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빛 너머

지어낸 이야기 6 - 학무동에서의 어느 여름날들

풀빛 너머 2016. 11. 19. 07:34


다성이 전역을 하고 복학을 했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어 학무동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자영의 동네 친구 선희를 만났습니다. 선희는 인근 공장에서 일하면서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하여 틈틈이 공부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성은 선희가 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렇게 자신을 계발하고 향상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선희가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선희는 어렸을 때 가난했습니다. 선희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는데, 선희의 어머니는 결혼한 후 선희를 낳았고 선희 아버지는 얼마 후 돌아가셨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선희 어머니는 몸이 무척 아팠습니다. 아무리 병원에 가도 치료할 수 없었는데, 그때 가정을 밝히고 자공을 성불하게 하고 선희 어머니 명줄을 이어준다는 말을 따라 선희 어머니는 산신 할아버지를 모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즉, 무속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자공이란 그쪽말로 자식을 뜻하는 것 같음)


선희 어머니는 산신 할아버지를 모신 곳을 신당이라고 하지 않고 법당이라고 이름 했습니다. 새벽이면 용왕 물을 준비해두고 정화수를 떠서 법당에서 선희의 앞날이 잘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선희 어머니는 누가 점을 치러오면 받지 않았습니다. 또 누가 아파서 와도 먼저 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병원에서 못 치료하는 사람만을 받아서 산신 할아버지의 도불로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선희 어머니는 병을 낫게 해 준 대가로 천 원을 주면 천 원을 받고 이천 원을 주면 이천 원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선희는 어머니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남 보기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주로 혼자 다녔습니다. 그때 권 부자의 딸 자영이 어렸을 때부터 선희를 자주 자신의 집에 불러 함께 놀아주었습니다. 때로는 점심을 함께 먹고 때로는 저녁을 함께 먹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아이들도 모두 선희에게 다가가 함께 놀았습니다.


모내기를 하거나 마늘을 심거나 다른 농사일을 할 때 권 부자는 마을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선희 어머니도 농사철이 되면 일을 하러 갔고 권 부자는 선희 어머니에게는 품삯을 주고 나서 따로 여러 가지 곡물과 채소 등을 한 보따리씩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일거리가 있으면 선희 어머니를 불러서 생활비를 벌도록 힘써 주었습니다.


선희는 자라면서 친구 자영에게 많은 것을 받아서 늘 미안해하고 또 고마워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자영에게 아무 것도 보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자영은 그때마다 빙청 선인에게서 들은 말씀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보시에는 무외시(無畏施)라는 것이 있는데, 오계를 지키는 것이 바로 무외시이며, 그것은 남에게 두려움 없음과 원한 없음과 증오 없음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자영은 선희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렇게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 등으로 착한 친구가 되어 주어서 자영 자신도 선희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선희를 평온하게 해주었습니다.


선희가 법해 스님이 오신 이후에 점점 불교에 심취해가자 선희 어머니는 딸이 혹시 비구니가 될까봐서 법당에 작은 불상을 하나 모셔두었습니다. 선희에게 있는 불씨(불교의 종자)를 여기 불상에 모두 담아 나중에 산신 할아버지를 천도할 때 함께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선희의 불씨를 못 막겠다고 산신 할아버지가 선희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편, 선희는 법해 스님의 법문을 들은 날에는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들은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산신 할아버지가 ‘너희 가정은 이제 밝혀졌고 자공은 성불했고 제자의 목숨줄도 이어졌으니 나는 이제 그만 가련다.’ 하면서 천도를 해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산신 할아버지를 천도하는 날 선희 어머니는 선희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여기 오신 산신 할아버지는 참 좋으신 분이셨다. 우리 가정에 불을 밝혀주시고 자공 성불을 위해 주셨고 내 명줄을 이어주셨다. 신을 모신 다른 제자들은 자주 산에 가서 기도를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우리 산신 할아버지는 그런 일을 거의 시키지 않으셨다. 산에서 기도하다가 내 몸이 상할까봐서 그런 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그리고 한 번 씩 신(선희 어머니가 굿이나 병을 낫게 하는 일을 할 때 함께 오는 존재들)을 대접해 드려야 할 때에도 남의 제자의 손을 빌리지 말고 내가 직접 하도록 해주셨다. 우리가 가난하다는 것을 아시고 남의 제자를 불러 돈을 장만한다고 고통스러워하지 말라면서 내게 직접 굿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다가 네가 그렇게 법해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에게 그 내용을 다시 들려 주니까 어찌된 영문인지 산신 할아버지께서 가신다고 하면서 내가 이렇게 굿을 해서 천도를 하게 되었구나. 선희야 이제 나는 산신 할아버지 모시는 일을 그만 두게 되었구나.”


선희는 어머니 말을 들으며 산신 할아버지께 감사했습니다. 선희 자신은 산신 할아버지 덕분에 가정에 불이 밝혀졌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명줄이 이어진 것은 잘 모르겠지만 산신 할아버지가 평소에 선희 자신을 보호해주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허전하실 테니 자신이 정성스럽게 공경하고 봉양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법해 스님으로부터 들은 좋은 말씀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선희 어머니도 차츰차츰 산신 할아버지의 일에서 벗어났고 옛날 일이 떠오르면 산신 할아버지에 대해 감사했고 산신 할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든 행복하시기를 바랬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선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갑자기 마당 한 쪽에 있는 뒷간에 가는 것이 무서워 밤에 방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희 어머니가 ‘정낭 낭자에게 빌자.’라고 하여 정화수를 한 그릇 떠놓고 선희와 어머니가 함께 빌었습니다. ‘선희가 밤에 뒷간에 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그랬더니 다음날부터 선희는 밤에 뒷간 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아주 건장한 어떤 사람이 학무동에 이사를 왔는데, 술만 마셨다 하면 큰 소리로 떠들면서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법해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법해 스님은 경에 나오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여기 비구는 자애[자(慈)]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연민[비(悲)]이 함께한 마음으로 … 더불어 기뻐함[희(喜)]이 함께한 마음으로 … 평온[사(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라고 들려주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보라고 했습니다. 즉,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안락하기를, 태평하기를”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만약 고통이 있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이 있다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이렇게 마음을 닦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선희는 이렇게 했습니다. ‘내가 행복했으면, 그리고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자영이와 친구들이 행복하기를, 친척들이 행복했으면, 마을의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마을의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마을의 짐승들과 벌레들이 행복하기를, 마을의 다른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마을의 또 다른 존재들도 행복하기를, 여기에서 동쪽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동쪽에 있는 모든 짐승, 벌레들이 행복하기를, ...’

‘내게 고통이 있다면 그런 고통에서 내가 벗어나기를, 내게 위험이 있다면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어머니가 고통이 있다면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어머니에게 위험이 있다면 그런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자영과 친구들이, .... 친척들이, ... 마을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 동쪽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고통이 있다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에 빠졌다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 라고 마음을 닦았습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애의 마음과 연민의 마음을 닦았더니 어느 날 그 건장한 사람이 다른 곳에 일자리를 얻게 되어 학무동에서 이사를 갔습니다.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권 부자는 법해 스님과 제자들을 집에 초대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권 부자 집에 왔고 다성 또래의 젊은이들도 모였고 중고등학생, 국민학생(초등학생)들도 모였습니다. 법해 스님은 오계와 보시에 대해서 법문했고, 그렇게 노력하면 하늘이 멀지 않다고 했습니다.


한편 불이 스님은 자영과 다성과 그들 친구들에 둘러 싸여 앉았습니다. 환담을 나누고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는데 참선하는 방법도 간단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자영과 다른 친구들은 금방 결가부좌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성은 다리가 아파서 그냥 책상다리를 했습니다. 불이 스님은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콧구멍 근처에 주의를 두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숨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사이에 남기는 감촉을 느껴보라고 했습니다. 다성은 콧구멍 근처에 주의를 둘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 속에 잡념이 마구 일어났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불이 스님이 어떠했냐고 물었습니다. 자영은 콧구멍 근처에 주의를 두었더니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남기는 감촉이 느껴졌고, 그렇게 감촉을 느끼면서 있으니까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대체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희도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성은 말도 꺼내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자신은 일어나는 생각들로 몸과 마음이 피곤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불이 스님은 다성에게 처음에는 그런 경우가 많으니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연습해보라고 했습니다.


다성은 자신이 참선을 조금도 할 줄 몰라서 마음이 꽁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질투가 일어니사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그것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자꾸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점점 꽁한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가라앉게 했습니다. 그래서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불이 스님과 자영과 친구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다행이었습니다.


다성은 법해 스님이 들려주신 ‘더불어 기뻐함으로 질투를 극복하라.’는 말씀을 새기며 버스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