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장구 간단히

대학장구 경1장을 들으며 9 (물격이후지지~)

풀빛 너머 2017. 2. 23. 11:43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脩 身脩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物格者 物理之極處無不到也. 知至者 吾心之所知無不盡也. 知旣盡 則意可得而實矣. 意旣實 則心可得而正矣. 脩身以上 明明德之事也 齊家以下 新民之事也 物格知至 則知所止矣. 意誠以下 則皆得所止之序也.


(강의 필기 중에서)

아까는 명명덕에서 시작하여 격물까지 내려왔는데 지금은 사물의 이치에서 다시 올라 가고 있음.

* 물격이후(에) 지지(하고) :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은 격물이고 격물해서) 사물의 이치가 궁구된 뒤에 지식이 지극하게 되고

* 지지이후(에) 의성(하고) : 지식이 지극한 뒤에 생각이 진실하고

* 의성이후(에) 심정(하고) : 생각이 진실한 뒤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 심정이후(에) 신수(하고) :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 몸이 닦여지고

* 신수이후(에) 가제(하고) : 몸이 닦여진 뒤에 집이 가지런하게 되고

* 가제이후(에) 국치(하고) : 집이 가지런한 뒤에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 국치이후(에) 천하평(이니라) : 나라가 잘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균평하게 된다



(다음은 앞에 나왔던 ‘치지(는) 재격물(이니라)의 설명 중에서 남은 부분입니다. 강의하시는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간략히 필기한 것입니다.)


어쨌든 팔조목의 첫째는 격물이고, 다음에 치지이고, 다음에 성의이고, 다음에 정심이고, 그 다음에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이지요.

주자학에 의하면 격물과 치지는 같은 값입니다. 주자학은 ‘격물치지, 성의정심’을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물(物)을 끝까지 탐구하는 것, 왜 이것이 명덕을 밝히는 첫 단추로 작용하는가요? 내 지각식별 능력의 확장이 어떻게 성의와 관련이 있는가요? 이런 이야기는 다 전(傳)에서 이야기합니다. 나중에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선천적으로 받은 지각, 식별 능력을 끝까지 확장시킨다는 것과 자기가 처음 마음을 낼 때 그 마음의 첫머리를 거짓됨이 없이 성실히 하는 것이 명명덕을 하는데 매우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기 내면의 밝은 덕을 밝히는데 격물과 치지는 너무 너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주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 ‘격물치지와 성의는 배우는 자의 두 개의 관문이니, 격물은 꿈과 깨달음의 관문이고 성의는 선과 악의 관문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격물은 꿈속에서 살아가는가 깨달아서 살아가는가의 관문이고 성의는 귀신과 인간의 관문이다. 못하면 귀신이 되고 하면 인간이 된다. 관문이니 이 두 관문을 지나갈 수 있다면 상명공부(위로의 공부(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쉽다.’라고.


우리가 물이라고 할 때 물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일단 가장 가까운 물은 나입니다. 나라는 물에는 팔, 다리, 두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부모, 형제, 동물, 바위도 물입니다. 이런 격물을 할 때 격은 궁구하는 것이고 물은 존재하는 여러 물상들이므로, 격물은 물의 이치를 궁구합니다. 나를 포함한 만물의 이치가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를 궁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순간에 어떻게 되는가 하면 윈래 내가 타고 태어나던 지각 식별의 능력이 확장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쓴 책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내가 알면 알수록 내 본래부터 갖추고 있던 것이, 물의 이치를 궁구하다 보면 본래부터 갖주고 있던 그 무엇이 확장된다고 합니다.

소주를 보면, 격물과 치지는 존재하는 물건에 있어서 한 푼의 이치를 궁구한다면 나의 지각 식별의 능력에 있어서도 또한 한 푼의 물의 이치(物理)가 알아진다고, 내가 외물의 물리를 한 푼 궁구하면 내면의 지각 식별의 능력도 한 푼 확장된다고 합니다.


그 실상은 다만 한 가지 이치입니다. 우주 안에 사람, 짐승, 무생물에 편재한 것이 이(理)입니다. 그래서 내가 물의 이를 궁구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도 동시에 밝아집니다. 왜냐하면 같으니까요. 이는 편재해 있으니까요. 내밖의 이를 궁구하면 내 마음의 이도 확장됩니다.

그 실상은 다 한 가지 이치입니다. 그래서 물리를 밝히자마자 곧바로 나의 이치(지각 식별의 능력)도 밝아집니다. 이것은 동시에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격물이 치지입니다. 그래서 치지재격물이 됩니다. 치지하면 곧 격물이 되는 것입니다.


궁구하는데 무엇을 궁구합니까? 물의 이치를 궁구합니다. 이것이 곧바로 내 마음속의 지각 인식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과 함께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격물’ 대신에 ‘궁리(窮理)라는 말을 쓰면 더 좋지 않는가요?


여기에 대해 소주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주-사람들은 대부분 저 도리를 잡고서, 허공에 매달려 있는 하나의 물건으로 여기니(추상적인 무엇인가로 여기니) 그래서 대학에서는 이치를 궁구한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격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사물 위에 나아가서 이해하고자 한 것이라서 이와 같이 해야 실체를 볼 수 있다고(추상적인 것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려고 궁리라고 하지 않고 격물이라고 했다고). 실체성을 강조하고자 격과 물을 썼다고 했는데, 다 똑같은 말인데, 제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가가서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까지를 포함한 것이 격물입니다. 사실 한당 유학, 또는 선진 유학, 특히 논어를 보면 너무나 소박한 실천 윤리입니다. 그러나 머리에 먹물이 많이 들은 지식인에게는 매력이 없습니다. 인류의 사고가 실천으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른 쪽에서 고상한 형이상학이 들어오면 소박한 실천철학은 위태로워집니다.

송에서 지식인들이 선종으로 대거 몰려갑니다. 그래서 불교의 심성론과 도교의 본체론을 합쳐, 주자는 아주 쉬운 것을 아주 어려운 것으로 설명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정말로 주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주자학에는 세 개의 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원시유학의 단순한 실천 윤리와 정치 철학 + 선종의 심성론 + 도교의 우주론을 합친 것이므로 주자학에는 모든 분야에 걸쳐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