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3이 대답했습니다. “코로 밥 냄새를 맡았는데 식은 밥이라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관심 없는 것을 보거나 들을 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초월3은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 말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다성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초월4가 말했습니다. “이처럼 느낌은 눈, 귀, 코, 혀, 몸, 마음에서 각각 일어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괴로운 느낌에서 벗어날 방법 한 개를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눈으로 영화 속에서 비참한 광경을 보아 괴로움이 일어났을 때, 그 괴로운 느낌을 떨쳐 버리려면 나는 어떻게 하나요? 방법 한 가지는 눈으로 보는 것을 그만두면 됩니다. 즉 귀로 좋은 음악을 듣거나 혀로 좋은 음식을 맛보거나 마음으로 좋은 일을 생각하면, 눈으로 본 영화 속의 비참한 광경을 조건으로 한 눈의 문에서 생긴 괴로운 느낌은 사라집니다.”
사실 초월4가 말한 방법을 사람들은 자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관심을 다른 곳에 두어서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그 일을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월4는 그 이치를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눈으로 보아서 생긴 괴로움이라면 귀로 좋은 음악을 들어서 생긴 즐거운 느낌을 느껴서 잠시나마 눈으로 보아서 생긴 괴로운 느낌을 잊어버리는 원리였습니다.
초월4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선인님께서는 느낌이 어떻게 일어난다고 말씀하십니까?” 빙청 선인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도 그대들의 설명과 같게 말합니다. 단지 표현을 조금 바꾸겠습니다. 그대들에게도 입력되어 있는 내용 일겁니다. 눈에서 생긴 느낌을 예로 들면, 나는 ‘눈과 형상을 조건으로 안식(眼識)이 일어난다. 이 셋이 화합한 것이 촉(觸, 감각접촉)이다. 촉(觸)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표현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빙청 선인과 로봇들이 펼치는 논의에 점점 빠져 들어갔습니다. 다소 어렵기도 했지만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빙청 선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여기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대들은 이 아가씨를 보고 어떻게 행동합니까(움직입니까)?” 로봇들이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날의 날씨나 외부적인 환경을 보고, 또 아가씨가 입은 옷이나 착용한 액세서리를 보고서 행동합니다. 즉 인공지능에 입력된 내용과 인공지능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한 내용에 따라 행동합니다.”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참으로 과학 기술이 진보했군요. 그럼 이제 사람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저기에 아리따운 아가씨기 있습니다. 열 사람이 보았다면 열 사람 다 느낌이 다를 겁니다. 젊은이는 기쁨을 느낄 것이고, 노인은 평온하게 바라볼 것이고, 어떤 아주머니는 자신도 저런 딸을 두었으면 하고 바랄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다성은 생각했습니다. ‘아, 이것이 사람과 로봇의 다른 점이겠구나.’
이때 초월4가 말했습니다. “그런 경우는 우리들 로봇에 저장된 정보에 다 있습니다. 그 점에서 우리 로봇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성은 머쓱해졌습니다. ‘저런 것도 인공지능이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빙청 선인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아, 그렇게 사람을 각종 유형별로 분류하여 행동 양식별로 매뉴얼을 만들어놓을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사실은 저기 아리따운 아가씨를 볼 때, 보는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서만 느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을 듣고 인공지능 로봇들은 다시 삐리리리 소리를 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습니다. 인공지능 로봇들은 인간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더 향상된 기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는데도 빙청 선인이 자신들을 인간처럼 느낄 수는 없다고 말하니까 속이 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빙청 선인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때, 이런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한 순간 이전의 내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가에 따라 느낌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까 그 젊은이가 바로 한 순간 이전에 (예를 들어 1초 전에) 화가 났다면 지금 이 순간 (1초 후에) 저기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더라도 그 젊은이는 기쁨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즉 다성이 기분 좋을 때는 모든 것이 용서되고 좋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성이 몹시 화가 나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싫고 괜히 심술이 나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기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았을 때 생기는 느낌은, 그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 젊은이냐 노인이냐 아니면 한국 사람이냐 서양 사람이냐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한 순간 이전의 내 마음 상태가 어떤 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젊은이인가 노인인가, 한국 사람이냐 서양 사람이냐 하는 것은 그 다음 (과정의) 문제일 것 같았습니다.”
인공지능 로봇들이 다시 삐리비리 소리를 냈습니다.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칩을 넣었습니다. 로봇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초월4가 질문했습니다. “인공 지능이 도달할 수 없는 인간만 가지는 특별한 영역이 있나요?”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마음을 가지지 못한 인공지능이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느낌은 조금 전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순간 이전의 삶의 과정이 내면에 쌓여 그것이 눈으로 형상을 볼 때 영향을 미친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마음의 내부에서, 아까 생긴 그 느낌을 분별해서 아는 어떤 과정이 진행됩니다. 즉 인식의 가공 과정, 또는 느낌을 분별해서 아는 과정이 진행되는데,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닐 겁니다.”
로봇들은 생각했습니다. ‘선인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정보로 처리하여 가공하면 우리도 사람처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빙청 선인은 로봇이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내적 영역에서 진행되는, 느낌을 분별해서 알아 앎이 결과 되는 과정과 마음이 형성되는 과정은 ‘눈, 귀, 코, 혀, 몸이라는 감각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과학이 미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 할 때에만 과학이 (몸과 함께 한 그) 마음만을 탐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이 몸과 함께 하지 않고 마음의 내적 영역에서만 활동할 때, 그 영역은 지혜로써 알아진다고 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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