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명색(名色)과 육입(六入)에 대해 생각하며
10. 하루 종일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빙청 선인 일행은 산속 동굴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칠지가 사람들에게 ‘십이연기’ 해설을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칠지가 ‘마하시 큰 스님’의 십이연기 법문을 들으며 메모했던 내용이었습니다.
// 무명(Avijjā)으로 인해 애씀인 형성(Saṇkhāra)들이 발생한다.
형성(Saṇkhāra)으로 인해 새로운 생의 의식(Viññāṇa)이 발생한다.
의식(Viññāṇa)으로 인해 명색(Nāmarūpa)이 발생한다.
명색(Nāmarūpa)으로 인해 6처(Saḷāyatana)가 발생한다.
처(Saḷāyatana)로 인해 대상을 만남인 촉(Phassa)이 발생한다.
촉(Phassa)으로 인해 좋고 나쁜 것을 느끼는 느낌(Vedanā)이 발생한다.
느낌(Vedanā)으로 인해 탐착하고 갈망하는 갈애(Taṇhā)가 발생한다.
갈애(Taṇhā)로 인해 집착함인 착(Upādāna)이 발생한다.
착(Upādāna)으로 인해 발생조건인 업, 유(Bhava)가 발생한다.
발생조건인 업(Bhava)으로 인해 새로운 생의 발생인 생(Jāti)이 발생한다.
생(Jāti)으로 인해 늙음, 죽음(Jarā·Maraṇa)이 발생한다.
걱정근심, 통곡, 몸의 고통, 마음의 고통, 마음의 극심한 뜨거움(Soka·Parideva·
Dukkha·Domanassupāyāsā)들이 발생한다.
이 순서대로 행복과 섞이지 않는 오직 고통의 모임만이 발생하고 있다. //
(출처: 빤디따라마 근본불교 수행센터)
다음 날 새벽 비가 그쳤고, 빙청 선인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산길에는 지난 밤 폭우로 쓰려진 나무들과 흘러내린 돌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나무와 돌을 치우며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답은 세 가지인데, 세 가지를 다 맞추면 길에 쓰러져 있는 이 나무들과 흩어져 있는 바위를 치워주겠습니다. 감각접촉(觸)은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납니까?”
빙청 선인의 제자1이 먼저 대답했습니다. “육입(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접촉(觸)이 발생합니다.” 제자2가 두 번째로 대답했습니다.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이 셋의 화합이 감각접촉(觸)입니다.” 이제 대답 하나만 더 하면 됩니다. 그러나 세 번째 대답은 아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한참 기다리다가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힌트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디가니까야 ‘대인연경(D15)’을 참고하십시오.” 조금 있다가 칠지가 말했습니다. “정신•물질[名色]을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觸)이 있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흔들었는데, 길 위에 있던 나무와 돌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한참 쯤 가다가 빙청 선인 일행이 큰 나무 아래에서 쉬었습니다. 이때 칠지가 십이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보는 상좌부 불교의 해석을 들려주었습니다.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에서 : 나눌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생-노사’를 한 구간으로 하는 것입니다. ‘생-노사’는 바로 미래에 속합니다. 그리고 또 나눌 수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무명-행’을 하나의 구간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과거에 배대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구간, ‘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를 한 구간으로 하여 현재에 배대합니다. 이렇게 하여 삼세가 됩니다. 과거는 ‘무명-행’ / 현재는 ‘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 / 미래는 ‘생-노사’입니다.”
칠지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여기서 ‘무명-행’은 과거의 ‘원인’입니다(그래서 ‘식-명색-육입-촉-수’가 결과로서 현재의 ‘과보’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애-취-유’는 현재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생-노사’라는 결과의 ‘과보’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원인의 구간도 2개, 결과로 나타난 과보의 구간도 2개, 그래서 원인과 결과가 두 번 거듭한다고 하여 ‘양중인과(兩重因果)’, 그것이 삼세에 걸쳐 진행되니까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상좌부 불교에서 십이연기를 이해하는 하나의 태도입니다.”
칠지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했습니다. 그러나 다성은 칠지의 말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빙청 선인의 제자1이 말했습니다. “명색(名色)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칠지가 대답했습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와 동영상 법문 등을 참고하여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지 참고로 들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칠지가 말했습니다. “십이연기에서
‘(2) [업]형성들(行)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일어난다.(行緣識)’고 할 때, 이때의 알음알이는 : 이 생애의 최초의 알음알이를 뜻하며, 과보의 마음으로 재생연결식이라고도 부릅니다.
(3)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일어난다.(識緣名色)’고 할 때, 여기 (3)에서 알음알이는 : (2)에서 말한 알음알이(과보의 마음인 재생연결식) + (그 다음부터 일어나는 과보의 마음인) 바왕가(의 마음들) + 여러 전생에서 업을 지은 마음들을 모두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제 질문의 대답으로 돌아오면, 명색에서 명은 정신으로, 색은 물질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1) 정신(名)은 : 느낌, 인식, 의도, 감각접촉, 마음에 잡도리함(수, 상, 사, 촉, 작의)인데, 다른 말로 하면 ‘과보의 마음들과 연결된 마음부수들’, 또는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들’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물질(色)은 : 네 가지 근본물질과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인데, 업에서 생겨난 물질 등을 뜻할 것 같습니다. (업에서 생긴 물질도 일어나고, 마음에서 생긴 물질도 일어나고, 온도에서 생긴 물질도 일어납니다.) (어머니의 영양을 통한) 음식에서 생긴 물질도 일어납니다.) 이것이 상좌부 불교의 하나의 이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성은 칠지의 말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무슨 뜻인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으니 제자 2가 말했습니다. “그럼, 육입(六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칠지가 대답했습니다. “육입(六入)을 ‘여섯 감각장소’라고 옮기면,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노의 감각장소가 육입입니다. 이때 눈의 감각장소는 ‘눈의 감성’이라는 물질이고, 귀의 감각장소는 ‘귀의 감성’이라는 물질이고, 코의 감각장소는 ‘코의 감성’이라는 물질이고, 혀의 감각장소는 ‘혀의 감성’이라는 물질이고, 몸의 감각장소는 ‘몸의 감성’이라는 물질이고, 마노의 감각장소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책에서는 ‘32가지 과보의 마음’을 마노의 감각장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3이 말했습니다. “‘감각장소’를 이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예를 들어: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합니다. 어디에서 합니까? 들판에서 합니다. 이것이 장소이듯이, 마음은 형색을 어디에서 만납니까? 바로 눈의 감성이라는 물질에서 만난다고, 또 다른 비유를 들면,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합니까? 축구장에서 합니다. 이것이 장소라고 이해할 때, 마음은 소리를 어디에서 만납니까? 바로 ‘귀의 감성’이라는 물질에서 만난다고 해도 될까요?”
칠지가 말했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넫 여기에 대해 좀 다르게 설명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어떤 카페의 한 회원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인데, 인용해 보겠습니다. 표현을 한두 개 고쳤습니다.
// 아야따나(入-處).....
문자적으로 <여기로 옮(오다)>....... 어떤 곳에 (들어)감.
무엇이 어디로?
심(citta)가 眼(눈)으로 들어감(入), 들어간 곳(處) [...이비설신의] : 내입처
동시에 色(형태)에 들어감(入), 들어간 곳(處) [...성향미촉법] : 외입처
이미
심(citta)은 주의를 기울임(作意)에 의해서
意(마노) 으로 들어감(入), 들어간 곳(處)
동시에 法(담마)에 들어감(入), 들어간 곳(處).
두 가지 경우의 수.
1. 외적 자극 없이 내적 욕구에 의한 경우.
2. 외적 자극에 의한 내적 반응에 의한 경우.
축구장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축구를 하고 있는 중.
어떤 곳이 축구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더라도
축구를 하고 있지 않으면 그곳은 축구장이 아닌 것으로 이해합니다.
눈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의 형태가 영역에 들어오는 경우.
또한 그곳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모두 갖추어 졌을 때
이른바 ‘역사’가 전개되겠지요. //
제자4가 말했습니다. “마노의 감각장소(意處)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동영상 법문을 듣다가 이런 내용을 만났습니다. 실제와 약간 차이가 날 수도 있는데, 이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 ... 마음이 보는 역할을 하려면 눈이라는 조건이자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 의(意)라는 처(處)는: ‘마음’이 ‘마음의 대상’과 만났기 때문에 그 만나서 일하는 장소가, 마음 자체가 처(處)가 됩니다. (예를 들면, 생각이 떠오를 때) 생각하는 마음이 바로 생각하는 장소가 됩니다. ... //
저는 이 대목에서 ‘마노의 감각장소(意處)’가 무엇인지 한 가지 뜻을 추측했습니다. 여기 김철수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의 마음에 상금 백만 원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상금 백만 원이 떠오른) 그 순간의 마음이 ‘마노의 감각장소’라고 추측했습니다. 만약 김철수가 마음에서 ‘상금 백만 원’이라는 (마노의 대상인 法으로서의) ‘상금 백만 원’을 계속 생각하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그(런) 마음들을 감각장소(意處)’로 하여 다른 유익하거나 해로운 마음들이 일어나겠습니다.
뜻을 새기기 위해서 다시 예를 들어봅니다. 여기 김철수가 있습니다. 김철수가 오늘 날씨를 생각합니다. 바로 그 순간의 마음이 ‘마노의 감각장소’라고 추측합니다. 그 (순간의) 마음에서 (마노의 대상으로서의 法인) ‘오늘 날씨’와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철수가 ‘오늘 날씨’를 계속 생각하면 (마노의 대상인 법(오늘 날씨)을 만나면서 생멸하는) (그런) 마음들이 ‘마노의 감각장소’가 되고, 그런 마노의 감각장소를 문(門)으로 하여 유익하거나 해로운 마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칠지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분은 ... ”
그때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소나기가 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중단하고 빙청 선인 일행은 옆에 있는 동굴로 얼른 몸을 피했습니다. 동굴로 몸을 피하자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다성은 비가 올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친 사람은 비가 와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이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