(마노)에 대해 한번 개념적으로나마 그 뜻을 추측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띠 수행을 하지 않고 사마타-위빳사나 수행을 하지 않으면 마노를 알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개념적으로나마 마노(意)란 ‘마음에 (색성향미촉을 제외한) 법이 나타나서 (의식이 일어날 때) 법이 부딪힌 그 순간의 마음들’을 말한다고 한번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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