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장구 간단히

대학장구 경1장을 들으며 5 (신자혁기구지위야~)

풀빛 너머 2017. 2. 16. 07:21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

程子曰 親 當作新. ○大學者 大人之學也. 明 明之也. 明德者 人之所得乎天 而虛靈不昧 以具衆理 而應萬事者也. 但爲氣禀所拘 人欲所蔽 則有時而昏然 其本體之明 則有未嘗息者.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 以復其初也. 新者 革其舊之謂也. 言旣自明其明德 又當推以及人 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汚也. 止者 必至於是而不遷之意. 至善則事理當然之極也. 言明明德新民 皆當止於至善之地而不遷.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 而無一毫人欲之私也. 此三者 大學之綱領也.


* 신자(는) 혁기구지위야(니) : 신은 자신의 구습(舊習)을 바꾸는 것이니.

(구는 좋은 것을 구라고 하지 않고, 습관적인 것이나 잘못된 쪽으로 물든 것을 구습이라고 함. 혁의 뜻-혁은 가죽의 털을 민 것임. 그래서 가죽은 그대로 있음. 겉의 모습이 바뀐 것. 신자는 위혁기구야라 - 일반적인 훈고. 자신의 구습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신은 옛 것을 고침을 이른다.) 표현 방식을 바꾼 것. 정방향으로만 가면 좀 지루니까. 지자를 넣으면서 우리말 토씨인 을이 그대로 옴. 지는 도치를 나타내는 말.)


* 언 기자명기명덕(이면) : (말한 것이다.) 이미 그 스스로 (자신의) 명덕을 밝혔으면


* 우당추이급인(하여) : 또 마땅히 (내가 밝힌 명덕을) 미루어 나가 남에게 파급시켜


* 사지역유이거기구염지오야(라) : (자신의 명덕을 밝히지 못한) 그(남들)로 하여금 역시 그가 예전에 물든 더러운 것을 제거할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 것을 (말한 것이다.)

(사지할 때 사 앞에는 욕(欲)이 들어있다고 보자. 기는 파급을 받은 사람을 말함. 갈 거는 제거하다. 갈 거는 가다이지만, 떠나가다로도 많이 쓰이며 제거하다로도 많이 쓰임. 유이 : ~할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신민이나 혁인이나 똑 같은 말. 이럴 때에는 같은 말임. 나중에는 민이나 인을 구분하지만 서민/관인. 예전에 우리나라에 신민당이 있었는데, 여기서 나온 말임.)


* 지자(는) 필지어시이불천지의(요) : 머무른다는 반드시 이곳에 이르러서 옮겨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를 그치다로 해석하는데 저는 머무르다로 해석함. 반드시 필은 강제성이 있는 부사, 모름지기 수는 권고성이 있는 부사. 이곳-시처. 옮겨가지 않는다는 (意의-단순한 뜻, 義의-그 글자의 성격을 말함))


* 지선(은) 즉사리당연지극야(라) : 지극한 선은 사리의 당연한 극치이다.

(지선은 지극히 좋은 것, 지극히 잘 하는 것, 지극히 선한 것이 지선이다. 지극은 표준에 이르렀다. 극은 표준이면서 중용이다. 중용은 과유불급이 아니다. 나무가 있으면 결 따라 대패질을 해야 함. 옥의결이 제일 어렵다. 모든 것에는 다 결이 있다. 그래서 결 따라 간다. 당연하다는 것은 선. 극은 당연지극 -사리나 물리의 당연한 극치. 극선이 바로 지선이다. 그래서 율곡은 지선이 태극의 또 다른 명칭이라고도 했음.)


* 언 명명덕 신민(을) : 명명덕과 신민을 ( ~ 말한 것이다.)

(명덕은 중용. 내가 과나 불급이 되었다가 다시 중용으로 돌아가는 것이 명명덕. 신민도 중용이다.)


* 개당지어지선지지이불천(이니) : 모두 마땅히 지극히 선한(지선이 있는) 곳에 머물게 하여서 옮겨가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 개필기유이진부천리지극(이요) : 반드시 (지극히 선한 곳에 머무르는 사람은) 저 천리의 지극한 곳에 극진히 할 수 있고

(대개 개는 결론을 낼 때 오는 글자. 그는 불천지인을 말함. 그 기는 한문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글자. 사내 부는 여기서는 발어사로 보기 보다는 ‘저’로 보아 ‘저 부’로 하기(?). 저 부는 부여받은 천리로 사람이 부여받은 천리. 천리지극)


* 이무일호인욕지사야(라) : 털끝만큼이라도 사사로운 인욕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인욕의 사사로움-우리말로는 사사로운 인욕이)


* 차삼자(는) 대학지강령야(라) : 이 세 가지는 대학의 강령이다.

(강령은 사물의 중추, 사물의 핵심을 말한다. 강령에서 강과 령은 무엇인가? 강은 벼리이고, 령은 옷깃이다. 소주(小註)에서 보면, 큰 벼리줄을 가지고서 말한 것이니, 벼리줄은 큰 동아줄. 여-이를테면 그물에 벼리줄이 있는 것과 같으니, 벼리줄을 들면 그물눈이 펴진다. 그러나까 대학의 가장 중요한 것이 삼강령이다. 명명덕신민지어지선의 뜻만 알면 대학의 전체 내용을 안다. 벼리줄과 눈을 연결해주는 것은 기(紀). 기강-강은 큰 법, 기는 작은 법. 요령을 가지고서 말한 것이니, 요령-허리 요, 옷이 있으면 허리 부분이 있고, 령은 옷깃. (갖옷-가죽 옷을 줄여서 갖옷, 무겁고 크다, 겉에 입으니까) 옷깃-동전 있는 부분, 옷깃을 들면 갖옷이 펴진다. 그래서 옷깃 령자와 벼리 강자를 같이 붙여서 어떤 것의 큰 본체를 강령이라고 함.)



그동안 잘 있었니? 내가 ebs 고등학교 강의 한 개를 대충 들어보았단다. ‘수능에 잘 나오는 사자성어’였는데 거기에는 내가 모르는 것도 좀 있더라. 요즘 고등학생들은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는가 싶더라. 전에 ◌◌이가 내게 말해준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이라는 사자성어도 나오더라. 지을 작을 할 위(될 위)로 바꾸어 마부위침이라고도 한다고 하더라. 여기에 내가 사자성어 한자와 뜻을 강의 들으며 필기한 것을 정리해서 복사해 왔으니 한번 참고삼아 보려무나.


한문은 장(章)과 구(句)로 되어 있다고 해. 장은 하나의 완전한 문장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그에 대한 견해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장은 지금의 문단에 해당한다고 해. 구는 의미가 끊어지는 곳을 말한대. 예를 들어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에서 대학지도도 구고, 재명명덕도 구고, 재신민도 구고, 재지어지선도 구라고 하는구나. 그럼, 이제 내가 강의 들은 부분을 들려줄게.



(주자주를 보겠습니다. 여기서 혁은 가죽 혁인데 바꿀 혁도 됩니다. ‘천명을 바꾸다’는 혁명이라고 하지요. 여기서 혁은 그 옛날 것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만약 백성들이 명덕에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다면, 마치 거울에 때가 끼어 있는 것을 닦아 깨끗하게 하듯이, 백성들의 구습을 바꾸어 환히 밝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에서 언이 나오면 어디까지 걸리는 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도 한문을 잘 하는 요령입니다.


명명덕한 사람은 백성들을 교화시키고자 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밝은 덕을 밝힌 사람은 아직 명명덕하지 못한 사람(백성)들에게 이르러서 그 사람들의 예전에 물들은 더러움을 제거해줍니다. 여기서 갈 거(去) 밑에 상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갈 거가 거성일 때는 가다, 떠나가다의 뜻이고, 상성일 때는 제거하다의 뜻입니다. 만약 오늘 ‘전통문화연구회를 떠나 내 집에 간다’고 하면, ‘거(去)전통문화연구회 적(適)아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명덕을 밝혀서 남에게 미쳐 남을 교화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인류의 개명 시기에 동서양 공히 성인이 나셔서 그분들이 자기 내면의 본성을 환히 밝히고 나서 왜 사람들에게 잘 살아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자학의 논리대로라면, 명덕을 밝혔다면 신민을 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생겨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명명덕하면 저절로 신민하는 단계로 나아간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전에도 말했다시피, 경은 불역(不易)이라고 했습니다. 고칠 수가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있는 언어입니다. 보통 진리는 2천년 전에 진리였던 것이 지금은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경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자는 경의 친을 신으로 바꾸었습니다. 마치 성경을 읽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청나라에 오면 주자가 친을 신으로 바꾼 것을 비판한 학자가 있습니다. 그러자 주자학 쪽의 학자들은 다시 주자를 옹호하기도 했고요.. 잠깐 소주를 보겠습니다. 서경에도 옛날에 물든 더러운 풍속을 모두 새롭게 했다는 구절도 나오고, 유신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때 친이라고 하지 않고 신이라고 했으니 주자가 친을 신으로 바꾼 것에 일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명명덕하고 신민한 다음에는 ‘지어지선’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주자주에 나오는 그대로 보면 되겠습니다. 지극한 선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사리의 당연한 표준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명덕을 밝혔고 남에게도 명덕을 밝히도록 해주었으니, 나와 남이 함께 명덕한 이런 것을 지선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주자는 지어지선을 ‘명명덕과 신민이 지선한 곳에 머물러서 옮기지 않음’을 말한 것이라고 하면서, 지선에는 천리의 지극함이 있고, 한 터럭만큼의 인욕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명명덕’과 ‘신민’과 ‘지어지선’은 대학의 강령입니다. 

 

여담으로 제가 대학을 강의하고 나서 학생들에게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한자로 써보라고 하면 ‘지어지선’에서 앞의 지와 뒤의 지를 바꾸어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편, 강령 밑에는 조목이 있어야 합니다.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명덕의 조목이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신민의 조목입니다. 명덕과 신민에서 부모, 형제, 대부, 제후국, 천하에 이르기까지 다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면 지어지선의 조목은 어디에 있나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박세당 같은 분은 삼강령이 아니고 이강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소주 중에서 한두 개를 보겠습니다. 신안 진씨가 말하기를, 벼리 강은 큰 벼리로 말한 것이니(벼리는 사물의 중추, 사물의 핵심이이라는 뜻). 벼리를 들면 그물눈들이 탁 펴지고, 령은 요령으로써 말한 것이니 요는 허리띠이고 령은 옷깃이니, 갖옷의 옷깃이 있어서 옷깃을 끌면 갖옷이 탁 펴진다. 그래서 강령은 사물의 중추,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옥계 노씨는 말하기를, ... 지선은 명명덕과 신민을 총괄해서 말한 것이다. ... 명명덕은 대학 한 책의 가장 큰 강령이다.


유학에서 처음으로 성년이 되이서 배우는 것이 명명덕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고원한 이념이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것을 끝까지 추구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아, 내가 대충 이렇게 재신민과 재지어지선에 대한 부분을 강의 들었어. 그러고 나서 그 뜻을 생각해보았지. 그랬더니 내게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라. 그걸 한번 말해볼게. 나는 대학 원문 그대로 재친민(在親民)으로 생각해 보았어.


만약 옛날 중국에서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다면 그들은 나중에 관리가 되었을 거야. 학교에 다니면서 명명덕을 하기 위해 수신도 하고, 관리가 되는데 필요한 지식도 배웠을 거야. 그래서 마침내 관리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금만 거두려고 한다든가 백성에게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 될 거야. 당연히 백성의 삶을 살피러 현장에 나가야 할 것 같아. 그것이 바로 친민(親民)이라는 생각이 났어. 부자유친(父子有親, 부모와 자식 간에는 (하늘이 내려주신) 친함이 있다)이라고 했을 때 부모는 자식을 자애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친(親)이라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관리는 정책을 공정하게 시행하여 백성을 자애롭게 대하고 백성은 나라가 태평한 것에(나라를 잘 다스려준 것에) 감사하는 것이 친민이라고 생각이 났어.


그리고 만약 공부하여 명덕을 밝힌 사람이 관리가 되지 못했다면, 산이나 들판에서 새나 짐승을 벗하지 말고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을 친하라고 말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마시고 놀라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곁에 머물러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그들이 물을 때 대답해주라는 뜻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논어를 찾아보았어. 미자 제18장의 6에 이런 내용이 나왔어. 그 해석을 옮겨 적으면 [... 자로가 돌아와서 아뢰니, 부자(공자)께서 (한동안) 무연히 계시다가 말씀하셨다. “조수(鳥獸)와 더불어 무리지어 살 수는 없으니, 내가 이 사람의 무리(세상사람들)와 더불지 않고 누구와 더불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내 더불어 변역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내용이 나와.


한편, 명덕을 밝히고 세상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지극한 선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어(지어지선). 예전에 나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 무엇인가 하면, ‘나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고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한다.’는 데서, 나를 이롭게 하는 것과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인지 알았어. 그러나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 그러다가 대학장구 강의를 들으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어.


사회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 그런데 그 사람들 중에는 명덕을 밝힌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 밝힌 사람들도 많을 거야. 명덕을 못 밝힌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나를 괴롭힐 때, 만약 내가 명덕을 밝힌 사람이라면 적절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만약 나도 명덕을 밝혔고 남들도 모두 명덕을 밝힌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바로 이 세상이 이상사회(理想社會)가 될 것 같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나의 선을 증장시켜주고, 나 또한 그들의 선을 증장시켜 줄 수 있으니 혼자 있을 때에는 혼자 있을 때의 행복이 있고 남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남들과 함께 있는 행복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한다’는 뜻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


또는, 지어지선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어. 세상에 수많은 이치가 있어도, 나를 어리석고 악하게 하고, 남을 어리석고 악하게 하고, 나와 남을 함께 어리석고 악하게 하는 그런 쪽의 이치는 탐구하지도 말고 그쪽으로는 나아가지도 말라는 뜻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 그러니 지선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안 된다는 그런 뜻이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강의도 듣고 했으니, 그럼 이제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고 그냥 원문만 읽어보면 어떨까"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친민(하며) 재지어지선(이니라)” 그래서 나는 이렇게 풀이해 보았어. “큰 배움의 길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친함에 있고, 지극히 착함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다른 어리석고 나쁜 공부나 고통스럽고 악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는 가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