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련이 닥쳐도 선(善)을 행하다
6-0. 도적을 만남
들판을 가로질러 사나아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저 들판 너머 언덕에 도적들이 숨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칼로 위협하여 재물을 빼앗고 있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놀라면서 그 사람에게 어디 다치거나 재물을 잃지는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며 저기 샛길은 안전하니 그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고맙다며 그에게 앞마을에서 얻은 주먹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알려준 샛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새들이 지저귀고 냇물이 흐르고 토끼며 노루가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과 칠지는 마음챙김하며 길을 걸었고, 다성과 사람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걸어갔습니다. 얼마쯤 갔을까요, 갑자기 도적들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적의 우두머리는 바로 조금 전에 만났던 그 사나이였습니다. 도적의 두목이 사나이로 변장하여 빙청 선인 일행을 유인하여 사로잡았던 것이었습니다. 도적의 두목이 말하기를, 들판 너머 언덕 방면에는 경찰이 자주 순찰하여 자신들의 근거지를 이곳으로 옮겼다며 목숨은 살려줄 테니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은 가진 것이 없었으나, 칠지와 다성과 사람들은 가진 것을 모두 뺏겼습니다. 도적들은 휑하니 사라졌고 빙청 선인 일행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성과 사람들은 앞길이 막막하여 멍한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이에 빙청 선인이 다성과 사람들을 위로하며 잠시 마음을 추스르자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참으로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애써서 장만한 여행 경비며 물품이며 다른 귀중품들을 모두 다 잃었습니다. 매우 상심하시고 분한 마음이 가득하실 겁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을 겪었다고 하여 내 삶이 마지막이라고 절망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말을 마치자 빙청 선인은 다성과 사람들을 위해 연민의 마음을 닦았습니다. 제자들도 빙청 선인 주위에 앉아서 연민의 마음을 한 방향 두 방향 세 방향 네 방향으로 가득하게 닦았습니다.
칠지가 다성 일행 쪽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연민은 다른 생명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먼저 나 자신을 가엾게 여겨도 됩니다. 태어나고 늙고 죽고야 마는 나를 가엾게 여겨도 됩니다. 연민은, 가족들이 괴로움이 있다면 괴로움이 없기를, 고통이 있다면 고통이 없기를, 위험이 있다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자꾸 범위를 넓혀가도 됩니다. 친척들, 친구들, 우리나라 사람들, 지구의 모든 사람들, 짐승들, 벌레들, 그리고 작거나 크거나 간에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괴로움이 없기를, 고통이 없기를,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하고 넓혀 나가도 됩니다. 이 마음을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남쪽으로도 북쪽으로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위와 아래로도 가득 채웁니다. 모든 생명들이 아프지 않기를!”
다성은 처음에는 칠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다 잃어버렸다는 절망과 좌절, 또 도둑에 대한 분노가 마음에서 들끓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성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성은 차츰 호흡이 느껴지고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습니다. 그러자 예전에 배운 ‘자애’의 마음이 조금씩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안락하기를, 태평하기를!’ 하는 마음이 차츰 차츰 자신을 채워나가는 듯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정도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성도 연민하는 마음을 일으켜 보았습니다. 그러나 쉽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 빙청 선인이 일어나 길을 떠나자고 했습니다. 고개를 몇 개 넘으면 마을이 하나 있는데 오늘 밤은 거기에서 머물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성과 사람들이 심신이 피로하고 기운이 없어 오늘은 더 이상 길을 재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빙청 선인 일행은 도적이 없을 곳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옮겨가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자리를 옮겨 다성과 사람들이 큰 소나무 밑에 텐트를 쳤습니다. 밤이 되자 빙청 선인과 제자들과 칠지는 자리에 앉아 연민 수행을 계속했고, 다성과 사람들은 빙청 선인 일행을 따라 연민 수행을 시도해보다가도 걱정하고 낙심하여 자주 상념에 잠겼습니다.
6-1. 제관(祭官)과 제자 :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 괴로워하지 말라
내일 빙청 선인 일행이 들리려는 마을은 매우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땅이 비옥해서 곡식이 잘 여물고 산과 들에는 과일도 풍부했습니다. 맑고 깨끗한 강이 마을을 돌아 흘렀고, 기후가 온화했습니다. 홍수나 가뭄의 피해가 없었고 식수가 풍부했습니다. 사람들은 선량하고 정이 많았습니다. 이웃끼리 선(善)을 권하고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마을에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했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위로해주었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제관(祭官)이 아내와 살고 있었습니다. 제관은 마을의 번영을 빌어주고 마을사람들의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관이 제자들을 받아들였는데, 그 중에서 한 제자가 뛰어났습니다. 용모가 준수하고 언어가 단정하고 행실이 밝았습니다. 모두가 그 제자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관의 아내가 그 제자를 몰래 찾아와왔습니다. 여러 번 주저하다가 작정한 듯 말했습니다. “나는 제관의 아내로 사는 것이 괴로워요. 나는 여기를 떠나 다른 여인네들처럼 살고 싶어요. 나와 함께 떠나실래요?” 제자는 이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스승의 아내와 함께 달아나는 일은 꿈속에서도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모(師母)님. 그런 말씀은 제가 감히 감당하기 어렵나이다.”
이 말을 듣자 스승의 아내는 제자를 쏘아보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제관인 남편을 찾아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제자가 저를 능멸했어요. 저를 그리워한다면서 함께 도망하자고 했어요.” 이 말을 듣고 제관은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혔습니다. 전후 사정을 확인하지도 않고 아내의 말만 믿고 제자를 증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너를 아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면서 그 제자를 파멸시켜야겠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제관이 그 제자를 따로 불렀습니다. “그동안 그대는 참으로 잘 공부해왔다. 그래서 오늘 그대에게 특별히 도(道)를 완성하는 마지막 비법(祕法)을 전수해주겠다. 그대는 깊이 새겨라.” 하면서 비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노루 한 마리를 죽여 그 피를 마시면 진정한 도인(道人)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비법을 전수받은 제자가 스승의 명(命)을 따르지 않으면 제자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벌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제자는 그 비법이란 것이 아주 이상하게 들렸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훌륭한 도인이라면 당연히 생명을 죽이지 않아야 하는데, 죄 없는 노루를 죽여야만 도인이 된다니 쉽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스승의 이 비법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가 떨어져 죽는다고 하니 아주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서 제자는 절을 올리고 노루 피를 구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속은 어둡고 가시덤불로 덮여 있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랐습니다. 조금씩 숲속으로 들어가자 이상한 짐승들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노루는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쯤 숲속을 헤매었더니 목이 말랐습니다. 큰 나무 아래에서 샘을 발견하고 제자는 샘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더니 정신이 가물가물해졌습니다. 옆을 보니 시퍼런 칼이 놓여 있었습니다. 제자가 그 칼을 집어 들었더니 눈앞에 무엇인가 번쩍 하더니 노루가 열 마리나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는 이 광경을 보고 올바름을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손에 칼을 쥐고 노루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때 “탁”하고 큰 소리가 났습니다. 제자가 땅에 쓰러졌습니다. 도적 열 명이 제자를 둘러쌌고 부하 하나가 제자를 밧줄로 묶었습니다. 아까 빙청 선인 일행을 덮쳤던 바로 그 도적들이었습니다. 이상한 샘물을 마셔 징신이 몽롱했던 제자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살펴보니 도적들이 자신의 물품을 빼앗았고, 자신을 거꾸로 나무에 매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도적이 휑하니 사라졌고 제자는 거꾸로 매달린 채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현기증이 점점 심해지고 곧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이 그동안 제관 밑에서 배우고 공부했던 내용들이 떠올랐습니다. 그중에서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가르침이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제자는 점점 자신이 비참해지고 부끄러워졌습니다. ‘아무 죄 없는 노루를 죽여서 그 피로 내가 도인이 된다고 생각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못난 짓이었던가.’ ‘틀림없이 스승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것일 거야. 내일 날이 밝으면 스승님께 다시 여쭈어보아야겠다. 노루들아, 너희들에게 정말 죄스럽고 미안하구나. 이런 나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밤이 깊어가면서 제자는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혹시 사나운 맹수가 나타나서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지, 아니면 독이 많은 뱀이 나타나 자신을 물지는 않을지, 아니면 다른 도적이 또 나타나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지 공포가 엄습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제자는 예전에 배우고 공부한 훌륭한 말씀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나 지신도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다른 생명들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 다른 생명을 해쳐서 내가 살아나는 그런 일은 두 번 다시는 하지 말자. 앞으로는 살아있는 생명들을 해치지 말고 보호하도록 하자.’ 제자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거꾸로 묶여있던 고통이 참아지고 견뎌졌고, 제자는 점점 연민의 마음을 닦아나갔습니다.
6-2. 도적의 두목이 고통에 시달리다
다음 날 아침 빙청 선인 일행이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보시오.”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돌아보니 도적들이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업고서 달려오는 중이었습니다. 도적들이 우두머리를 땅에 내려놓았고 우두머리는 빙청 선인에게 기어가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 황당한 광경을 보고 다성과 사람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배를 움켜지며 고통스럽게 울먹였습니다. “수행자시여, 어제 나누어주신 주먹밥을 먹었을 때는 맛이 꿀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고 조금 있으니 갑자기 배가 아파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점점 고통이 심해졌습니다. 마치 창자가 찢겨나가는 것 같있습니다. 밤새도록 고통에 시달렸는데 이제 더 이상 참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우두머리가 부하들에게 지시를 하자 도적들이 칠지와 다성과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재물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도적 우두머리의 고통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수행자시여,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재물을 뺏기 위해 수행자님을 거짓으로 속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재물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이제 그대가 잘못을 뉘우치니 그대의 뉘우침을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도적 우두머리의 배가 다 나았는지 벌떡 일어나 부하들과 함께 떠나갔습니다. 다성과 사람들은 자신들의 물품을 되찾게 되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도적들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속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다성이 자신의 여분의 옷을 꺼내어 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선인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이 도적질을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두목에게 ‘이제 저는 여기를 떠나려고 합니다. 허락해주십시오.’ 했더니, 두목이 냉혹한 웃음을 지으며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 기다린다고 하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 제가 ‘살아날 다른 길이 있습니까?’ 하니, 두목이 돈 삼억 원을 내면 놓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삼억을 주었고, 그러자 도적들이 자신의 옷을 벗기더니 칼로 옷을 난도질을 해서 속옷차람으로 내쫓았고, 그래서 자신은 이렇게 선인님께로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이 그 사람을 위로한 뒤 어떻게 삼억을 마련했는지를 물으니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집이 매우 가난하여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용직 일을 하며 하루하루 끼니를 떼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금 두목이 찾아와서 좋은 직장을 소개해준다며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바로 도적 소굴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로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고 유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도적질을 하여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머니께도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네 번째 다섯 번째 죄는 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날 빼앗은 물품을 서로 나누고 나서, 두목과 부하들이 시내에 나가 술 마시고 놀 때, 저는 제가 할당받은 재물을 가지고 원주인을 찾아가 사죄하고 돌려주었습니다. 재물을 돌려받은 원주인들은 때로는 저를 꾸짖고 때로는 저를 동정하고 때로는 어서 도적 소굴에서 나오라고 하고 때로는 저에게 돈을 조금씩 주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이 계속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빼앗은 재물 중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것을 돌려주려고 원주인을 찾아 갔더니, 어떤 노인이 나왔습니다. 그 노인은 혼자 살고 계셨으며, 다른 자식이나 친척도 없으셔서, 돌아가실 때 도적인 저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도적인 저를 걱정하시면서 얼른 도적 소굴에서 나와 자수하라고 유언하셨습니다. ...” 그 사람은 말을 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이윽고 울음을 그치자 그가 말했습니다. “수행자시여, 그동안 제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제가 지은 악행을 참회하오니, 저의 참회를 받아주십시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그동안 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잘못을 바른 방법으로 참회했습니다. 나는 그대의 뉘우침을 받아들입니다. 이제 그대가 선(善)을 행하고 악(惡)을 멀리한다면. 앞으로 그대의 삶이 향상할 것입니다.” (그 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은 자수했고, 여러 상황이 참작되어 형량이 크게 줄어들었고, 출소한 뒤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며 열심히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6-3. 제관의 제자가 마을로 돌아오다
빙청 선인 일행이 고개를 막 넘어 가는데 저기 앞에 사람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다성이 뛰어가 보니 어떤 청년이 정신을 잃은 채 매달려 있었습니다. 얼른 밧줄을 풀어 그를 안아서 자리에 눕히고 정신 차리라고 말하면서 팔다리를 주물렀습니다. 얼마 뒤에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습니다. 청년은 먼저 자신을 구해주어서 고맙다고 한 뒤에 자신이 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스승님께서 알려주신 비법이 잘못 된 것은 아닌지 다시 여쭈려고 산을 내려가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다성은 이 제자가 참 안 돼보였습니다. 그래서 의기소침하지 말고 힘내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다성에게 어디로 가는 중인지를 물었고 다성은 앞마을에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가 말하기를, 자신의 스승님은 마을 뒷산에 살고 계시는데, 자신이 빙청 선인 일행을 마을안으로 안내해서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빙청 선인 일행은 제관의 제자와 함께 그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마을을 돌아 흐르는 강물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자연 환경도 아름다웠고, 곡식이며 과실이며 채소도 풍부했습니다. 사람들 인심도 후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말 못할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관과 그의 제자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고, 제관과 그의 아내 사이에도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어제 제자가 노루 피를 마시지 않아서 곧 머리가 떨어져 죽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또 제관이 그의 아내를 의심하여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고,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달려와서 제관에게 합의 이혼을 재촉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소문에 제자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신이 제대로 스승의 명을 수행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어 송구할 따름이라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빨리 하여 스승님 거처로 향했습니다.
제자가 제관을 만나기 전에 칠지가 제자에게 가르침을 한 구절 들려주었습니다. “여기 가르침이 있으니 가슴에 잘 새기셔서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명(無明)이 머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과 마음챙김(=알아차림, 사띠sati)과 삼매와 더불어, 의욕과 정진을 갖춘 지혜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숫~ p.476) 이 말을 듣고 제자는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란 괴로움의 근본 원인인 무명을 말하는 것이었고, 머리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그 무명을 ‘믿음과 마음챙김과 의욕과 정진’을 통해 얻어진 지혜로 부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스승님께서 머리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이 사람의 머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계신다면, 제자는 이제 머리가 무명과 관련된 것이라고 바르게 알려드려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스승님께 나아갔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제관의 거처 밖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 조용히 앉았습니다.
6-4. 제자에게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그의 현실이 되다
제자가 제관에게 나아가 인사를 올렸습니다. 제관이 물었습니다. “제자여, 그대는 노루 피를 먹었는가?”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스승님이시여, 제가 명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제관이 말했습니다. “안타깝구나, 나는 그대에게 도인이 되는 비법을 알려주었는데 그대는 그 비법을 저버렸으니, 머리가 떨어지는 불행을 당하게 되었구나.” 막상 스승님의 저주스런 말을 들으니 제자는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칠지가 들려준 가르침을 떠올렸습니다. “무명(無明)이 머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과 마음챙김(=알아차림, 사띠sati)과 삼매와 더불어, 의욕과 정진을 갖춘 지혜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리고 칠지에게서 들은 그 가르침을 스승님께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지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제관의 아내가 들어왔습니다. 제관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모든 것이 제 잘못이에요. 여보, 잘못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제자분이여, 정말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저도 죽겠습니다. ...”
이 말을 듣고 제관과 제자는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했습니다. 제관의 아내가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전후 사정은 이랬습니다. 어제 밤 친정식구들이 찾아왔을 때 더 이상 제관의 아내로 살 수 없다고 호소를 했습니다. 이유는 제관의 아내로 살자니 금기(禁忌)도 많고 행동의 제약도 너무 많아서, 또 자신은 도시에서 멋지게 살고 싶어서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젊고 남편인 제관은 기도에 몰두하여 가정을 돌볼 시간이 없어서 부부의 정을 느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를 속이고 남편을 속인 일도 털어놓았습니다. 친정 식구들은 이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어쩌려고 일을 이 지경까지 키웠는지 모두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논의를 했고, 결국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제자와 제관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정지었다고 했습니다.
제관의 아내는 다시 한번 더 자신이 그 제자에게 함께 도망하자고 꼬드겼는데 제자는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며 거절했다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아내의 이 말에 제관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끼는 제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고,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이 다 무너졌다는 생각도 밀려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내 때문이라는 분노도 치솟았습니다. 제관도 제자도 잠시 먹먹하게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윽고 제관이 말했습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이제 와서 당신의 잘못을 따져 무엇 하겠소. 그동안 내가 남편으로서 아내인 그대에게 무심했소. 젊은 당신이 나이 든 나와 살기란 힘들었을 것이오. 당신과 합의 이혼을 하겠소.” 말을 마친 제관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제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제관의 아내가 제자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제자는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사모님, 그동안 저희 제자들을 돌보아주신 은혜가 막중하십니다. 이렇게 법답게 잘못을 뉘우치시니 제가 그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제 아무 걱정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관의 아내가 오늘 제자분이 목숨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요? 하면서 남편인 제관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관이 일어나 제자 곁으로 갔습니다. 제자가 황송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자가 다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승님. 미련한 제자는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제관이 말했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용서구할 사람은 바로 나다. 그동안 나의 훌륭했던 제자여. 이제부터 그대는 더 이상 나의 제자가 아닙니다. 나는 그대를 가르칠 자격을 잃었습니다.”
제자가 당황하고 황송하여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제관은 노루 피와 관련된 이야기가 사실은 제자를 파멸시키기 위한 자신의 계략이었다고 털어놓으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관이 무릎을 꿇고 제자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제관의 아내도 무릎을 꿇고 다시 용서를 구했습니다. 제자는 “어찌 제가 스승님과 사모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두 분의 참회를 삼가 받아들이오니, 두 분께서는 지금부터는 근심 걱정 없으시며 평안하시기를 바라옵고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리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시고 가르쳐주신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청안하시옵소서. 스승님, 앞으로 저는 세상에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결혼하면 아내와 자식을 잘 부양하고 돌보겠습니다. 부모님도 잘 모시겠습니다. 친척, 친구들에게도 잘 하겠습니다. 그리고 탐욕, 성냄, 이리석음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시는 청정한 수행자분을 뵙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올리겠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기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분들을 공경하겠습니다.” 제자는 다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 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관은 어떤 청정한 수행자 곁으로 출가했고, 제관의 부인은 새로 결혼하여 가정을 잘 돌보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했고, 제자는 회사에 취직하여 모범적인 회사원이 되고 모범적인 시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산속의 도적들은 경찰에 체포되어 감방에서 참회의 나날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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