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성,재등록과수정

4. 가상대화 : 인공지능 로봇은 느낌을 느낄 수 있는가?

풀빛 너머 2020. 4. 11. 17:43

4 다음날 아침 빙청 선인 일행이 <인공지능 도시>를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한 시간 후에 떠나기로 하고 각자 볼일을 보러 갔습니다. 그래서 다성은 공책과 필기도구를 사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개구쟁이 로봇이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고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는데 한번 맞추어 보라고 했습니다. 다성이 어떤 문제입니까? 하니, 개구쟁이 로봇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수수께끼를 들려주었습니다.

 

컴퓨터를 켜면 만화 영화가 나와요. 거기에는 주인공도 있고 악당도 있어요. 만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온갖 고초를 겪으며 악당을 무찔러요. 그러다가 비극적으로 주인공이 죽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 주인공이 자기 자신은 진짜 사람이 아니고 만화 영화 속의 단지 하나의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나요? 만화 영화 속의 주인공이 자신은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만화 영화 속에서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허망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주인공이 자신은 그저 만화 영화 속의 허망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또는 만약 형님이 만화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만화 영화에서 벗어나올래요?”

 

다성은 갑자기 먹먹해졌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런 것이 과연 수수께끼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이것이 수수께끼가 된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아무리 궁리해도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병 속의 새> 같은 종류의 물음은 아닐까? 새끼 새를 주둥이가 가느다랗고 배는 불룩한 병 속에 넣어 두어 길렀는데, 그 새가 어른 새가 되었을 때 몸빕이 병 속에 꽉 끼어 병을 깨뜨리지 않고 새를 꺼내야 하는데, 그 방법을 말하라는 그런 문제가 아닐까?’ 하고. 그러나 다성은 처음 이 <병 속의 새> 문제를 들었을 때도 답을 알 수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답은 몰랐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에게 돌아갈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답이 떠오르지 않자 다성은 점점 조급해졌습니다. 바로 그때 다행스럽게 예전에 어떤 명상 사이트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본 것이 기억났습니다. 어떤 공부 많이 하신 분이 어떤 개달음의 체험을 자유게시판에 올리셨고, 거기에 한 회원에 그분께 그럼 이 문제를 한번 풀어보세요 하면서 문제를 하나 냈는데, 바로 개구쟁이 로봇이 낸 문제와 비슷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아마 이렇게 대답하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곳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 거기에서 나와야 하는 일도 없답니다.”

 

다성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개구쟁이 로봇에게 그 내용을 대답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개구쟁이 로봇이 의외라는 듯이 다시 문제를 하나 냈습니다. “이것은 어떤 천신이 낸 문제라고 해요. ‘네 개의 바퀴와 아홉 개의 문을 가져 / 탐욕으로 채워졌고 꽁꽁 묶여 있으며 / 진흙에서 생겨나왔습니다, 대웅이시여. / 여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이까?’ (네 바퀴 경(S1:29)) 여기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실래요?”

 

다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모르겠다고 하자 개구쟁이 로봇이 웃으며 답을 말해주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채찍과 가죽 끈을 자르고 / 사악한 욕망과 탐욕을 끊어버리며 / 갈애를 뿌리째 뽑아버리면 / 여기서 벗어날 수 있노라.’ 시간 날 때마다 잘 음미해 보세요.” 말을 마치고 개구쟁이 로봇이 돌아가려는데 다성이 평소 궁금하던 것을 급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인공지능 로봇도 느낌이 있습니까?” 그러자 개구쟁이 로봇이 말했습니다. “곧 제 주인님이 그 문제를 가지고 빙청 선인과 만나려고 하세요.”

 

 

4-1 빙청 선인 일행이 길을 떠나려는데 <인공지능 도시>의 과학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서로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누고 난 뒤 과학자들이 말했습니다. “빙청 선인이시여, 우리는 인간과 똑같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선인께서 한번 보아주십시오.”

 

과학자들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네 대가 있었습니다. 각각 초월1, 초월2, 초월3, 초월4라고 이름표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네 대의 인공지능 로봇에는 지구상의 온갖 철학, 종교, 사상의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로봇들은 기쁨, 슬픔, 고통, 절망을 느끼고, 또 웃고 울기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이 인공지능 로봇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그러자 로봇들이 각각 대답했습니다. “저는 초월1입니다, 저는 초월2입니다, 저는 초월3입니다, 저는 초월4입니다.” 마지막 초월4는 한 마디를 더했습니다. “빙청 선인이시여, 존댓말을 써 주세요.” 빙청 선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과학 기술의 진보가 이렇게까지 높아졌는가 하면서 감탄했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과학자분들에 따르면 그대들은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로봇들이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빙청 선인이 다시 말했습니다. “먼저 그대들은 느낌을 어떻게 봅니까?” 그러자 초월1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느낌이 나 자신이라고 봅니다.” 초월2가 대답했습니다. “느낌을 가진 것이 나 자신입니다.” 초월3이 말했습니다. “느낌이 나 자신 안에 있습니다.” 초월4가 말했습니다. “느낌 안에 나 자신이 있습니다.” 로봇들의 말을 듣고 빙청 선인은 생각했습니다. ‘이 로봇들에게는 정말로 모든 종교 경전들의 내용이 다 입력되어 있겠구나.’ 하고.

 

이때 초월4가 되물었습니다. “선인님께서는 느낌을 어떻게 보세요?”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대들과는 달리 느낌을 <내 것>이라든가 <>라든가 <나의 자아>라고 보지 않습니다. 느낌이 내 것이라면 주인인 내 마음대로 즐거운 느낌을 영원히 지속하게 하고 괴로운 느낌을 언제든지 버릴 수 있을 텐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로봇들이 하하하 하고 웃었습니다. “선인님의 대답은 다 책에 나온답니다. 이 말을 듣고 빙청 선인과 사람들은 정말로 인공지능 로봇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빙청 선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느낌을 어떻게 말합니까?” 초월1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느낌을 몸의 느낌, 마음의 느낌이라고 둘로 말합니다.” 초월2가 말했습니다. “저는 느낌을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셋으로 말하기도 하고, 또는 몸의 즐거운 느낌, 몸의 괴로운 느낌, 마음의 즐거운 느낌, 마음의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다섯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초월3이 말했습니다. “저는 눈으로 형상을 보아서 생기는 느낌, 귀로 소리를 들어서 생기는 느낌, 코로 냄새를 맡아서 생기는 느낌, 혀로 맛을 보아서 생기는 느낌, 몸으로 감촉해서 생기는 느낌, 그리고 마음에 떠오르거나 생각해서 생기는 느낌, 이렇게 여섯 가지로 말합니다.” 사람들은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예전에 이세돌 구단을 이긴 알파고도 대단했지만 이들 초월1, 2, 3 로봇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능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초월4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느낌들이 늘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기 흘러가는 강물처럼, 생겨난 느낌들은 일어났다가는 모두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초월4가 주위를 죽 둘러보다가 다성에게 눈길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형성된 것들은 늘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를 사자성어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다성에게 물었습니다.

 

다성은 엉겁결에 <인생무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로봇들이 하하하 하고 또 웃었습니다. 초월4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반만 맞습니다. 정답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답니다.” 다성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마음챙기고 있었으면 충분히 정답을 맞힐 수 있었을 텐데, 그만 로봇이 자신보다 백배, 천배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미리 주눅이 들어서 대답을 제대로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칠지가 대답을 잘하고 못하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다성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습니다.”

 

이제 초월4는 빙청 선인을 바라보고 질문했습니다. “선인님께서는 느낌을 어떻게 말씀하세요?”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 느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인공지능 로봇들이 삐리리리하고 윙윙거렸습니다. 아마 빙청 선인이 마음을 가진 존재들만이 느낌을 느낀다고 말한 것이, 자신들 로봇은 마음이 없어서 느낌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로봇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인님, 우리들도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하면서 빙청 선인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빙청 선인은 생각했습니다. ‘이들 로봇들은 자신이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느낌을 느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구나. 그렇다면 이제 내가 이들에게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하여 그들이 정말 사람처럼 느낌을 느낄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겠다.’

 

 

4-2 그래서 빙청 선인이 질문했습니다. “느낌은 어떻게 생겨납니까(일어납니까)? 그대들이 배웠거나 아는 것이 있다면 좋을 대로 대답해 보십시오.”

 

초월1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우리 주인님을 봅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즉 눈으로 어떤 형상을 보고 저분은 주인님이시다.’고 알게 되면, 그때 즐거운 느낌이 일어납니다.” 초월2가 대답했습니다. “귀로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아니 이것은 몰래 침입하는 도둑의 발자국 소리다.’고 알게 될 때 바짝 경계하다가 보면 괴로운 느낌이 일어납니다.” 초월1은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형상이라는 것을 보아서 알 때 느낌이 생긴다고 했고, 초월2는 귀라는 감각기관이 소리라는 것을 들었을 때 느낌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초월3이 대답했습니다. “코로 밥 냄새를 맡았는데 식은 밥이라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관심 없는 것을 보거나 들을 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초월3은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 말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말했습니다. 그것(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다성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초월4가 말했습니다. “이처럼 느낌은 눈, , , , , 마음에서 각각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날 방법 한 개를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눈으로 영화 속에서 비참한 광경을 보아 괴로움이 일어났을 때, 그 괴로운 느낌을 떨쳐 버리려면 나는 어떻게 하나요? 방법 한 가지는 눈으로 보는 것을 그만두면 됩니다. 즉 귀로 좋은 음악을 듣거나 혀로 좋은 음식을 맛보거나 마음으로 좋은 일을 생각하면, 눈으로 본 영화 속의 비참한 광경을 조건으로 한 눈의 문에서 생긴 괴로운 느낌은 사라집니다.”

 

사실 초월4가 말한 방법을 사람들은 자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관심을 다른 곳에 두어서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그 일을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월4는 그 이치를 알려주었던 것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아서 생긴 괴로움이라면, 안 보면 되었습니다. , 귀로 좋은 음악을 들어서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잠시나마 눈으로 보아서 생긴 괴로운 느낌을 잊어버리면 되는 그런 원리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원리를 알아도 실생활에 잘 적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원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고, 또 그 느낌들에 압도되어 지혜롭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초월4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선인님께서는 느낌이 어떻게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까?” 빙청 선인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도 그대들의 설명과 같게 말합니다. 단지 표현을 조금 바꾸겠습니다. 그대들에게도 입력되어 있는 내용 일겁니다. 눈에서 생긴 느낌을 예로 들면, 나는 눈과 형상을 조건으로 안식(眼識)이 일어난다. 이 셋이 화합한 것이 촉(, 감각접촉)이다. ()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표현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빙청 선인과 로봇들이 펼치는 논의에 점점 빠져 들어갔습니다. 다소 어렵기도 했지만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4-3 빙청 선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여기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대들은 이 아가씨를 보고 어떻게 행동합니까(움직입니까)?” 로봇들이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날의 날씨나 외부적인 환경을 보고, 또 아가씨가 입은 옷이나 착용한 액세서리를 보고서 행동합니다. 즉 인공지능에 입력된 내용과 인공지능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한 내용에 따라 행동합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과학 기술이 진보했군요. 그럼 이제 사람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저기에 아리따운 아가씨기 있습니다. 열 사람이 보았다면 열 사람 다 느낌이 다를 겁니다. 젊은이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노인은 평온하게 바라볼 것이고, 어떤 아주머니는 자신도 저런 딸을 두었으면 하고 바랄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다성은 생각했습니다. ‘, 이것이 사람과 로봇의 다른 점이겠구나.’ 하고.

 

이때 초월4가 말했습니다. “그런 경우는 우리들 로봇에 저장된 정보에 다 있습니다. 그 점에서 우리 로봇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성은 머쓱해졌습니다. ‘저런 것도 인공지능이 해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빙청 선인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 그렇게 사람을 각종 유형별로 분류하여 행동 양식별로 매뉴얼을 만들어놓을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사실은 저기 아리따운 아가씨를 볼 때, 보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서만 느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듣고 인공지능 로봇들은 다시 삐리리리소리를 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습니다. 인공지능 로봇들은 인간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더 향상된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는데도 빙청 선인이 자신들을 인간처럼 느낄 수는 없다고 말하니까 속이 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빙청 선인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때, 이런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한 순간 이전의 내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가에 따라 느낌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까 그 젊은이가 바로 한 순간 이전에 (예를 들어 1초 전에) 화가 났다면 지금 이 순간 (1초 후에) 저기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더라도 그 젊은이는 기쁨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즉 다성이 기분 좋을 때는 모든 것이 포용되고 용서되고 좋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성이 몹시 화가 나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싫고 괜히 심술이 나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기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았을 때 생기는 느낌은, 그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 젊은이냐 노인이냐 아니면 한국 사람이냐 서양 사람이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만, 바로 한 순간 이전의 내 마음 상태가 어떤 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는 평소 그가 가진 선입견이나 견해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느낌은 눈과 귀 같은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형상이나 소리뿐만 아니라, 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젊은이인가 노인인가, 한국 사람이냐 서양 사람이냐 하는 것과 내가 가진 견해나 선입견 같은 것과 한 순간 이전의 내 마음 상태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들이 다시 삐리비리소리를 냈습니다.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칩을 넣었습니다. 로봇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4-4 초월4가 질문했습니다. “인공 지능이 도달할 수 없는 인간만 가지는 특별한 영역이 있나요?”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인공지능이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느낌은 조금 전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순간 이전의 삶의 과정이 내면에 쌓여 그것이 눈으로 형상을 볼 때 영향을 미친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마음의 내부에서, 아까 생긴 그 느낌을 분별해서 아는 어떤 과정이 진행됩니다. 즉 인식의 가공 과정, 또는 느낌을 분별해서 아는 과정이 진행되는데,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닐 겁니다.” (특히 이 단락과 아래 단락은 해피스님의 동영상 법문, ‘삶의 메커니즘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인용도 했음)

 

로봇들은 생각했습니다. ‘선인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정보로 처리하여 가공하면 우리도 사람처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빙청 선인은 로봇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내적 영역에서 진행되는, 느낌을 분별해서 알아 앎이 결과 되는 과정과 마음이 갈애로 형성되는 과정은 , , , , 몸이라는 감각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과학이 미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 할 때에만 과학이 (몸과 함께 한 그) 마음을 탐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이 몸과 함께 하지 않고 마음의 내적 영역에서만 활동할 때, 그 영역은 지혜로써 알아진다고 말할 뿐입니다.”

 

초월1, 2, 3, 4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어떻게 빙청 선인의 말에 응대해야 할지 얼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봇들은 빙청 선인에게 인공지능과는 달리 사람이 느낄 수 있다는 느낌에 대해 요점적으로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느낌은 마음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나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일어날 때는 분별하여 아는 마음인 식()이 전면에 드러나므로 느낌은 미약하게 파악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눈을 예로 들면,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일어나고, 이 셋이 화합하면 촉(, 감각접촉)이라 하는데, 바로 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일어납니다. , 느낌을 조건으로 새로운 갈애의 마음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대체로 범부는 눈으로 형상을 볼 때 : 욕탐이라는 무명의 요소가 개입하여, 형상을 왜곡하여 분별하여 알게 됩니다(즉 형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하여 보게 됨). 삼사화합하여 촉(감각접촉)이 일어날 때, 여기에 병든 상(), 또는 번뇌가 개입하여 느낌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러면 에 의해 생겨난 앎은 무명 위에 탐욕 또는 성냄이 더해집니다. 그래서 마음은 갈애 상태가 되어 , , 로 오염되어 있게 됩니다. 중생은 그런 오염된 갈애의 마음 상태로 오염된 행위를 하니까 다음 생에 또 태어날 업을 짓게 되겠습니다. 그래서 경의 가르침대로 중생은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를 해왔다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수명이 다되어 고장 나서 폐기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더 이상 윤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마음은 몸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어도 아라한 이상 분이 아니라면 다시 또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 점에서 로봇과 사람이 서로 다릅니다. , 마음이 있어야 느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과학은 마음이 몸과 관계할 때에만 그 마음을 탐구할 수 있고, 마음이 몸(, , , , )과 다른 영역(마음)에셔 작용할 때는 그 마음을 탐구할 수 없다고 나는 이해합니다.”

 

빙청 선인의 말을 듣고 과학자들과 로봇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과학자들이 말했습니다. “선인님의 설명과 주장을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들은 돌볼 일이 있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긴 시간 토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에 빙청 선인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인공지능 로봇 초월1, 2, 3, 4에게도 위로를 건네고, 선인 일행은 서쪽 어느 곳에 계신다는 대영웅을 뵈러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