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의 이해

16-3. 비유 - 성주(城主)

풀빛 너머 2017. 7. 18. 19:37


▣ 대념처경 - 신념처7[일어남 사라짐의 용례2)낑수까나무 비유경](부산 수행 170711)
   [동영상] https://youtu.be/onI8Z35Nr7I



(52분 1초 ~ 59분 47초)

3. 비유 - 성주(城主)

자, 그러고 나면 성주(城主)는 식(識)을 비유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 성주가 누구인가 하니 식입니다. 법우님, 식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두 번 나타납니다. ①육내입처를 구성하는 식이 있고, ②일차인식에서 생겨나서 이차인식을 주관하는 식도 있잖아요. 내입처를 구성하는 저 식은 과거 삶의 결과들이 누적된 것이고, 후자는 일차인식에서 과거 삶에서 누적된 식이 몸과 함께 외입처를 인식해서 하나의 알갱이로의 식을 새로 새끼 친 것이잖아요.


성주가 식이라고 했어요. 이 식은 ①번 이쪽 식일까요? ②번 저쪽 식일까요? 아마 ②번 저쪽 식일 것 같지요? 왜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가 하면, 비록 우리가 그 부분을 정확하게 설명해내기가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래도 뭔가 그동안 공부해온 것으로 보아 감으로 ②번 저쪽 식일 것 같아요. 저도 ②번 저쪽 식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지금 이 몸이라는 성(城)이 있는데, 그 중에 누적된 것으로서의 식은 (여섯) 문의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여섯 문은 눈을 구성하는 식과 근 중에 식으로 이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식은 ①번 식이 아니고 다른 것일 테니 당연히 ②번 저쪽 식이겠지요. 뭐, 중요한 것은 사마타-위빳사나가 한 쌍의 전령이 되어 와서 성주인 식을 만났습니다. 식한테 열반의 소식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을) 좀 다르게 그냥 이해하자면 (이렇겠지요).


식이라는 마음이, 사마타-위빳사라는 이 수행의 과정을 통해서 수를 인식하는데, 수를 분별하는 그 일에서 열반식으로 (한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무명과 탐 진’이라는 유위적으로 수를 아는 것이 아니고, ‘무탐 무진 무치’라고 하는 사마타 위빳사나가 와서 해주니까 무탐무진무치의 무위적으로 이차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무탐무진무치이니까 청정한 식이고 난디가 없고 갈애가 아닌,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지요. 이렇게 연결되지요.



3-1. 세 가지가 함께 있는 경우

거기에다가 교리문답의 큰 경(M43)에서 중요한 것을 하나 알려줍니다. ‘수와 상과 식’의 세 가지를 놓고, 이것이 서로 떼어서 말할 수 없는 하나로 묶여져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차인식에서 식과 수와 상이 묶여있는 거잖아요. (식, 수, 상은) 이차인식의 주관이고 객관이고 부대하는 삼자이잖아요. 이것을 하나라도 떼어놓고 삶을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식과 수와 상은) 다른 것이기는 한데 떼어내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묶여 있어요.


그런데 (다르기는 다른데) 묶여있는 것이 또 하나 있어요. 그것은 지혜(빤냐)입니다. 이 지혜가 기능이잖아요. 이 지혜는 식과 수와 상, 세 가지 중에 어느 하나와 또 떼어서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묶여 있다고 나와요. 지혜는 식과 수와 상 중에 무엇과 묶여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기능은 마음을 도와서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마음을 도와주는 것이니까 지혜는 식과 묶여있는 거지요.


지혜가 식과 함께 (한다는) 이 이야기는, 수행하지 않은 사람은 일차인식에서 욕탐 때문에 왜곡된 것으로 식이 만들어지지요. 그러니까 함께 왜곡되어 만들어진 수를 왜곡이 잠재된 상과, 그러니까 온통 왜곡된 것들끼리 모여서 이차인식을 하니까 무명이라는 왜곡된 것(과), 탐이라는 왜곡된 것을 만들어서 갈애까지 가는 거잖아요. 결국 수행은 이것을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혜라는 것이 식과 함께 하는 이 상황. 식이 인식할 때 왜곡의 상황을 줄여가면서 무상고무아라는 존재의 살상 그대로 이해하는 그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기능으로서의 지혜입니다).


어쨌든 인식작용의 주체는 식입니다. 식 혼자서 생겨나기를 그렇게 (지혜롭게) 못 생겨났으니 이런 (무상 고 무아라고 보는) 일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지혜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 지혜가 힘을 가지는 만큼 식이 상락아정이라는 오해로 보려고 하는 것을 막아주면서 무상고무아부정이라는 존재의 실상 그대로 보게 해줍니다. 그리고 사마타 위빳사나가 바로 이런 지혜를 닦는 만큼, 지혜가 닦여지는 만큼 사마타 위빳사나가 그 일을 해주는 거잖아요.


이렇게 식과 수와 상을 놓고, 지혜라고 하는 이것이 사마타 위빳사나라는 수행의 과정(을 통해 계발되는 것이겠지요). 사마타 위빳사나 수행이 없을 때면, 대충 말하여 식 혼자서 (이차인식을) 하는 거지요. 그러나 사마타 위빳사나라는 수행은 식이 지혜와 함께 하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거지요. 이런 개념을 보면 성주인 식은 어떤 식일까요? 라고 말하면 바로 사마타 위빳사나로부터 보호를 받는 (식이지요). 여기에 무엇이 매개가 되는가요? 지혜가 매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주인 식은) 이 지혜가 매개가 되어 사마타 위빳사나로부터 열반의 소식을 보고받는, 삶의 중심 자리에 있는 성주이지요.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은 잡혔지요? 59분 47초까지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