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1분 5초 ~ 1시간 9분 48초)
4. 심(心)의 활동성이 제어된 상태를 부르는 말들
그래서 지난 주에 드린 그림을 하나 보겠습니다. 중간에 심(心)이 있고, 형성 과정이 있고 내적 행위가 있고 외적 행위가 있고, 형성 과정의 제어가 있고, 심의 몸통 지가 있지요. 왼쪽에 박스를 하나 쳐놓았어요. 심을 중심으로 하는 이 수평선에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이 선(線)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하면, 경전은 (심(心)의) 활동성이 완전히 제어된 상태를 여러 측면에서 불러요.
한번 볼까요? 첫째로는 떨쳐버림(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는 표현을 떨침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떨침은 어떤 행위인가요? ‘아-따-삐- 삼빠자-노- 사띠마-’ 라고 하지요. 지금 내 마음의 상태를 발견해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그름은 버리고 옳음으로 돌아가고 옳음은 유지 향상한다고 할 때, 그 개념을 떨침이라고 부르지요. 불선법, 괴로움을 만드는 법을 떨쳐버린다고 해서 떨침이라는 단어로 아주 비중있게 나타납니다.
(그림의) 뒷 페이지를 보시면 무엇이 팔정도인가? 해서, 도 상윳따 전체를 가지고 엮은 거에요. 보시면 수승한 지혜, 완전한 지혜, 완전한 부숨, 버림을 위한 팔정도이면서 첫째로 팔정도가 정의됩니다. 떨쳐버림을 부대하고 이탐을 부대하고 소멸을 부대하고 놓아버림으로 귀결되는 정견 내지 정정. 이렇게 팔정도가 정의 됩니다.
어쨌든 네 가지 중에서 첫째가 떨쳐버림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 살아가는데 거기에 ‘나는 안 좋은 것은 떨칠 것이여.’ 라고 하는 이런 의도, 이런 삶의 과정을 부대한다고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데 그런 (불선법들을) 떨치자 하는 것을 얹어 가지고, 수행하는 삶을 통해 괴로움을 만드는 법을 떨쳐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떨침의 완성이 어디인가 하면, 떨친다고 하는 이것은 기본적으로 떨쳐내는 행위이잖아요. 이 행위가 마음이 만들어지는 그 과정에는 적용이 안 됩니다. 마음이 만들어지는 그 과정에는 적용을 못하기 때문에 방금 읽어본 곳에서 ‘떨침을 부대하고 이탐을 부대하고 소멸을 부대하고’ 라고 했지요.
이탐(離貪)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하여간 떨침을 통해서 활동성의 영역을 다 제어했다고 하면 (심(心)이) 형성된 이후의 문제는 다 해결된 거지요. 그러면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심(心)의) 형성 과정의 문제가 남아 있지요. 형성되는 과정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탐이 있고 무명이 있지요. 이 탐을 부수자, 탐을 제거하자는 것이 이탐이지요.
다음으로는 ‘소멸을 부대하고’ 라고 했습니다. 소멸, 멸(滅)이 무엇인가요?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일어나는 거지요. 이탐과 소멸, 이 두 가지가 떨침에 의해서 활동성이 완전히 제거되고 나면, 마지막 남아 있는 형성과정의 문제인 탐과 무명, 또는 탐과 번뇌를 부수는 과정입니다.
이때 이렇게 떨침의 영역, 활동성의 이 문제를 제거하는 과정을 사념처라고 말하고, 이것은 사띠가 완성되는 거에요. 사념처의 완성, 사띠의 완성입니다. 이때 이탐, 탐을 부수자는, 이탐하는 수행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면 사마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소멸하는,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일어나는 이 과정의 문제를 푸는 것이 위빳사나입니다.
그러면 어떤가요? 찟따가 생겨난 이후의 모든 문제는 사념처로 해결하고, 사념처가 완성되면 (심(心)이) 생겨나는 과정의 문제는 사마타로 이탐하고 위빳사나로 소멸하여, 형성 과정의 문제까지 해결하고 무위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이런 과정을 팔정도에서 이렇게 설명을 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다시 이 그림으로 돌아오면, 이 그림에서 이 선(線)에 대해서 첫 번째로 그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 떨침입니다. 어쨌든 행위를 제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염오의 완성이라고 했어요. 염오는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있지 않음으로싸 난디를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것(난디)을 부수는 것이 염오입니다. 그래서 염오는 어떻게 되나요? 떨침이라는 것이 활동성의 모든 문제를 대상으로 하는데, 그 떨침의 마지막 과정을 염오라고 보면 되지요. 이 딱까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제어하고 나서 딱까 안으로 들어와서 난디가 생겨나지 않게 염오하는, 이것은 떨침이라고 하는 것의 완성과정인 것이고, 이것을 염오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단속 또는 행위의 제어의 완성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예전에 본 것이지만 단속이라는 단어가 다섯 군데에서 나타나지요. 어디인가요? 신업 구업, 여기가 단속 1번입니다. 계를 지키는 것이지요. 단속 두 번째가 신구의(身口意) 삼업이지요. 단속 세 번째가 여기서 감각기관의 단속이라고 하여 단속 3번이 나오지요. 그리고 육촉처의 단속이라고 하여 촉의 자리에서 단속 4가 나오지요.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 제시되는 단속자리가,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있으면 단속하지 않는 것이고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있지 않으면 단속하는 것이라고 하여 단속 5번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삶에서 단속이 다섯 차례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단속이라는 말은 ‘떨침’이고, ‘행위를 제어하자, 활동성을 제어하자’입니다. 그래서 그 떨침의 마지막은, 즉 단속의 마지막은, 딱까 안으로 들어와서 염오하는 이것입니다.
'가르침의 이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1. 부대(附帶)한다 (0) | 2017.07.11 |
---|---|
14-5. 신념처후렴구 뒷부분 중 일부 (0) | 2017.07.06 |
14-3. 신념처후렴구 뒷부분 중 일부 (0) | 2017.07.04 |
14-2. 신념처후렴구 뒷부분 중 일부 (0) | 2017.07.03 |
14-1. 신념처후렴구 뒷부분 중 일부 (0) | 2017.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