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저녁에 다성은 칠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칠지는 자신도 마음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하는 이론을 배웠다며, 마음을 탐진치로 오염되었다고 보는 것은 심(心), 의(意), 식(識) 중에서 심(心)의 측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깨끗한 마음이 아니고 탐, 진, 치로 오염된 마음을 원인으로 하여 몸으로도 행위하고 말로도 행위하고 속으로도(마음속으로도) 행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식(識)의 측면에서도 살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날 밤 다성은 책을 찾아보고 공책을 찾아보면서 마음이란 무엇인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깜빡 졸았습니다. 들판에 다성이 앉아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수행자가 삼매를 닦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중학생이 다성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살려주세요, 뱀들이 좇아와요!” 수십 마리의 뱀들이 학생 뒤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다성이 학생을 진정시켜 앉히고, 언젠가 빙청 선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빠르게 들려주었습니다. “자, 지금부터 이런 마음을 내 보세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생각해봐요. 또는 어미소가 송아지를 위하는 마음을 생각해봐요. 이것이 자애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저 뱀들에게도 향해 봐요. 저 뱀들에 대한 악의를 버리고, ‘저 뱀들이 행복하기를, 안락하기를, 태평하기를!’ 하고 마음을 일으켜봐요. 진심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 그렇게 해봐요.”
학생은 자애의 마음을 일으키려고 애썼고 저 뱀들이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기를, 만약 죽음 이후에도 저 세상이 있다면 저 세상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하늘 세상에 태어나기를, 그리고 어디서나 행복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일으키고 마음을 기울이고 자신의 마음에 충만하게 하고 점점 넓게 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갑자기 뱀들이 방향을 바꾸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도 사라졌습니다.
조금 있으니 수행자 쪽으로 아름다운 형상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마음속의 것들이 하늘에 쫙 펼쳐졌습니다. 수행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삼매를 닦아나갔습니다. 천상의 색과 음악, 향기, 음식, 옷들을 보고 그만 다성은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허공에서 그물이 덮쳐왔고 다성은 그물에 걸렸습니다. 악마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는 수행자를 가두는 그물인데, 엉뚱하게도 탐, 진, 치에 오염된 자가 걸렸군.” 하면서 다성을 날려버렸습니다.
다성이 떨어져나간 곳은 아주 큰 수레 위였습니다. 수레 주위에는 독사와 독충과 늑대와 표범이 가득했습니다. 수레를 몰던 마부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까만 옷을 입은 동자(童子)로 변했습니다. “제가 내는 문제를 하나라도 맞힌 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공중으로 치솟아 방을 하나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밖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안에서 소리만 들려왔습니다.
“저는 지금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무슨 색깔일까요?” 아무도 못 맞추었습니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자가 다른 문제를 냈습니다. “지금 저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제목이 무엇일까요?” 벽으로 막혀있어서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못 맟추었습니다. 동자가 또 다른 문제를 냈습니다. “저는 지금 향수를 뿌렸습니다. 어떤 냄새일까요?” 사람들이 있는 수레 위까지 냄새가 안 나서 아무도 못 맡았습니다. 다시 문제를 냈습니다. “저는 지금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어떤 맛일까요?” 이 문제도 못 맞추었습니다. 다시 문제를 냈습니다. “저는 지금 신비한 돌을 손에 쥐었습니다. 어떤 감촉일까요?” 아무 힌트도 없이 이런 문제를 맞히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마침내 동자가 마지막 문제를 냈습니다. “지금 제 마음 상태는 어떨까요? 제 마음을 알 수 있나요?” 신통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다성처럼 마음이 오염된 범부는 남의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아까 들판에 있던 수행자가 공중에 모습을 나타내더니 동자쪽을 향해 말했습니다. “그대의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입니다.” 동자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제 마음이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아십니까?”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 그는 이와 같이 마음에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앎(타심통他心通)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압니다. ... ((D2)에서 인용 및 변형)
동자가 변해서 다시 마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꿈을 꿨나 봅니다. 다음 날 다성은 삼일 마을의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로 찾아보았습니다. 마음에서 식(識)의 측면을 알아보기 위해서 ‘심의식, 식, 알음알이’ 등의 항목을 검색했더니 참으로 많은 자료들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다성은 지금 여기에서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여서 알 수 있는 것들만 프린트해왔습니다. 다성은 천천히 뜻을 음미하며 읽었습니다.
“... 어떤 것이 식(識)인가? ... 여섯 가지 식의 무리가 있나니 형상(빛, 모양)에 대한 식(識, 알음알이), 소리에 대한 식, 냄새에 대한 식, 맛에 대한 식, 감촉에 대한 식, 담마에 대한 식이다. ... 이를 일러 알음알이(識)이라 한다. ...” ((S22:56)에서 인용)
(다성은 생각했습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색깔과 모양을 아는 것, 소리를 아는 것, 냄새를 아는 것, 맛을 아는 것, 감촉을 아는 것,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 등을 아는 것, 이런 것이 마음의 한 측면인 식(識)이구나.’ 그래서 다성은 마음이란 식의 측면에서는 ‘아는 것’이라고 한번 이해했습니다.)
“... 그러면 왜 알음알이(識식)라고 부르는가? 식별한다고 해서(알아서 분별한다고 해서) 알음알이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식별하는가? (예를 들어보면) 신 것도 식별하고 쓴 것도 식별하고 매운 것도 식별하고 떫지 않은 것도 식별하고 짠 것도 식별하고 싱거운 것도 식별한다. ... 이처럼 식별한다고 해서 (알아서 분별한다고 해서) 알음알이(識)라 한다.” ((S22:79)에서 인용 및 변형)
(다성은 : 얼음, 물, 수증기가 서로 상태는 다르지만 같은 것을 지칭하듯이 심(心)과 식(識)은 상태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뜻을 음미했습니다. 눈을 감으면 형상에 대한 식(識, 알음알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귀를 막으면 소리에 대한 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코를 막으면 냄새에 대한 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혀를 막으면 맛에 대한 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몸을 막으면 감촉에 대한 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노를 막으면 담마에 대한 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노와 담마를 이해하자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다성은 우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한 측면은 아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식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것이 무엇이라고 알아서 분별하는 것이었습니다.)
“... ‘알음알이(識), 알음알이(識)’라고 하는데, 무슨 이유로 알음알이라고 합니까?”
“... ‘분별해서 안다, 분별해서 안다’고 해서 알음알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분별해서 알까요? (예를 들면) ‘즐거움’이라고도 분별해서 알고, ‘괴로움’이라고도 분별해서 알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라고도 분별해서 압니다. ... ‘분별해서 안다, 분별해서 안다.’고 해서 알음알이(識)라고 합니다.” ((M43)에서 인용 및 변형)
(다성은 분별해서 아는 것은 모두 알음알이(識식)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도 마음을 기울이면 어느 정도 분별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식(識)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식으로 작용할 때는 : 보아서 알고, 들어서 알고, 냄새 맡아서 알고, 맛보아서 알고, 감촉해서 알고, 마노로 분별해서 안다고 이해했습니다. (다성은 우선 여기서 마노(意)는, 눈 귀 코 혀 몸으로 아는 것 말고, 마음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분별해서 알 때 이름을 마음 대신에 마노로 부른다고 해놓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는 것, 그것도 바로 마음이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모르지만 눈을 뜨면 나무도 알고 바위도 알고 자동차도 알았습니다. 바로 이것도 마음이었고 이때는 이름을 식(識)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성은 오늘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을 분별하여 아는 것은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마음이 식(識)으로 활동하는 것이라고 하니 새삼 뜻깊은 사실이었습니다. 저녁에 다성이 칠지에게 오늘 알게 된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칠지가 잘 하셨다며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가 와서, ‘마음에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잠재의식도 있습니다. 초월의식도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이 말에 다성은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이제 자신이 무엇인가를 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칠지가 이런 문제를 낸 것이었습니다. 다성은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그러자 칠지가 M38을 읽어보라고 하면서 책을 빌려주었습니다. 다성은 제자리에 돌아와서 해당부분을 찾아 보았습니다.
“... 알음알이(識식)는 조건을 반연하여 생기는데, 그 각각의 조건에 따라 알음알이는 이름을 얻는다. 알음알이(識)가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눈의 알음알이(眼識)라고 한다. 알음알이(識)가 귀와 소리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귀의 알음알이(耳識)라고 한다. 알음알이(識)가 코와 냄새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코의 알음알이(鼻識)라고 한다. 알음알이(識)가 혀와 맛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혀의 알음알이(舌識)라고 한다. 알음알이(識)가 몸과 감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몸의 알음알이(身識)라고 한다. 알음알이(識)가 마노(意)와 담마(法)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마노의 알음알이(意識)라고 한다.”
(다성은 생각했습니다. 만약 ‘무의식, 잠재의식, 초월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마노와 담마의 범위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알음알이(識식)가 마노(意)와 담마(法)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마노의 알음알이(意識)라고 한다.”는 대목을 여러 번 읽고 그 뜻을 음미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마노는 마음인데, 현재의 내 마음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별해서 알 때 붙여주는 이름이다. 마치 여기에 김 길동이 있다면 그를 <사람>이라고도 하고 <철수 아빠>라고도 하고 <김 대리>라고도 하듯이, 또 눈, 귀, 코, 혀, 몸을 감각기관으로도 말하듯이, 마음도 자신의 내면을 볼 때는 이름을 마음이라고 하지 않고 마노라고 하는구나.’ 하고.
그렇다면 현재의 마음(마노)이 자기 내면의 현상을 분별해서 알 때, 거기에는 나의 <마노>가 분별해서 안 것들만이 있지, 거기에 다른 마노에 의해서 생긴 다른 상태의 내용들이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내 눈이 갑자기 망원경 눈이 되어서 저 멀리 보는 일은 없듯이, 현재의 내 마노(마음)가 ‘무의’라는 마음으로 바뀌어서 ‘무의’의 알음알이(無意識무의식)가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현재 마음이 ‘잠재의’라는 마음으로 바뀌어서 ‘잠재의’의 알음알이(潛在意識잠재의식)가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내 현재의 마음(마노)이 변해서 ‘초월의’가 되어 ‘초월의’의 알음알이(超越意識초월의식) 같은 것이 생길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 다성은 칠지에게 책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말했습니다. 칠지는 자신이 도달한 결론도 그렇다고 다성의 생각에 동의해주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무의식’이라든가 ‘잠재의식’이라든가 ‘초월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별해서 안다’는 것에 해당하는 식(識, 알음알이)이 아니고, 인간에 잠재해있는 잠재성향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어서 칠지가 비유를 하나 들어주었습니다. 물길을 계속해서 동쪽으로 내면 마침내 물길이 동쪽으로 흐르듯이, 사람도 계속해서 어떤 쪽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의도하고 생각을 일으키고 행위한다면 그쪽으로 삶이 흘러갈 것이고 그쪽으로 무엇인가가 쌓일 것이고 결과물들이 잠재하게 될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무의식이라거나 잠재의식이라거나 초월의식 등의 이름으로 부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마음(마노)을 가지고 담마(법)를 설명하면 충분하므로, 마음을 미지(未知)의 것으로 바꾸어 설명하는 그런 개념은 그냥 놓아두고 공부하지 말자고 제안했습니다. 다성도 칠지의 말에 수긍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배우고 알게 된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마음은 현재 어떤 조건에 있는가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는구나, 마치 어떤 상황에서는 얼음이라고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물이라고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수증기라고 하듯이. 그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마노로 담마를 분별하여 알 때는 식(識)이라고 하는구나. 한편, 배우지 못하고 성인들의 가르침을 듣지 않아서 앎이 없는 다성과 같은 사람들은 : 그런 식(識)이 어떻게 어떻게 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물들게 되는데 그때는 이름을 심(心)이라고 하는구나. 이렇게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있으니 다성과 같은 사람들은 : 아 마음이 괴롭다, 마음이 우울하다,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차 있다 등의 말을 하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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