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장구 간단히

중용장구 제18장, 간단히

풀빛 너머 2017. 3. 31. 10:47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한문 원문과 해석을 복사해 와서 제가 좀 편집을 했습니다. 주소는 여기입니다.

http://ushg.co.kr/board/bbs/board.php?bo_table=class


강의 필기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운영하는 사이버서원에서 권경상 선생님의 중용장구 강의를 들으며 대충 그 부분만 필기한 것입니다. 필기 중에 제가 잘못 필기했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중용장구 제18장입니다. .



18. 子曰 無憂者 基惟文王乎신저 以王季爲父하고 以武王爲子하니 父作之어늘

【풀이】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걱정이 없는 사람은 오직 문왕일 것이다, 왕계를 아버지로 하고 무왕을 아들로 두어서, 아버지가 왕업을 일으키고 아들이 이를 계승하였다.

〔주〕文王 : 周나라의 시조인 武王의 아버지, 성은 姬, 이름은 昌, 殷의 紂王 때 西伯이 되어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며, 아들인 武王이 殷을 멸망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諡號를 文王이라고 함 / 王季 : 문왕의 아버지로서 이름은 季歷, 후에 왕으로 추존되어 王季로 불림 / 武王 : 문왕의 아들로서 이름은 發. 아우 周公 旦과 협력하여 殷을 멸망시키고 周를 세움.


(강의 필기 : (주나라 이야기를 함. 옛날에 양반 노릇을 하려면 가장 기초가 먼저 보학(譜學)을 알아야 함. 내 집 조상만 아는 것이 아니고 남의 집 조상도 알아야 함. 우리나라의 갑족이다 을족이다 하는 여러 집안의 족보를 알고 있어야 함. 양반들 조상을 다 알아야 함. 누구 하면 그는 누구 자손이고 하는 것을 딱 알아야 함.) (후직 - (여러 대를 거쳐) - 조감(공숙조라고도 함) - 고공단보 - (아들이 셋) 태백, 중옹(우중), 계력 - 창(계력의 아들) - 발(무왕), 단, 석 / 서방 제후 중의 우두머리-서백. 무왕이 왕이 되니까 아버지를 문왕으로 추중함. 계력도 추중되어 왕계. 고공단보는 태왕이라고 추중)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근심이 없을 사람은 아마도 오직 문왕뿐일 것이다. (요임금이나 순임금이나 우임금은 부모가 못났거나 자식이 못났음. 그러나 문왕은 부모도 잘났고 자식도 잘 났으므로 본인 자신만 잘 하면 되었음) (어떤 일로 인한 근심은 환(患),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은 우(憂)) (고공단보는 적공누인(積功累仁)한 사람, 아들 무왕은 계지술사했음. 그래서 문왕은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했음) 왕계는 아버지가 되었고 무왕은 아들이 되었으니 아버지는 왕업의 기틀을 세웠고(아버지는 천자의 기업의 기초를 놓았고) 아들은 그 윗대부터 내려온 일을 준수하여 실천하였다. (술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준행(준수하여 실천하는 것)하는 것) 제례작악(制禮作樂)하는 것은 성인. 문왕이 한 것은 어떻게 하면 백성들과 관인들이 불평이 없을까를 근심하면서 왕의 일을 부지런히 함. 후인들이 볼 때는 근심이 없을 것이라고 여김. (천하 사람들을 근심했지만,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한테 근심이 없었으니까 근심이 없을 것이라고 했음) (왕가는 꼭 왕가의 일이 아니고 나랏일을 뜻하기도 함. 우근-임금이 하는 근심)



武王 纘太王王季文王之緖하여 壹戎衣 而有天下하되 身不失天下之顯名하고 尊爲天子시고 富有四海之內하여 宗廟饗之하며 子孫保之하니라

【풀이] 무왕이 태왕·왕계·문왕의 일을 계승하여, 한번 전투복을 입어 천하를 평정하였다. 그러나 몸은 천하의 훌륭한 명성을 잃지 않으셨으며, 존귀함은 천자가 되시고, 부유함은 사해를 소유하셨다. 종묘에서 그를 제사지냈고 자손들이 계속 보존하였다.

〔주〕大王 : 大는 太와 통용하므로 大王은 太王을 가리킴. 문왕의 祖父. 후에 무왕이 추존하여 太王이라는 시호를 붙임. 이름은 古公亶父 / 戎 : ②군사 융, (병장기 융, 오랑캐 융) 戎衣는 갑옷과 투구. 壹戎衣는 한번 갑옷과 투구를 입고 紂王을 정벌했다는 뜻.


(강의 필기 : (추중법이 주나라부터 시작되었다고 봄) (내가 2품관이면 위의 조상이 추중됨. 2품에는 정헌대부, 자헌대부, 자의대부(조선시대 초기에는 가정대부였는데 중국에서 연호를 가정을 써서 자의로 바꿈), 가선대부. 아들이 높은 벼슬에 오르면 아버지는 아들보다 훌륭하다고 하여 한 품계 높은 것을 줌. 추중법은 그 품계에서 가장 높은 것을 줌. 2품이었다면 추중된 아버지는 1품이 됨. 정1품도 있고 종1품도 있는데, 대광보국 순록대부(영의정에 해당)을 받음. 조부는 손자와 같은 계급을 받음. 내가 가선대부라면 할아버지는 정헌대부(2품관의 최고)를 받음. 증조부는 손자보다 하나 밑이므로 3품관이고 3품관의 가장 위가 통정대부를 받음. 이런 분은 비석에 모두 ‘증’이 들어있음. 대부들도 추충을 받고 제후들도 추중을 받음.)

(무왕이 태왕, 왕계, 문왕의 왕업을 일으킨 통설을 계승하여 한번 전쟁을 일으켜서 천하를 소유하였는데 자신은 천하에 드러난 명예를 실추하지 않았으며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므로 다 잊어버림. 무왕은 한번 이렇게 이족을 말살시켜놓고 정치를 잘 하니까 ...) 존귀함은 천자가 되었고, 부유함은 사해 안을 소유하였고 (사해는 중국 전체) 무왕이 종묘를 세워서 자신의 선공(제후였으니까 선공이라고 함)과 선왕에게 제사를 드렸고 자손들이 종묘를 보존해왔다.)



武王 末受命이어늘 周公 成文武之德하여 追王太王王季하고 上祀先公 以天子之禮하니 斯禮也達乎諸侯大夫及士庶人하니 父爲大夫이오 子爲士어든 葬以大夫이오 祭以士하며 父爲士 子爲大夫이어든 葬以士이오 祭以大夫하며 期之喪 達乎大夫하고 三年之喪 達乎天子하니 父母之喪 無貴賤一也니라

【풀이】 무왕이 말년에 천명을 받자, 주공이 문왕과 무왕의 덕을 완성하여 태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追尊)하고, 위로 선공(先公)을 천자의 예(禮)로써 제사지내니, 이 예는 제후와 대부 및 서민에게 모두 통용되었다. 아버지가 대부(大夫)가 되고 아들이 사(士)인 경우에는, 장례는 대부(大夫)의 예(禮)로써 지내고 제사는 사(士)의 예(禮)로써 지내며, 아버지가 사(士)이고 아들이 대부(大夫)인 경우에는 장례는 사(士)의 예(禮)로써 지내고 제사는 대부(大夫)의 예(禮)로써 지내며, 1년상(喪)은 대부에게까지 통용되고, 3년 상(喪)은 천자에게까지 통용되니, 부모의 상(喪)은 귀천에 관계없이 한결같았다."라고 하셨다.

〔주] 周公 : 무왕의 동생으로서 이름은 旦. 무왕의 아들인 成王이 어린나이에 王位에 오르자 보필하여 禮樂과 文物制度를 만듦. 후에 孔夫子가 周公의 업적을 칭송함. / 追王 : 文王·武王의 뜻을 미루어서 왕의 자취가 일어난 것에까지 미친 것임. / 先公 : 組紺 이상으로부터 后稷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또한 大王과 王季의 뜻을 미루어서 무궁한 데까지 미친것임.


(강의 필기 : 무왕이 말년에 천명을 받았거늘, 주공은 문왕과 무왕의 덕(마음가짐, 마음가짐은 지로 봄)을 이루어 (문왕과 무왕의 뜻을 성취하여) 태왕과 왕계를 추존하여 왕으로 높였고, 그 위로 (태왕 위로 조감부터 후직까지) 천자의 예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으니, 이러한 예는 제후나 대부나 또 사(1.하급관리는 상사중사하사도 사이고, 학업에 뜻을 둔 선비도 사), 일반관인(일반 백성출신으로 관직에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통용되는 예이다. (다음은 그것을 설명하고 있음) 아버지는 대부가 되었고 아들이 사가 되었다면 대부로서 장례를 지내고 사의 자격으로서 제사를 드리며, 아버지가 사가 되었고 아들이 대부가 되었다면 사의 자격으로서 장례를 지내고 대부의 자리로 제사를 드리며, (장례는 돌아가신 분의 지위에 맞게 하고 제사는 자신의 지위에 맞게 함) 기년복을 입는 상은(조부, 숙부, 형제에게 기년복을 입음. 단, 승증손-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뒤를 잇는 맏손자는 삼년상복을 입음) 대부에게까지 통용되고 (대부 너머는 기년복이 없음. 즉 제후는 없음) 삼년 복을 입는 상은 (부모 돌아가실 때는) 천자에게까지 공통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부모의 제사는 지위를 따지지 않고 똑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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