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낸 이야기

9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악습

풀빛 너머 2018. 1. 29. 07:55

9. 빙청 선인 일행이 어느 바닷가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마을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침울했고, 한 집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이 마을에 들어서자 우는 소리가 나는 집 안에서 한 아이가 다급하게 나왔습니다. “도사님, 우리 누나 좀 구해주세요.”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습니다. 한 해 동안 바다에서 사고 나지 않고 고기를 많이 잡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내는데, 집집마다 십 만원을 내어 제수 물품을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집은 가난해서 십 만원을 장만하지 못했고, 경비를 대지 못한 집에서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이 마을의 풍습이었고, 아이 누나가 제물로 바다에 던져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제물로 지정된 사람이 육지로 달아나면 마을 사람 전부 다 불행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서문표(西門豹)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얻음)

 

빙청 선인이 아이 부모를 만나보았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바다에 제사지낼 예정이고 딸은 며칠 전부터 사당에 있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빙청 선인이 아이 부모를 따라 제사 지내는 곳으로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왔고 제관(祭官)은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아이 누나는 부모를 보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아이 어머니가 제관의 손을 붙잡으며 제발 딸을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제관은 예부터 내려오는 풍습을 어기면 마을 전체가 불행해지니까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그럼 마지막으로 여기 이 도사님을 한번 만나보고 딸을 데려가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관은 마지못해 빙청 선인을 만났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수행자 빙청입니다. 몇 가지 물을 일이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제 물음에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그대는 누구에게 제사를 지냅니까?” 제관이 말했습니다. “나는 바다에 계시는 용왕님께 제사지냅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용왕님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제관이 말했습니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용왕님이 계시다고 믿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지는 못했지만 있다고 믿는 그 용왕님은 어떤 능력을 가졌습니까?” 제관이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서 무사히 고기를 잡고 돌아오도록 해주시고 고기도 많이 잡게 해주십니다. 또 우리 마을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줍니다.”

 

빙청 선인이 그런 용왕님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를 물었고, 제관은 자신은 이전 제관한테 들었고 이전 제관은 또 그 이전 제관에서 들었다며 그 이야기는 제관들에게 전해내려 오는 비전(祕傳)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빙청 선인은 그럼 제사 지내고 나서부터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마을 사람들이 없는지를 물었고, 제관은 제사를 지내도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있다고 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빙청 선인이 전혀 다르게 물었습니다. 제관들이 믿는 그 용왕님은 착한 존재인지 아니면 나쁜 존재인지를 묻자, 제관은 당황하여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만약 용왕님이 착한 존재라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착한 존재는 내 목숨이 귀한 만큼 남의 목숨도 귀한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용왕님이 나쁜 뜻을 품고 나쁜 말을 하고 나쁜 행위를 하는 그런 존재라면 살아있는 생명을 빼앗는 악행을 거침없이 저지를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몇 사람은 깊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처음으로 용왕님이 착한 존재인지 나쁜 존재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윽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용왕님이 나쁜 존재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우리 용왕님은 착한 분이라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빙청 선인이 이제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착한 용왕님이시라면, 성자들의 말씀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성자들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처자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선한 행위일까요?” 마을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바다에 던져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은 용왕님도 죄를 짓는 것이고 우리도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마을 사람 몇몇이 제관에게 아이 누나를 살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관에게 다가가 아이 누나를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관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몰라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믿었던 신념 체계가 붕괴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제관은 누구든지 자신이 내는 이 문제를 맞히면 처자를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이 있어 이미 일어난 의심은 버려지게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의심은 일어나지 않게 합니까?’ ((A12)에서 인용 및 변형)

 

마을 사람들이 답을 내려고 궁리했습니다., 제자들과 칠지, 다성과 사람들도 답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빙청 선인을 쳐다보았습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지혜롭게 주의를 기울임>입니다. 지혜롭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의심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의심은 버려집니다.” ((A12)에서 인용 및 변형)

 

빙청 선인의 말이 끝나자 제관은 할 수 없이 아이 누나를 풀어주었습니다. 제관은 이대로는 제사를 지낼 수가 없어서 그날 제사 지내려고 준비한 음식을 생명이 살지 않는 곳에 모두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새로 시장에 가서 과일 등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새로 장만한 음식으로 제사를 마친 제관은 사당에 들어가 혼자 기도했습니다.

 

제관은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난데없이 빙청이라는 수행자가 나타나서 용왕님의 기준을 선과 악에서 찾으려고 하니, 자신이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 거짓이 될 판이었습니다. 그렇게 용왕님을 착한 분인가 나쁜 분인가로 기준 삼자니 자신의 권위가 다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기도하고 나서 제관이 사당을 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마을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삼지 않겠습니다. 제수(祭需) 비용을 내지 못하는 집은 그에 해당하는 마을 공동의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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