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낸 이야기

5 도적을 만남

풀빛 너머 2018. 1. 18. 21:15


5. 들판을 가로질러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저 들판 너머 언덕에 도적들이 숨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칼로 위협하여 재물을 빼앗고 있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깜짝 놀라면서 그 사람에게 어디 다치거나 재물을 잃지나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아무 이상이 없다면서 저기 샛길은 안전하니 그리로 가라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고맙다며 그에게 앞마을에서 얻은 주먹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알려준 샛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새들이 지저귀고 냇물이 흐르고 토끼며 노루가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다성 일행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얼마쯤 갔을까요, 갑자기 도적들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는데, 우두머리는 바로 조금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들판 너머 언덕에는 경찰이 자주 순찰하여 자신들의 근거지를 이곳으로 옮겼다며 목숨은 살려줄 테니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은 가진 것이 없었고, 칠지와 다성과 일행은 가진 것을 모두 뺏겼습니다.

 

다성과 일행은 앞길이 막막하여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빙청 선인이 다성 일행을 잠시 자리에 앉게 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애써서 장만한 여행 경비며 물품이며 모두 다 잃었습니다. 매우 상심하시고 분한 마음이 가득하실 겁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을 겪었다고 하여 내 삶이 마지막이라고 절망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말을 마치자 빙청 선인은 다성 일행을 위해 연민의 마음을 닦았습니다. 제자들도 빙청 선인 옆으로 앉아서 연민의 마음을 한 방향 두 방향 세 방향 네 방향으로 가득하게 닦았습니다.

 

칠지가 다성 일행 쪽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연민은 다른 생명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먼저 나 자신을 가엾게 여겨도 됩니다. 태어나고 늙고 죽고야 마는 나를 가엾게 여겨도 됩니다. 연민은, 가족들이 괴로움이 있다면 괴로움이 없기를, 고통이 있다면 고통이 없기를, 위험이 있다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자꾸 범위를 넓혀가도 됩니다. 내 친척, 내 친구들, 우리나라 사람들, 지구의 모든 사람들, 짐승들, 벌레들, 그리고 작거나 크거나 간에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괴로움이 없기를, 고통이 없기를,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하고 넓혀 나가도 됩니다. 이 마음을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남쪽으로도 북쪽으로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위와 아래로도 가득 채웁니다. 그대가 아프지 않기를!”

 

다성은 처음에는 칠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다 잃어버렸다는 절망과 좌절, 또 도둑에 대한 분노가 마음에서 들끓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성도 앉아서 가만히 있노라니 점점 호흡이 느껴지고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습니다. 그러자 예전에 배운 자애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안락하기를, 태평하기를!’ 하는 마음이 차츰 차츰 자신을 채워나가는 듯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정도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성도 연민하는 마음을 일으켜 보았습니다. 그러나 쉽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성이 이렇게 연민의 마음을 닦으려고 자꾸 그쪽으로 마음 쓰고 생각을 일으키고 있는데, 갑자기 이보시오.”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돌아보니 도적들이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업고서 달려오는 중이었습니다. 도적들이 우두머리를 땅에 내려놓았고 우두머리는 빙청 선인에게 기어가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다성 일행은 그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배를 움켜지며 고통스럽게 울먹였습니다. “수행자시여, 아까 나누어주신 주먹밥을 먹었을 때는 맛이 꿀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고 조금 있으니 갑자기 배가 아파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점점 고통이 심해졌습니다. 마치 창자가 찢겨나가는 것 같습니다. 참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우두머리가 부하들에게 지시를 하자 도적들이 칠지와 다성과 일행에게서 빼앗은 재물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도적 우두머리의 고통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수행자시여,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재물을 뺏기 위해 수행자님을 거짓으로 속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재물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이제 그대가 잘못을 뉘우치니 그대의 뉘우침을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도적 우두머리의 배가 다 나았는지 벌떡 일어나 부하들과 함께 떠나갔습니다. 다성 일행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다시 출발하여 빙청 선인 일행은 어느 덧 샛길을 다 지나왔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도적들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속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다성이 옷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도적 소굴로 돌아가서 자신은 이제 여기를 떠나겠다고 하니, 두목이 냉혹한 웃음을 지으며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 기다린다고 했고, 자신이 죽음 대신에 다른 길이 있느냐고 하니까, 두목이 돈 일억을 내면 풀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일억을 주었고, 도둑들이 자신의 옷을 벗기더니 칼로 옷을 난도질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빙청 선인이 어떻게 일억을 마련했는지를 물으니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집이 매우 가난하여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금 두목이 찾아와서 좋은 직장을 소개해준다며 데려간 곳이 바로 도적 소굴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로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고 유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도적질을 하여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머니께도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네 번째 다섯 번째 죄는 짓지 않으려고, 그날 빼앗은 물품을 나누어 두목과 부하들이 시내에 나가 술 마시고 놀 때, 저는 제가 할당받은 재물을 가지고 원주인을 찾아가 사죄하고 돌려주었습니다. 재물을 돌려받은 원주인들은 때로는 저를 꾸짖고 때로는 저를 동정하고 때로는 어서 도적 소굴에서 나오라고 하고 때로는 저에게 돈을 조금씩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빼앗은 재물 중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것을 돌려주려고 원주인을 찾아 갔더니, 어떤 노인이 나왔고, 그 노인은 혼자 살았고 다른 자식이 없어 자신에게 모든 유산을 물려주었고, 도적 소굴에서 나와 자수하라고 유언처럼 말했고, 바로 다음 날 그 노인이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말을 마치자 그 사람은 엉엉 울었습니다.

 

이윽고 울음을 그치자 그가 말했습니다. “수행자시여, 그동안 제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제가 지은 악행을 참회하오니, 저의 참회를 받아주십시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그동안 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잘못을 바른 방법으로 참회했습니다. 나는 그대의 뉘우침을 받아들입니다. 이제 그대가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한다면. 앞으로 그대의 삶이 향상할 것입니다.” 그 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은 자수했고, 여러 상황이 참작되어 형량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느낌>에 대해  (0) 2018.01.22
6 급류에 휩쓸려 갈 때  (0) 2018.01.21
4-1 물질(몸)에 대해  (0) 2018.01.17
4 물질(몸)에 대해  (0) 2018.01.17
3 무엇이 불타는가?  (0) 2018.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