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낸 이야기

14-2 공(空)에 대해

풀빛 너머 2018. 2. 28. 12:23


14-2 다성은 오늘 공()에 대해 조금 배웠습니다. 그래서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려고 비유를 하나 만들어보았습니다. 여기에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사견, 질투, 모욕 주기, 깔봄, 자만, 이간질, 잡담, 욕설, 폭력을 쓰려는 의도, 거짓말, 사기침, ...’ 들의 나쁜 요소 중에서 이간질이라는 나쁜 요소 한 개를 제거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지금 내게 이간질은 공()하다, 그러나 나머지 나쁜 요소들은 공하지 않다.’ 고 하면 되었습니다.

 

다성이 눈을 감고 이렇게 공의 뜻을 되새기고 있는데 갑자기 저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황 교수의 발표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절반의 청중 쪽에서 누가 질문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장이라고 밝히고 나서 교수님께서는 공성(空性)을 어떻게 이해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황 교수가 당황하여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황 교수는 생각했습니다. ‘()은 거기에 없다는 뜻이다. 여기 강당에는 교수가 공하지 않고 청중도 공하지 않다. 그러나 개는 공하고 소도 공하다. 수행자라면 낮은 단계에 있던 상()이 한 단계 올라가서는 없어지는 그것을 공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장선생님이 언급하신 공성(空性)이란 무엇일까?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수행자가 먼저 있었던 것을 나중에 없게 할 수 있는 성질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수행이 향상되면서 이전의 나쁜 요소들이 제거되는 어떤 원리나 법칙을 말하는 것일까? , 공성(空性)은 어려운 개념이구나.’

 

황 교수가 답변을 못하고 시간이 자꾸 흐르자 교장선생님이 쐐기 경(S20:7)에 보면 “... 공함(空性)과 관련된 ...”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에 황 교수가 해당 경을 얼른 찾아보았습니다.

 

비구들이여, 다사라하들에게 아나까라는 이름의 북이 있었다. 그 북에게 다사라하들은 아나까의 연결부위에 다른 쐐기를 채워 넣었다. 비구들이여, 아나까 북의 이전의 표면은 사라지고 쐐기의 연결만 남아있는 때가 있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도 미래에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심오한 의미를 가진, 세상을 넘어선, ()에 일관된 그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듣지 않을 것이고,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무위(無爲)의 앎을 가진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 것이고, 그 법들을 일으켜야 하고 숙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중간 부분 생략) ...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한다.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심오한 의미를 가진, 세상을 넘어선, ()에 일관된 그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우리는 들을 것이고, 귀 기울일 것이고, 무위(無爲)의 앎을 가진 마음을 이해할 것이고, 그 법들을 일으켜야 하고 숙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의 번역에서 인용)

 

황 교수가 경을 읽고 검토를 마친 후에 말했습니다. “suññatappaṭisaṃyuttānaṃ을 어떤 곳에서는 공함(空性)과 관련된이라고 번역하셨고, 어떤 곳에서는 공에 일관된이라고 번역을 하셨고, 또 어떤 곳에서는 공에 연결된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군요. 여기서 순냐 suñña ()’, 순냐따 suññatā공함의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순냐따 suññatā를 그냥 공함으로 번역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공함이라는 한글 옆에 괄호를 해서 한자어 空性(공성)’을 넣으니 어떤 알 수 없는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공성(空性)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니, 공을 형성하게 해주는 어떤 원리나 법칙을 새로 발견해내어야 한다는 쪽으로 공부가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쐐기 경의 해당 부분을 한자어 空性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냥 공하다의 명사형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공에 일관된의 번역을 선택하여 그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장선생님께서 질문하신 공성(空性)’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견해를 내지 않겠습니다. 널리 혜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저의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질의응답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청중들 반응은 둘로 갈렸습니다. 한쪽은 이제야말로 진짜 공에 대한 개념 정리가 완성되었다며 감격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황 교수의 발표가 깊이가 없다면서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황 교수를 지지하는 절반의 청중 쪽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M121에서 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定義)되었습니다. 공은 거기에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수행자에게 공이란 어떤 내적 경향인 상()이 없어진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수행자가 색계 삼매에 들어 소유와 관련된 욕계 중생의 상()이 없어지면 그에게는 그런 어떤 욕계 중생 수준의 상()이 공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색계 삼매에 들면 색계 중생 수준의 어떤 상()은 공하다고 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수행이 완성되면 욕루(慾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의 번뇌 상태에 속한 상()들이 모두 공()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행자가 탐 진 치에서 해탈해도 단지 이 몸을 조건으로 하는 생명의 조건 때문에 육처(六處)에 속하는 것의 공()하지 않음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는 이것은 존재한다.’라고 분명히 안다.>는 내용을 잘 새겨놓으면 될 것 같습니다.” ((M121) 인용 및 변형)

 

그때 한 젊은이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불교 학술 논문에서 연기를 공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며 공으로 연기를 이해해도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면서 자료를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동안 자료를 찾아보더니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에 대한 작은 경(M121)을 읽어보셨지요? 경은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는 이것은 존재한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하여 거기에 없는 것으로의 공()의 정의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는 것을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에 들어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라면 논문 쓰신 분이, 이 의미대로 논리를 전개했는지 아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해피스님 글에서 인용)

 

대학생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얼마 동안 더 이야기를 하다가 절반의 이 청중들도 마을회관 지하 강당을 나왔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이 용마을을 벗어나서 큰 나무 아래에 잠시 앉았습니다. 그때 용 아랫마을 사람들 몇몇이 찾아왔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누고 환담을 한 후 용 아랫마을 사람들이 빙청 선인에게 질문했습니다.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시느냐고. 그러자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색()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고 알려주신 대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뜻을 저는 색을 나라고도 하지 말고, 색을 가진 것이 나라고도 하지 말고, 색이 나 안에 있다고도 하지 말고, 색 안에 나가 있다고도 하지 말자.’ 하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듯이 저도 색이 공하다는 말은 : 색이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라는 것까지 공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 , , 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이해하겠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였고, 또 공의 여러 가지 뜻 중에서 한 가지 뜻만 말하고 여러 다른 의미를 말하지 않는 것 같아서, 용 아랫마을 사람들이 더 물었습니다. ‘, , , , , 마노()가 공하다.’를 어떻게 이해하시느냐고. 그러자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눈은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고 알려주시는 대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눈을 나라고 하지 말고, 눈을 가진 것이 나라고 하지 말고, 나 안에 눈이 있다고 하지 말고, 눈 안에 나가 있다고 하지 말자.’하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도 눈이 공하다는 말이 : 눈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라는 것까지 공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 , , , 마노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이해하겠습니다.”

 

용 아랫마을 사람들은 빙청 선인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어느 정도는 동의하기가 꺼려졌습니다. 조금 더 논의하다가 그들은 돌볼 일이 있어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쪽 어느 곳에 계신다는, ‘세상을 잘 알고, 궁극의 진리를 보고, 거센 물결과 바다를 건넌 분, 속박을 끊고 의존하지 않으며, 번뇌 없는 분’, 그분을 만나러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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