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47-31~35)[사념처의 개념 & 수행의 마지막 과정](부산 수행 170314)
[동영상] ☞ https://youtu.be/8B2b5lU-278
(이 글은 해피스님의 위 동영상 법문을 조금 녹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 듣고 잘못 적어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오타가 있을 수도 있으니 널리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2분 2초 ~ 28분 4초)
자, 이렇게 놓고 보면 어떤가요? 처음 시작은 식과 명색이라는 과거 삶이 누적된 내가 있어서, 그것이 육입(六入)이라는 지금 이 순간 펼쳐져서 지금을 딱 출발하니까, 거기에서 삼사화합촉(觸)으로 → 수(受)로 → 그리고 애(愛)로 → 그 다음에 취(取)로, 이렇게 가지요. 십이연기에서는 이것을 보통 어떻게 번호를 매겨 주나요?
(무명과 행이 있지만 좀 배제하고 보면), (칠판에서) 식이 3번이고 명색이 4번이고, 육입이 5번, 촉이 6번, 수가 7번, 애가 8번, 취가 9번이에요. 그럼 10번은 무엇인가요? 취를 조건으로(=오염된 행위를 조건으로) 식이 오염되어 와서 쌓이는데 취 다음에 10번 유(有)이지요.
이게 하여간 우리 삶이라는 것이 평면적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림을 한번 그려보려고 생각은 하는데 아직 못 그렸어요. 이것이 (칠판에서) 요 그림이라면 요 상태를 식과 명색으로부터 쭉 해가지고 취까지 갔어요. 그랬더니(취, 오염된 행위를 했더니) 식이 머물러 증장했다고 해서 여기(3번 식)에 쌓였잖아요. 그럼 여기 쌓인 이것(오염된 행위(취)를 해서 3번 식에 쌓인 식)은 3번 식하고는 좀 다르지요. ‘3번 식 + 알갱이 하나’가 쌓인 것이지요.
그럼 이것이 무엇인가요? (해피스님께서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이심) 이런데다가, 따지면 한 순간을 살아서 하나가 더해진 거예요. 더해진 것이니까(종이 한 장위에 다른 종이 한 장을더 얹으면) 이 상태는 (처음의 종이 한 장일 때의) 이것하고는 달라진 거예요. 법우님, 이것이 이해되나요? 달라졌어요. 한 순간을 또 더 살면 (종이가 또) 하나 더 올라오겠지요. 이것이 식하고 명색이거든요. 한 순간을 살아서(오염된 행위, 9번 취를 하여) 식이 머문다고 해서 (여기 3번 식에 와서는) 이렇게 되었어요. 그럼 이것을 똑같이 식하고 명색(처음의 3번 식과 4번 명색)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즉 이 (처음의 3번) 식과 (처음의 4번) 명색하고, 하나가 더해져서 생겨난 이 식과 명색은 같은 것인가요? 예, 다르지요. 그런데도 이것을 똑같이 식과 명색이라고 표현을 하면 이것이 곤란해져요. 이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후자의 상태는 분명히 식이 하나 늘어났고 명색도 하나 늘어난, 개념적으로는 뭐 이런 상태이겠지요. 그러니까 식과 명색이라는 이 상태에 플러스 1(처음 식 명색 + 1), 이것이 되겠지요. 달라진 것이겠지요. 한 순간 산 결과가 쌓인 것이니까요.
내용을 보면 식이 늘어나고 명색이 늘어난 것이겠지만, 분명히 3번 4번 식 명색하고는 다른 거지요. 다른 것이니까 ‘아, 이런(식 - 명색 - 육입 - 촉 - 수 - 애) 과정을 거쳐서 집착(9번 취)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식이 머물러 여기(처음의 3번 4번 식 명색에) 플러스 1(+ 1) 된 이 상태는, 무엇인가 내용으로는 식과 명색이지만 (처음의 3번 4번 식 명색과는) 다른 거예요. 이 달라진 형태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되잖아요. 그 다른 방법으로 부르는 이름이 유(有)입니다.
그럼 유(有)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식이 플러스 1된 것이고 명색이 플러스 1된 상태’입니다. 그렇지요? 이 개념을 보는 것이 십이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고 십이연기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럼 (3번 4번) 식과 명색으로부터 출발해서 이렇게 와서 10번 유까지 온 겁니다. 그럼 10번 유는 존재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존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해요. 유에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어떤 세 가지가 있나요? 유에는 ‘욕유, 색유, 무색유’, 이렇게 세 가지가 있잖아요. 이것은 무엇인가요? ‘욕계 중생, 색계 중생, 무색계 중생’, 이것이잖아요. 식과 명색을 함께 한 오취온인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유신(有身)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신이 바로 욕계 색계 무색계를 살아가는 중생이지요. 유라고 하는 이것은 내용이, 식과 명색이 한 순간 삶의 결과를 더해서 (3번 식에서 출발하여 9번 취까지 과정을 거쳐 식이 머물러 다시 3번 식에 쌓여서 (식이 있으면 명색은 함께 있으니까) 달라진 식과 명색인 나예요. 이 개념입니다. 이것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부처님 이래로 2600년 동안 이것을 몰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석서 등에서는 이 부분을 엉뚱하게 해석힌 것 같아요.
(28분 5초 ~ 29분 56초)
자, 어쨌든 유(有)라는 것이 ‘식과 명색의 누적이 달라지는 이런 상태’라는 것에서 다음 부분은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식이라고 하는 이것은 얼마나 사나요? 하여간 수행을 통해서 해탈해서 윤회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 이것(식)이잖아요. 그런데 명색 중에서 색이라고 하는, 색에 포함되는 이 몸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백년짜리 이잖아요. 백년이 지나면 죽어야 되잖아요. 죽으면 명색이 통째로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식과 명색은) 서로 조건된다’라는 것 때문에 식은 죽지 않고 있는데 명색은 죽어서 떠나가 버렸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나요? (식이) 새로운 명색과 만나야 하잖아요.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식이) 새로운 명색과 만나서 내가 되었다’라는 것을 태어났다라고 말하잖아요. (이것이 11번 태어남입니다.) 태어나면 어떻게 되나요? 늙고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12번 노사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태어난다 라고 하는 것이 11번 태어남이고, 노사가 12번 (노사), 이렇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이것은 출발을 어디서부터 했나요? (3번 식에서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3번부터 12번까지를 갔으니 이것이 십지연기라는 것이지요. 삶의 과정에서 생과 노사라고 하는 괴로움이 생겨나는 과정을 열 단계로 설명하는 것이 십지연기이지요.
(29분 57초 ~ 32분 14초)
(칠판에서) 이것을 딱 보니까 어떤가요?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딱까라는 방 안에) 물음표가 하나 들어있지요. (그런데 그 물음표는) 우리가 아는 거지요. (간단히 설명해보면) 여기에 이차인식을 해가지고 이 (새끼쳐진) 식이 수를 분별할 때 상이 병들어서 번뇌로 간섭하고 ... 여러 과정이 진행됩니다. 이때 여기에서(이차인식의 결과) 무명위에 탐 또는 진이 되지요. 그러니까 이 무명이 1번으로 생겨나지요.
그리고 행(行)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행은 ‘심행(心行), 구행(口行), 신행(身行)’의 세 가지가 있지요. 심행은 이런(이차인식 등의) 과정을 거쳐서 심(心, 찟따)이 형성된다고 알려주고, 신과 구는 무엇인가요? 행위를 하려니까 몸도 있어야 하고 말도 있어야(신구의 삼업 중에서) 신업 구업을 짓지요. 마찬가지로 이(신구의 삼업) 부분에는 의(意)도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행은 ‘심’과 ‘의’와 ‘신, 구’, 이 행위의 주체를 만드는, 행위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행이라고 하지요. 이것이 2번이지요. 딱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1번, 2번을 차지하지요. (이렇게 하면 십이연기가 됩니다.)
(그리고 딱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단 넘어가고), 수를 조건으로 애가 있고 ... 이렇게 죽 진행하다가보면 십지연기가 되고, 딱까 안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상세히 보아서 설명을 하면 십이연기가 됩니다. ‘(칠판에서) 아, 여기 무명이라는 것 때문에 갈애가 되어 식이 머물러서 심이 되는구나. 이러니까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행을 조건으로 식이, 이렇게 식의 머묾의 조건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지요. 그러면 십이연기가 되지요.
(32분 15초 ~ 36분 16초)
자, 이런 상태를 놓고 이야기를 좀 해보지요. 지금 42번 경에서 무엇이라고 했나요? 사념처의 일어남 - 사라짐의 이야기를 하면서 “... 무엇이 신(身)의 일어남인가? 자량(資糧)의 일어남이 신(身)의 일어남” 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신수심법 각각에 대해서 그것의 소멸이 사라짐이라고 했어요.
여기서 소멸이라는 개념은 무엇이지요? 소멸, 멸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지요. 하여간 우리가 이것 놓치면 안 되지요. 상은 중생한테는 병들어 있죠. 그리고 상은 치유가 되지요. 병든 상을 번뇌라고 말하지요. 이때 중생들은 왜 딱까라는 내면의 방에서 갈애가 형성되는 것일까? 라고 할 때, ‘상이 병들어 있습니다, 번뇌입니다.’ 라는 상태로 이차인식에 간섭하므로 무명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수행을 통해서 병을 치료하면 병을 치료했다, 번뇌를 부수었다고 합니다. 그럼 번뇌 아닌 상이 간섭하면 어던 일이 생기나요?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일어난다.’ 라고 표현하지요.
그러면 탐은 따라서 무탐이 되고 진은 따라서 무진이 되지요. 무탐, 무진, 무치라는 상황이지요. 이런 상태, 이것을 놓고 멸이라는 말이 정의가 되지요. 멸은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상의 병듦을 치유함으로써 이차인식의 결과로 무명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이것을 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보면 신수심법 네 가지 모두가 사라짐에 대해서는 한 가지씩을 제시하면서 (사라짐이란 각각 한 가지씩) 그것의 소멸이라고 나타나지요. 소멸이라는 개념을 일단 이 개념, ‘번뇌를 부수어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일어난’ 상태를 적용하자고요.
그러면 이 이야기는 무엇이죠? 멸했다는 상황은 달리 말하면 십이연기적으로는 멸이라는 것은 무명이 소멸된 것입니다. 그런데 십지연기적으로 보면 (십지연기는 딱까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그냥 결과적으로 갈애가 생겨난 것을 말하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멸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멸하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가 작용해서 무명이 생깁니다. 그것때문에 딱까에서 갈애가 생겨난 거잖아요. 그래서 딱까가 갈애의 형성 작용이거든요.
그런데 멸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요? 멸했다는 이것은 갈애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지요. 어쨌든 멸하면 무명이 없어지고 그로 인해서 갈애가 없어진 상태입니다. 이렇게 소멸이라는 개념을 먼저 좀 이해하고 다음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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