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분 10초 ~ 46분 20초)
2. 욕탐의 양방향성
... 사적(私的)이어서 전달되지 않은 사유를, 생각만 하고 말 것인 사유를 부추겨서 신업 ∙ 구업으로 드러내 주는 역할을 누가 하는가 하니, ‘찬다라가’인 ‘욕탐’이 합니다. 이렇게 삶은 일차인식, 이차인식을 거쳐, 찟따가 되고 갈애로 와서, 몸과 만나기 이전에 찟따의 영역이 사유라는 데서, 몸과 만나서 의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업은) 아직 사적으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의업)이 (일부는) 욕탐에 의해서 부추겨져서 (몸과 말로) 드러나기도 하고 일부는 부추겨주지 않아서 생각만 하다가 말지요.
(이렇게 욕탐은 의업을 부추겨서 몸과 말로 드러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욕탐이 어디에 또 있나요? 일차인식에서 욕탐이 부대합니다, 즉 부수적인 것으로 참여합니다. 이 욕탐이 바로 (칠판에서) 여기에서 나타난 이 욕탐이 작용한 것입니다. 이 욕탐은 번뇌로부터 시작한 딱까 내부에서 생겨난 (칠판에서) 이 탐이 그대로 실려온 것이라서, 욕탐은 탐과 함께 한 것이지요. 그런데 탐은 무명 위에서 전개된 것이므로 경전은 이 욕탐을 무명의 요소라고 표시해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을 하나 볼 수 있어요. 일차인식에서 출발하여 이렇게 행위를 거쳐 왔는데, 사유를 거쳐서 욕탐이 부추겨주었는데, 이 욕탐은 ①부추겨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②일차인식으로 되돌아와서 인식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찬다라가, 즉 욕탐은 양방향성을 가진다’, 이런 개념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삶의 메커니즘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욕탐에 와서 양방향성을 갖는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욕탐이 결국은 (칠판에서) ①이 과정을 거쳐서 사유를 부추겨서 보내고, ②그 사유를 부추긴 것이든 아니든 다 끌고(거느리고) 일차인식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여기 일차인식에 간섭하는 욕탐(무명의 요소)은 언제 것인가요?
예를 들어 지금을 1이라고 하면 대상을 인식하는 일로부터 시작하는데, 식(識)도 1이고 수(受)도 1이고 상(想)도 1이라서, 일차인식, 이차인식도 모두 1이라는 순간의 삶을 사는 거지요. 그래서 사유도 1의 생각이지요. 그래서 1번 사유를 욕탐으로 싣고 쭉 왔습니다. 그러면 이 욕탐은 일차인식에 참여할 때는 어느 시점이 되어야 하는가요?
(욕탐은) 싣고 오기를 1을 싣고 와서 (일차인식에) 간섭하므로, 이제 새로 (일차인식을 하는) ‘내입처 + 외입처 + 욕탐’의 관계는 새로 2번 순간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2번 순간을 사는 삶에는 욕탐은 이전의 1번 상황을 그대로 싣고 온 것이므로, 욕탐은 ‘한 순간 이전의 (번뇌로부터 시작된) 사유까지를 거쳐 온 것을 싣고 온 것이지요. 즉, 욕탐은 “한 순간 이전의 내면의 상황을 싣고” 욕탐이라는 이름으로 일차인식에 참여합니다(부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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