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 김곤이가 날마다 늙음과 죽음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가운데 삼별초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진도의 용장성을 여몽 연합군이 총공격을 하여 삼별초가 크게 패하였고, 배중손이 추대한 승화후 온왕도 죽고 배중손도 죽었다고 했습니다. 김통정은 남은 부대를 이끌고 탈출하여 제주 항파두리에 거점을 마련하여 대몽 항쟁을 계속했고, 몽골이 다시 진압하러 왔고 이에 항전하다가 산으로 가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삼별초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병의 성격이었으나 대몽 항쟁의 과정에서는 삼별초만의 항쟁이 아니라 삼별초를 중심으로 한 고려 백성들의 항몽이라고 했습니다.
삼별초의 항쟁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비탄과 슬픔으로 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항쟁에 참여한 아버지, 남편, 아들이 죽었다는 기별을 받을 때마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오열했습니다. ‘다음 세상에는 전쟁이 없는 곳에 태어나거라(나십시오)’ ‘다음 세상에는 부디 좋은 곳에 태어나거라(나십시오)’ 하면서 울부짖고 통곡했습니다.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김곤이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곤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태어남, 태어남’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번 법사님이 들려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늙음과 죽음(老死)이라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남을 알지 못합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 늙음과 죽음을 벗어날 수 있을지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S12:4)에서 적절히 인용 및 변형, 이하도 마찬가지임) 이 말씀이 생각나면서 김곤이는 늙음과 죽음의 원인이 ‘태어남’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자꾸 뜻을 음미했습니다. 며칠 뒤 법사님을 만나 ‘태어남이 있을 때 늙음과 죽음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법사님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누구든지 태어나면 나중에는 반드시 늙고 죽어야 했습니다. 이제 문제가 하나 풀렸습니다. “무엇이 있을 때 늙음 • 죽음이 있으며,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 • 죽음이 있는가요?” 바로 “태어남이 있을 때 늙음 • 죽음이 있으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 • 죽음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태어남이란 무엇인가요? 태어남이란 사람의 무리에서는 누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소의 무리에서는 어떤 짐승이 송아지로 태어나는 것이고, 하늘 세상에 천신들이 있다면 하늘 세상에서는 누가 천신으로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태어나면 그는 이런저런 중생의 무리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중생의 무리에 태어나면 그는 색수상행식이 나타나고, 눈귀코혀몸마노를 획득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태어나면 그때부터 그는 순간순간 한 평생을 살아가다가 나중에는 늙고 죽었습니다. ((S12:2, S12:4)에서 인용 및 변형)
아버지, 남편, 아들을 잃은 가족들은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고 다음 세상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49재를 지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사람은 죽으면 죽는 순간 바로 다음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49일 동안 자신의 지은 업에 대한 심판을 받으며 기다리다가 49일이 지나면 다음 세상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상에 태어나기 전 49일 동안 불공을 드려서 죽은 이가 공덕을 쌓아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가족들은 없는 살림에 49재를 지내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느라고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김곤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의식을 거행하고 기원하여 죽은 이가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자신이 선한 업을 지으면 죽어서는 좋은 세상에 태어나고, 자신이 악한 업을 지으면 죽어서 나쁜 곳에 태어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 텐데, 그런 이치를 거슬러서 가족이나 친척이 대신 공덕을 쌓아주어 죽은 이가 자신의 업의 결과와는 반대되는 곳에 태어나도록 해준다면, 이것은 이치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김곤이는 생각했습니다. 정말이지 마을 사람들은 성인의 가르침을 별로 듣지 못했고 또 성인의 가르침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지를 모른다고, 김곤이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땅히 공경하고 공양해야 할 복밭이 되는 그런 분들에게는 베풀지 못하고, 효과가 증명되지 않고 베푸는 수고에 비해 결실도 얼마쯤 되는지 알려지지 않은 그런 곳에 고생고생해서 얻은 재물을 사용한다고, 김곤이는 생각했습니다.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러 간다면서 고려에 전선 건조와 사공 징집을 요구했습니다. 김곤이는 사공으로 징집되어 원나라가 데리고 온 군사와 고려군 8천 명과 함께 일본을 향해 갔습니다. 원나라 군사가 대마도에 도착해 상륙하여 섬을 점령했고 이어서 일본 본토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도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고 얼마 뒤 갑자기 태풍이 불어와 전선이 대부분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퇴각하여 대오를 살펴보니 1만 3천 5백 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차 정벌, 1274년. 고려사, 이상각, 도서출판 들녘, 2010을 참조함, 이하도 마찬가지임)
1277년 원나라는 일본 정벌에 소요되는 병마를 사육하기 위해 제주도에 목마장을 설치했습니다. 1280년에는 원나라가 일본 정벌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개경에 정동행성을 설치했습니다. 이후 원나라가 고려에 병선과 뱃사람과 수군을 요구하여 1281년 여몽 연합군이 4천 4백 척의 병선을 타고 일본 본토를 향했습니다. 이번에도 김곤이는 사공으로 징집되었습니다. 초반부터 풍랑이 일었고 일본군의 대항으로 전세가 썩 유리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태풍이 불어와 바다를 뒤덮어 정벌군의 전함 대부분이 침몰하고 수많은 병사가 수장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전투에서 원나라가 고전하여 2차 정벌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김곤이는 전쟁이 끝나자 지친 몸을 이끌고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지나서 법사님이 마을에 오셔서 법문을 했습니다.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두 가지로 오계와 보시를 설명했습니다. 오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면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법사님이 김곤이에게 생각거리를 하나 주었습니다. “거사님은 늙음과 죽음을 배웠고 태어남을 배웠습니다. 그럼, 이제 태어남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있는 것일까요? 무엇이 있기 때문에 태어남이 있을까요?”
그날부터 김곤이는 태어남 앞에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여기 아기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서 태어납니다. 여기 송아지는 암소와 황소가 있어서 태어납니다. 이렇게 부모가 있어서 태어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답은 또 같은 문제를 불러옵니다. 그 부모님은 또 무엇을 원인으로 하여 태어났습니까? 하고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곤이는 다른 답을 구해야 했습니다. 왜 김곤이는 여기 이 나라에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는가(충주성 전투 후에 면천되었지만) 하는 것과도 과련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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