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황 교수가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공(空)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을 보아도 남들이 설명해주는 것을 들어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자료를 정리하며 연구한 결과 이제는 공에 대해 나름대로 개념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공(空)에 대한 정통적인 정의(定義)를 읽었습니다. (M121)
“예를 들자면, 아난다여, 이 녹자모 강당이 코끼리, 소, 암말들이 공(空)하고 금이나 은도 공(空)하고 여자와 남자의 모임도 공(空)하지만 비구 승가를 조건으로 하는 한 가지만은 공(空)하지 않다. 이와 같이 비구도 마을의 상(想)을 사유하지 않고 사람의 상(想)을 사유하지 않고 숲의 상(想)을 조건으로 하는 한 가지만을 사유한다. ...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은 공(空)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는 이것은 존재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에 들어감이 있다.” (해피스님이 번역하신 (M121)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용)
자료를 읽고 나서 황 교수가, 이 글에 나타난 공의 의미를 어떤 분이 예를 들어주실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자신을 소개하고 나서 예를 들었습니다. “여기에 숲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숲에는 다람쥐, 토끼, 노루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람쥐는 공(空)하지 않다, 토끼는 공하지 않다, 노루는 공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공(空)하다, 호랑이는 공하다.’하고.” 황 교수는 참 좋은 비유라고 했습니다.
다른 청중 한 사람도 손을 들었고, 그는 수행자를 예로 들었습니다.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있다고 해보고, 그에게 열 가지 제거해야 할 마음의 나쁜 요소가 있다고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나쁜 요소 1을 제거했다면 그에게는 ‘1은 공하다. 그러나 나머지 2~10은 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고, 2개를 제거했다면 ‘1과 2는 공하지만 3~10은 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거기에 남아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거기에 없는 것은 공(空)하다고 하는 것이 공의 정통적인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황 교수가 칭찬했습니다.
절반 정도의 청중들은 이제야 무엇인가를 알 것 같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절반 정도는 이렇게 쉬운 개념 정리가 어떻게 저 깊은 공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겠느냐며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습니다. 황 교수가 말했습니다. “무릇 진리는 지자(智者)를 기쁘게 합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있다, 그러나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 이 얼마나 분명한 공(空)의 정의입니까?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공의 개념에 대해 혼동하거나 어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확신에 찬 황 교수의 발표에 절반의 청중은 더 확고하게 황 교수가 설명하는 공의 의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절반의 청중들은 더 불쾌해졌습니다. 황 교수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황 교수의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박했습니다.
청중1이 말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황 교수가 답변했습니다. “물질에서 아뜨만이거나 아뜨만에 속하는 것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상락아정의 아뜨만적인 물질은 없지만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인 물질은 있습니다.”
청중2가 말했습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에 (상락아정을 특징으로 하는) 아뜨만이 없기 때문에 공(空)이고, 그런 공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온지요? 비어 있기 때문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 교수가 답변했습니다. “생겨나는 것에는 인(因)도 있고 연(緣)도 있다고 했습니다. 공에서 만물이 생겨나온다고 하면 거기에는 인도 없고 연도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 풀이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청중3이 말했습니다. “교수님처럼 공(空)을 그렇게 글자대로만 설명하시면 공의 깊은 뜻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세상의 이치가 공의 개념 하나에 들어있다고 해도 부족할 텐데 그것도 모자라 공의 의미를 축소하시다니,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황 교수가 말했습니다. “유학(儒學)을 알려면 송(宋)대의 신유학을 먼저 읽기 보다는 논어를 먼저 읽는 것이 순서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공의 정통적인 설명을 놓아두고 그 위에 다른 의미를 덧붙여서 그것을 공의 의미라고 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점점 오리무중이 되고 말 것입니다.”
황 교수의 이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격앙되려고 했습니다. 각자의 신념이 부딪히려고 했습니다. 사회자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습니다. “저기 맨 끝에 계시는 분들은 처음 뵙는 듯합니다.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자1이 빙청 선인과 일행을 소개했습니다. 갑자기 청중들의 시선이 빙청 선인 쪽으로 쏠렸습니다. 사회자가 빙청 선인에게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 다른 청중이 손을 들었고 사회자는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청중4가 말했습니다. “교수님,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있어서, 교수님께서 정의하신 대로 내면의 나쁜 요소를 다 없앴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다 되었습니까?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공(空)합니까?” 황 교수가 답변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료를 읽는 것으로 대신해도 될 것 같군요. 같은 M121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그는 ‘무소유처의 상(想)으로의 상(想)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비상비비상처의 상(想)으로의 상(想)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단지 이 몸을 조건으로 하는 생명에 조건 지어진 육입(六入)의 공(空)하지 않음은 있다.’라고.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은 공(空)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는 이것은 존재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에 들어감이 있다.] ((M121)을 인용)
황 교수가 이어서 설명했습니다. “번뇌를 다 부수어서 괴로움을 멸진했지만, 그것은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 것에 해당합니다. 번뇌의 멸진이 몸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몸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물질의 특성대로 흘러갈 겁니다. 몸은 늙고 무너져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그러나 그분들은 늙고 병들고 수명이 다하면서 몸이 변하고 바뀐다고 해서 마음의 괴로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겁니다. 그분들은 괴로움을 멸진하셨고, 삶을 완성하셨고, 할 일을 모두 마치신 분들이니까요. 마음의 번뇌는 없어 공하지만, 몸의 번잡함은 남아 공하지 않다고 이해합니다.”
절반의 청중들은 이제 공에 대한 개념 정리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있다, 그러나 거기에 없는 것은 공(空)하다.” 이 말에 다른 의미를 덧붙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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