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의 이해

10-1. 이 구문의 해석

풀빛 너머 2017. 5. 29. 05:31


▣ 대념처경 - 신념처1[호흡수행 준비과정 - 경전해설](부산 수행 170523)

   [동영상] https://youtu.be/UWohAObdndI


(34분 47초 ~ 39분 4초)

1. 우리가 이 구문을 끊은 상황

(기존의 해석과 다르게 해석한 해피법당의 이 해석은 어떠한가요?)

문제는 이런 이야기가 문법적으로 타당할까요? 제가 지난 번 서울 법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삶의 메커니즘을 규명해내었는데, 이 메커니즘이 정말로 경전을 해석하고 번역하는데 참 휼륭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경전을 해석하는 데는 두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 한 가지는 빠알리 어를 문법적으로 잘 아는 것이고, 그래서 문법적으로 어긋남이 없이 빠알리 경전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익숙하다고 해서 경전이 제 모양을 오롯이 드러내 주는가 하면, 그것은 좀 달리 볼 수 있습니다. 빠알리 어를 하는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빠알리 어가 먼저 확립되고 나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셨을까? 아니면 부처님이 설하신 법을 그 법에 맞추어가지고 따져보니까 빠알리 어가 이렇게 문법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을까?’ 하고. 우리는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빠알리로 문장을 문법적으로 해석해내었다는 것과 그럼 그렇게 해석해낸 그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부분입니다.) 부처님이 그 문장을 통해서 무엇을 알려주셨는가? 경전이 설해진 의도가 무엇일까? 라고 접근할 때는 문법만 가지고 완전한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이제 우리가 어쨌든 그간 과정을 통해서 테라와다의 오랜 전통의 상당 부분을 뒤집어가면서 부처님한테로 불교를 되돌리는 이런 과정의 중간에, 삶의 메커니즘이라고 하는 하나의 도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주 어렵다는 주제들을 그냥 접근해가지고는 해석이 안 되지만, 메커니즘위에서 그 아주 어려운 주제가 메커니즘의 어느 자리를 설하고 있는 구문인가? 라고 자리를 찾아가지고 들여다보면 해석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가 메커니즘을 그래도 아직은 더 많이 연구되어야 되겠지만, 커다란 틀에서 삶의 이야기의 부처님의 시각을 규명해낸 거예요. 그러다보니 ‘경전을 메커니즘위에서 해석을 하면 참 잘 해석이 된다.’ 라고 우리가 알고 있잖아요. 지금 이 부분에서 제가 그렇게 접근을 하는 거예요.


일단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쪼갠 것하고, 거기에 무엇인가 불만족스러워서 문장을 쪼개는 자리를 제가 수정을 했습니다. 그러면 수정한 이것이 두 가지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한 가지는 문법적으로 하자가 없이 잘랐는지, 또 한 가지는 이렇게 나누었을 때 메커니즘적으로 설명이 되는지(의미를 가지는지), 이 두 가지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39분 6초 ~ 41분 35초)

2. 문법적으로 틀렸는가?

제가 어제 경주를 다녀왔어요. 경주에는 니까야 빠알리 어를 아주 많이 공부하신 박사님이 계셔요. 아주 특별히 공부를 잘 하셔서 인정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어제 만나서 제가 우리 교재를 꺼내 놓고, 기존에 끊었던 부분들이 ‘내 생각에는 이러이러하다. 무엇보다도 <빠니다-야>라고 하는 이 단어가 자기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 이것 때문에 나는 나누는(끊는)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끊는 자리를 바꾸어놓고 ‘이 박사님이 답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이것이 문법적으로 틀렸습니까?’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아주 많이 불편해하시면서 조심스러운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 어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피스님처럼 자르지(끊지)를 않았습니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박사님이 제 말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해피법당에서 구문을 끊는 자리와 해석)이 문법적으로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당신(박사님)이 느끼는 어떤 어색함이라는 것을 커버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문법적으로 틀리지는 않았습니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해피법당의 해석은 <아-부지뜨와->를 앞에서도 수식하고 뒤에서도 수식을 했고, <빠니다-야>는 뒤에서 수식을 했고, <우빳타뻬-뜨와>는 앞에서 수식을 했는데, 박사님은 ‘뭐, 문법적으로는 얼마든지 맥락에 따라서 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피법당의 끊는 부분과 해석이) 문법적으로 틀리지는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놓고, 그러면 문법적으로 타당하다고 한다면 (해피법당의 끊기와 해석으로 대념처경의 이 구문을) 접근해 볼 수 있어요.



(50분 52초 ~ 51분 42초)

사실은 어제 이 박사님도 ‘이 부분(해피법당의 구문 끊기)은 별 문제가 안 됩니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으로는 참 어색해 보이는 것이 ‘<빠리무캉> 여기에서 끊어서, 앞의 것은 더 앞쪽을 수식한다고 하고, 뒤의 것은 다음 것을 수식한다고 하니 이것이 어색합니다.’하셨고, 그래서 제가 ‘(문법적으로)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까?’라고 하니까,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법적으로 가능합니다. 가능하기는 하지만 좀 어색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문법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라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삶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규명하는, 사는 이야기 위에서 해석이 되면 맞는 해석이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