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25 (깨달음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 글입니다.)
주제3. 깨달음의 중심 개념 : 요약문 (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의 깨달음 교재)
0. 오늘 우리가 보는 교재의 주제3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깨달음의 중심 개념은 무엇이고, 둘째 십지연기와 십이연기의 구분은 어떻게 하고, 셋째 족쇄의 하나인 ‘마나(mana, 자만, 자기화)’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나’는 그동안 ‘자만’이라고 번역되어왔는데, 해피법당에서는 ‘자기화(自己化)’라고 번역했습니다.
1. 부처님 깨달음의 중심 개념은 ‘아딱까(atakka)’로, 그 뜻은 ‘갈애의 형성을 넘어섬’, 또는 ‘자기화(mana, 마나)의 과정을 넘어섬’입니다.
2. 딱까의 뜻 : 갈애(愛)가 일어나는 과정, 또는 자기화(自己化)가 되는 과정을 딱까라고 합니다. (비유하면 우리 내면에 방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여, 그 방에서 갈애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는 자기화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갈애의 형성 또는 자기화의 과정에는 번뇌가 개입하고, 무명(無明)과 행(行)이 들어있습니다.
3. 중생의 괴로움을, 딱까에 개입하는 무명과 행을 함께 넣어서 무명, 행에서 생, 노사까지 12가지로 설명하면 십이연기가 됩니다.
한편, 중생은 마음이 갈애로 오염되어 살아가므로 갈애 상태를 전제하여, 즉 갈애를 일어나게 하는 과정(딱까)에 개입하는 무명과 행을 놓아두고(빼고), 갈애 상태로 살아가는 중생의 괴로운 삶을 식, 명색에서부터 생, 노사까지 10가지로 설명하면 십지연기가 됩니다.
4. ‘수(受)를 조건으로 애(愛)가 있다.’고 할 때, 애(愛, 갈애)에는 욕애(慾愛, 소유의 갈애) 유애(有愛, 존재의 갈애) 무유애(無有愛, 존재 않음의 갈애)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유애(有愛)는 자기화(자만)와 같은 자리입니다.
5. 족쇄는 우리가 중생으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인데, 족쇄에는 오하분결과 오상분결이 있습니다. 딱까 밖에서 발목 잡는 것은 오하분결이고 딱까 안에서 발목 잡는 것은 오상분결입니다. (오하분결五下分結-유신견, 의심, 계금취, 소유의 찬다(까마찬다), 진에 / 오상분결五上分結-색탐, 무색탐, 자기화(mana, 마나), 들뜸, 무명)
6. 딱까 안의 과정을 제어하여 갈애가 형성되지 않도록 하거나 자기화되지 않도록 방어해낼 때, “탐(貪)을 없애고 무명(無明)을 없애고 모든 ‘나는 있다’는 자기화를 뿌리 뽑는다.”고 한다 합니다.
7. 부처님이 성취한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딱까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다.”고 합니다. (딱까 : 갈애의 형성 또는 자기화의 과정)
8. “딱까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무슨 뜻인가요?
(1) 딱까를 넘어섬은 번뇌의 영향으로 인식을 가공하여 갈애가 생기는 과정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식을 가공할 때 번뇌의 작용을 억제하고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갈애를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갈애의 부숨입니다.
(2) “수를 조건으로 애가 일어난다.”는 과정에 : 상락아정이라고 잠재한 상(想)이 번뇌로써 개입하면 → ‘나는 있다’는 자기화의 과정이 진행되고 → 갈애 상태에서 행위하러 갈 때 ‘나는 있다’는 견해로 세상을 보게 되(거나 행위의 씨앗이 되고) → ‘나는 있다’에서 진행된 사유를 싣고 다시 인식에 참여하고 → 그 인식을 처리하고 가공하는 과정에 병든 상(想)이 잠재한 ‘나는 있다’가 다시 번뇌로써 개입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갈애가 형성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있다’는 자기화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2-1) 그러나 번뇌가 제거되면 갈애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갈애의 부숨이고 탐의 소멸이고 자기화가 뿌리 뽑힌 것이 됩니다. 그것은 오염된 행위의 결과로 잠재한 상(想)도 없고, 수(受)를 인식하는 과정에 그런 상(想)도 개입하지 않은 것이라서,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갈애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 그러면 청청한 행위를 하므로 ‘나는 있다’는 견해가 없고 → ‘나는 있다’는 잠재성향이 없고 → 행위가 인식으로 넘어갈 때 ‘나는 있다’는 찬다가 인식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인식을 가공하는 과정에 ‘나는 있다’는 없게 되어 자기화의 과정이 없습니다.
9. 그래서 갈애의 형성을 끝낸 것도 괴로움의 소멸이고, 표현을 바꾸어 달리 말한 자기화하지 않는 삶도 괴로움의 소멸을 실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번뇌의 제거이며, 그것은 무명과 유애(有愛)의 제거입니다. 앞에서 본 갈애의 형성을 넘어선 것도 아딱까라고 했듯이,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 여기 자기화의 과정을 넘어선 것도 또 아딱까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부처님 깨달음의 중심 개념이라고 이해합니다.
'불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계와 보시의 공덕 (0) | 2017.03.19 |
---|---|
'존재', 김철수에 대하여 (0) | 2017.03.10 |
숫타니파타 - 위대한 축복의 경 (0) | 2016.11.04 |
숫타니타파 - 용맹정진의 경 (0) | 2016.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