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성,재등록과수정

9. 마음의 분류,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들으며

풀빛 너머 2021. 1. 28. 08:24

9. 빙청 선인 일행이 도착한 곳은 삼계(三界) 마을이었습니다. 아주 큰 마을이었는데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방을 89개 가지고 있었고 각 방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는데, 열쇠가 채워져 있어서 들어갈 수 없는 방도 많았습니다. 첫째 구역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적절하게 (1)~(12), (13)~(19), (20)~(27), (28)~(29), (30)~(38)에 머물렀습니다. 둘째 구역의 사람들은 (55)~(59), (60)~(64)에 잘 머물렀고, 셋째 구역의 사람들은 (70)~(73), (74)~(77)에 잘 머무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세 구역은 각각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라고 불렸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이 아침을 먹으려고 마을 식당에 들어가자 손님 몇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는가? 어제 우리 마을에 온 구도회 소속의 젊은이들이 자기 스승님은 예류자시라고 말했다네. 시간 있다면 예류자라고 불리는 그분을 오늘 한번 뵈러 가는 것이 어떻겠나? 마침 오후 2시에 마을 회관에서 강연을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함께 가보세.”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성이 식당 주인에게 마을 회관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 빙청 선인이 오후 1시까지 각자 자유 시간을 갖고 1시에 여기 식당 옆 나무 아래에서 다시 모여 마을 회관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밖에 나온 다성은 한껏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벤치에 앉아 어제 구입한 아비담마 길라잡이 전정판1을 읽으며 한시라도 빨리 예류자분을 뵙기를 바랬습니다. 그때 젊은이 몇 사람이 옆 벤치에 앉아 서로 토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 젊은이가 동료들에게 어떤 자료를 나누어주었는데, 한 부가 남았습니다. 주위를 들러보다가 다성이 읽고 있는 책을 발견하고는 이것 한번 읽어보실래요?”하며 남은 자료 한 부를 주었습니다. 다성은 엉겁결에 또 미심쩍어하면서 , . 감사합니다.’하면서 자료를 받고 제목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자신이 읽고 있던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내용 중에서 일부를 요약해놓은 것이었습니다. 다성은 너무 고마워서 그 젊은이를 돌아보았는데 그가 다성에게 함박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다성이 그 자료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나중에 익히기 위해서 앞부분 강의 내용을 한번 간략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글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제가 잘못 듣고 잘못 이해하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 아비담마란 무엇인가?

법에 대한 연구

(풀어 쓰면 : 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또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또는 불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아비담라라고 한다. (*아비-위에, 대하여. *담마-())

 

2. (, dhamma)이란 무엇인가?

()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교학으로서의 법(, 부처님의 가르침, 대문자 ‘D’- Dhamma)

고유성질을 가진 것(, 자신의 특징을 가진 것, 소문자 ‘d’- dhamma).

 

3.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법()을 정의하는 두 가지 공리(公理)?

→ ①법은 고유성질을 가진 것이다

유위법들은 찰나적 존재이다. (에서는 무위법인 열반은 제외함)

 

(참고1. 탐욕과 성냄을 위의 관점으로 말해보시오

고유성질에서 탐욕은 마치 끈끈이처럼 대상을 거머쥐는 특징을 가지고, 성냄은 마치 두들겨 맞은 독사처럼 잔인함을 특징으로 가지므로 두 법은 서로 구별됩니다. / 그런데 찰나적 존재란 점에서는 둘 다 무상합니다.)

 

(참고2. “찰나에 대하여

찰나?: ‘법의 고유성질을 드러내는 최소 단위의 시간이다

찰나는 무상(無常)에서 비롯한다.

무상이란: ‘있었다가 존재하지 않음(않는다)’을 뜻한다

무상의 최소 단위가 찰나이다 (그래서 찰나는 어떤 법이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고 사라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략 1찰나는 75분의 1초이다

참고로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물질이 머무는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음은 1초에 대략 1,200번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한다

백세를 기준으로 하면 사람은 378432천만 번 정도의 마음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고 한다)

 

(참고3. 오온을 자기 존재라고 취착하는 글쓴이가 찰나적 존재라고 한다면, 왜 그는 소멸하지 않고 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오온이 찰나에 생겨났다가 찰나에 사라졌지만 틈 없이 뒤이어 다음 찰나가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틈 없이 뒤이어 다음 찰나가 생겨나고 사라지고 이렇게 법들이 틈 없이 이어지고,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즉 찰나생 찰나멸이 틈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는 한 평생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간다고 이해할 수 있다. 법이 相續상속하는 것이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흐름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4. 그럼 이 세상에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 몇 개 있는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우선 82개라고 설명한다

마음1, 마음부수52, 물질28, 열반1

4-1. 주제별로 분류하면 몇 가지인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네 가지이다 : 마음, 마음부수, 물질, 열반.

 

 

마음을 분류하는 기준

 

(이 글은 아비담마 길라잡이1, 전정판각묵 스님의 동영상 강의’ + ‘아비담마 해설서1(강종미, 도다가 마을, 2009)’ + ‘저의 추측을 섞어서 한번 정리해 본 것입니다. 혹시 이 글속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제가 잘못 읽고 잘못 듣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음: 마음에 대해 알려고 할 때, 좋은 방법 하나가 마음을 어떤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분류하는 어떤 기준이 있습니까?

대답: 있습니다.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우선 마음을 영역별로 나눕니다. 그래서 욕계 마음 / 색계 마음 / 무색계 마음 / 출세간 마음의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이 분류는 마음의 경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만큼 마음이 불선법들을 떨쳐버렸고 오염원들을 제거했고 청정한가에 따라 태어나는 세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욕계 마음색계 마음무색계 마음이라고 했고, 한편, 아라한 분들은 삼계를 벗어났으므로 출세간 마음이라고 따로 항목 한 개를 더 만든 것입니다.

 

물음: , 잘 알겠습니다. 그럼 마음을 이렇게 욕계 마음 / 색계 마음 / 무색계 마음 / 출세간 마음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외우면 다 된 것인가요?

대답: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교에는 두 가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바로 과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업을 자꾸 지어나가면 그 결과 이 생애에서도 점점 행복해질 것이고 반대로 악업을 자꾸 지어나가면 그 결과 이 생애에서도 점점 괴로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중생이 짓는 이런 선업과 악업은 다음 생에서도 반드시 과보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즉 업에 따른 다시 태어남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분류할 때는 업과 과보를 고려해야 합니다.

 

물음 : ‘의도적 행위를 업이라고 할 때, 선업과 악업이 마음의 분류에서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대답 :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중생이 업을 지을 때 그 중심이 되고 주가 되는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마음이 선한 것인지 불선한 것인지를 구분해내어 선한 마음은 유지하고 자꾸 증장시키도록 하고 불선한 마음은 빨리 제거하고 다시는 안 일어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이제 우리는 이것을 유익한해로운이라는 표현으로 말해보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유익한 업을 짓는 마음과 해로운 업을 짓는 마음으로 구분됩니다. 마음을 분류할 때 업을 고려하는 것은 정말로 꼭 필요한 사항입니다.

 

물음: ,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과보는 어떻게 마음의 분류에 적용됩니까?

대답: 업을 짓고 나서 결과로 생겨나는 과보는 업을 짓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업을 짓는 마음인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볼 때 생기는 눈의 알음알이(眼識), 들을 때 생기는 귀의 알음알이, 냄새 맡을 때 생기는 코의 알음알이, 맛볼 때 생기는 혀의 알음알이, 닿아서 생기는 몸의 알음알이, 어떤 상태의 마노(받아들이는 역할의 마노()와 바로 뒤이은 어떤 상태의 마노의 알음알이(意識))는 모두 과보로 나타난 마음입니다. 단지 눈을 떠서 보일 때, 단지 귀로 들어서 소리가 들릴 때, ... 단지 마음에 떠올라서 식별할 때는 모두 과보의 마음이라서, 이것들은 업을 짓는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과는 구분됩니다. 그래서 나쁜 생각이 갑자기 떠오를 때, ‘, 나는 또 악업을 짓는구나.’라고 잘못 알면 안 됩니다. 나쁜 생각이 떠오른 것은 결과로 나타난 과보의 마음이라서 업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보의 마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업을 짓는 행위입니다. 그 나쁜 생각에 휘둘려 빠져버리고 부림을 당하면 악업을 짓게 되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려서 떨쳐버리거나 제거하면 선업을 짓게 됩니다. 이것이 과보의 마음과 업을 짓는 마음의 차이입니다.

 

물음: , 알겠습니다. 단지 눈을 떠서 눈에 보일 때는 업을 짓는 마음이 아니고 (이전의 업의 결과로 지금 나타난) 과보의 마음이란 말씀이군요. 보고 나서 어떤 의도를 가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업이 되고 그런 의도를 가지고 행위해도 업이 되는 것 같군요. 그럼, 마음은 이것으로 되었나요?

대답: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의도적 행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뒤에서 부를 때 고개가 돌려지는 것은 업도 아니고 과보도 아니고 그냥 단지 작용만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로 업을 짓는 마음도 있고(유익하거나 해로운) 그 업의 결과로 나타난 과보의 마음도 있습니다(유익한 과보이거나 해로운 과보). 그런데 소리가 들릴 때 마음이 소리로 향할 때, 그 순간의 마음은 업도 아니고 과보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 한 개(오문전향의 마음)는 업과 과보와 관계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의문전향의 마음도 작용만 하는 마음입니다. 한편, 아라한 분들께서 하시는 행위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 오지 않습니다. , 더 이상 과보로서 태어남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라한 분들의 마음은 작용만 하는 마음에 속하겠습니다.

 

물음: , 잘 알겠습니다. 그럼, 마음은 모두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까?

대답: 세로축에 영역으로 분류한 것을 놓고 가로축에 '업을 짓는 마음(유익한/해로운)''과보의 마음''작용만 하는 마음'을 놓고서 표를 만들면 : 욕계 마음 54, 색계 마음 15, 무색계 마음 12, 출세간 마음 8. 그래서 모두 89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출세간 마음 8가지를 세분하면 40가지가 되므로 마음을 모두 121가지로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유튜브에서 각묵 스님의 아비담마 길라잡이동영상 강의 앞부분을 조금 듣고, 스스로 익히기 위해서 만든 문제입니다. 혹시 이 글에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제가 잘못 듣고 잘못 읽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1. 욕계 마음은 색계나 무색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은 세상과 마음이 함께 가겠지만, 즉 색계 세상에서는 보통 그에 상응하는 색계 마음들이 일어나고 무색계 세상에서는 보통 그에 상응하는 무색계 마음들이 일어나겠지만, 본삼매에 들지 않았을 때는 색계무색계에서도 욕계 마음이 일어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까마(kāma)’는 색계나 무색계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참고로, 어떤 해설서에서는 : 까마(kāma)에는 오욕의 대상(왓투까마)’탐욕(낄레사까마)’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색계무색계에도 탐욕(낄레사까마)은 있다고 한다.

 

2. 욕계 세상에 살고 있는 수행자는 색계 마음이나 무색계 마음을 경험할 수 있는가?

욕계 세상에 사는 수행자가 : 색계 본삼매에 들면 색계 마음을, 무색계 본삼매에 들면 무색계 마음을 경험한다고 한다.

 

3. ‘욕계 세상, 색계 세상, 무색계 세상처럼 출세간 세상이 있는가?

출세간 세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출세간 마음은 있다고 한다.

 

4. 지구에 태어나셨던 아라한 분들은 어떤 마음인가?

열반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출세간 마음이고 일상 생활하실 때는 욕계 마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때 일상 생활하실 때는 주로 욕계 마음의 작용만 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참고1. 마음

욕계 마음 : 감각적 욕망(까마)에 바탕을 둔 마음

색계 마음 : 본삼매에 든 마음(초선~제사선)

무색계 마음 : 본삼매에 든 마음(공무변처~비상비비상처)

출세간 마음 : 열반을 대상으로 한 마음

 

참고2. 복습 과보의 마음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어떤 것은 재생연결식으로 나타난다.

삶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5.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원인(헤뚜)’?

* 일상에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할 때는 누군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기 때문에 굴뚝에서 연기가 나므로 불을 때는 것을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원인(헤뚜)을 좀 다르게 사용한다고 한다. 고와 고멸을 결과 맺는데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여 : ‘탐욕, 성냄, 어리석음, 탐욕 없음, 성냄 없음, 어리석음 없음’, 이 여섯 가지를 원인이라고 한다.

원인(헤뚜)’뿌리(물라)’는 동의어라고 한다.

 

6. ‘성냄이 일어났을 때 그의 마음에는?

성냄이 일어날 때 어리석음이 함께 있다고 한다.

탐욕이 일어날 때도 어리석음이 함께 있다고 한다.

나의 생각 : 그래서 일상에서 성냄이 일어났을 때 어리석음을 함께 알아차리고, ‘탐욕이 일어났을 때 어리석음을 함께 알아차리면 : 지금 일어난 성냄이나 탐욕에서 벗어나기가(또는 떨쳐버리기가) 더 빠를 것 같다.

 

7. ‘탐욕 없음이 일어날 때는?

성냄 없음도 함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냄 없음이 일어났을 때는 탐욕 없음도 함께 일어났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어리석음 없음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 어리석음 없음(-반야)과 함께 탐욕 없음(-보시)과 성냄 없음(-자애)이 일어날 수 있고, 지혜 없이도 보시하고 자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8. 원인(헤뚜)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보시오.

그런데 한 찰나의 마음 안에서 : 해로운 법(탐욕-성냄-어리석음)과 유익한 법(탐욕없음-성냄없음-어리석음없음)이 서로 섞여서 동시에 일어날 수는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탐욕이 일어날 때 그 찰나의 마음에 탐욕 없음(또는 성냄 없음이나 어리석음 없음)이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해로운 법과 유익한 법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다른 찰나의 마음이어야 한다.

한편, 탐욕과 성냄은 한 순간(한 찰나의 마음)에 동시에 함께 일어날 수 없다. 두 법의 성질이 극과 극으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해로운 마음속에는 어리석음이 함께 한다.

 

9. ‘자극받은 마음자극받지 않은 마음에 대해 말해보시오.

욕계 마음을 분류할 때 : 느낌도 고려 사항이고, 사견이냐 지혜가 있느냐도 고려사항이고, 자극을 받은 마음인가 자극 없이 일어난 마음인가도 고려 사항이라고 한다.

자극받은 마음은 자극을 받아서 일어난 마음이므로 자극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난 마음에 비해 세기가 약하다(힘이 약하다)고 한다.

자극받은 마음은 외부에서 생긴 것일 수도 있고, 내부에서 생긴 것일 수도 있다. , 남의 행동이나 말에 의해서 내 마음이 자극받아 일어날 수 있고, 자신의 정신 속에서 깊은 사유를 통해서이거나 결심을 통해서 자극받은 마음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자극받은 마음은 유익한 마음에서도, 해로운 마음에서도 다 일어날 수 있다.

 

10. 강의에서 들었거나 교재에서 읽었거나 자신이 생각한 것 등에서 자극받은 마음의 예를 들어보시오.

아래의 대답은 제가 생각한 것들이 많아서 틀릴 수도 있습니다.

(1) 평소 보시하지 않던 사람이 법문을 듣고 쉬는 시간에 보시함으로 가서 보시할 때

(2) 어떤 불효자가 어느 날 노모가 주름진 얼굴을 만지면서 이제 내 살날이 얼마일까?’ 하는 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동안의 잘못을 용서빌 때

(3) 게으른 자가 아침에 못 일어나서 시간만 보내는데 옆에서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말을 듣고 일어날 때

(4) 평소 놀기만 하던 학생이 형을 따라 도서관에 갔다가 모든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공부하려고 스스로를 고무하여 공부할 때

(5) 게임에 빠진 학생이 시험 날짜가 다가오자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을 떠올리며 자신을 공부하도록 할 때

(6) 몸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 몸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려고 시체가 썩어 문드러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수행할 때

 

(7) 평소 남의 것을 가져가지 않던 어린이가 친구들이 동네 슈퍼에서 과자를 훔쳐 먹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과자를 훔치려고 할 때

(8) 평소 잔디를 밟지 않던 사람이 어느 추운 날 모든 사람들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잔디밭을 가로질러 갈 때

(9) 어떤 왕이 이렇게 큰 영토를 가졌고 이렇게 강한 군대를 가졌는데도 다른 나라를 복속시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천명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그릇된 사유를 자꾸 하여 전쟁을 일으키려고 할 때

(10) 평소 화내지 않고 잘 참던 가게 주인이 어느 날 이렇게 참기만 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다가 5분 뒤에 환불하러 온 손님에게 쌀쌀하게 대할 때

 

(11) 가문 경(A5:199)에 나타나는 거기에 있는 사람들?

2. “비구들이여, 계를 잘 지키는 출가자들이 어떤 가정을 방문할 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마음이 맑아진다.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들을 천상으로 인도하나니 그때 그 가정은 도닦음을 실천한 것이다.”

저의 생각: 자극받은 마음입니다.

(12) 욕계 마음의 분류에서 왜 자극받은 마음과 자극받지 않은 마음을 고려하는 것일까?

저의 생각: 팔정도에서 바른 정진(正精進)’과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밖이나 안의) 자극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不善法)이 일어날 수 있고, (밖이나 안의) 자극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善法)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성이 읽기를 마치자 갑자기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내용이 많았지만 무엇인가를 많이 배운 것 같았습니다. 오후 1시에 빙청 선인 일행과 만나 함께 마을 회관으로 갔습니다. 오후 2시가 되자 사회자가 강연자를 소개했고 예류자라고 불린 그분께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강호 제현의 동도분들을 모시고 발표를 하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 저의 스승님께서는 일찍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이루고 난 뒤, 그날부터 내가 무엇을 하든(밥을 먹든 길을 걷든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삼매가 깨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매일 깨달음이 왔다. 마음만 먹으면 그 깨달음에 언제나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 여러분, 바로 그렇습니다. 한번 깨닫고 나면, 한번 손님으로 찾아온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의 마음의 오염원들을 제거해버리면 그가 어디에 있든 모든 것이 열반입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가 깨달아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청중들이 매우 기뻐하면서 박수를 쳤습니다. 이윽고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물었고 예류자라고 불린 그분께서는 잘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젊은이 한 사람이 질문 기회를 얻어 물었습니다. 바로 다성에게 아비담마 자료를 준 그였습니다. “강연을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발표자님께서는 스승님 말씀이라시며 일상에서도 삼매가 이어진다는 취지로 말씀하시고, 깨달으면 어디를 가든 열반이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에서 저는 다르게 배웠습니다.”

 

젊은이의 이 말에 갑자기 장내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예류자라고 불린 그분께서는 마음의 동요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만, 언어도단이라고 하지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책에서 배운 지식은 내려놓는다고 하지요.”

 

그러나 젊은이는 이 말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말했습니다. “발표자님, 깨달음의 경지를 말로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배우기로는 발표자님의 말씀에서 몇 가지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삼매에서 출정했거나 삼매에 들지 않았는데도, 예를 들어 밥을 먹거나 길을 가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도 삼매가 이어진다는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배우기로는 삼매에 들지 않을 때는, 사띠(마음챙김)가 잘 확립된 분들이시라면 아마도 (20)~(27), (28)~(29), (30)~(38), 여기에 해당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는 색계 삼매나 무색계 삼매에 해당하는 (55)~(59) / (70)~(73)의 마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류자라고 불린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경전에는 89가지 마음과 같은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이 삼매라면 깨달은 분들은 그런 마음을 삼매에서 출정해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군요.”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우선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둘째는 어제 깨달음이 왔고, 오늘 또 그 깨달음이 오고, 마음만 먹으면 그 깨달음에 들 수 있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그런 경우는 도()의 마음과 과()의 마음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보신 듯합니다. 제가 배우기로는 도()의 마음은, 예를 들어 예류도라면 그 도()가 금생에 딱 한번만 일어나고, 예류자의 그 도()에 따른 과()의 마음은 나중에 출세간 수행을 통해서 얼마든지 많이 일어나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류자라고 불린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질문자님께서는 너무 분별하여 나누시는군요. 분별을 떠난 곳에, 시비를 내려놓는 곳에 도가 있고 깨달음이 있지요. 깨달음의 중심에 있는 마음은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와도 움직이지 않고 외부의 대상을 비추어 볼 뿐이지요. 그래서 그 깨달음의 마음은 자취를 남기지 않지요.”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하신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만, 저는 그 말씀에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깨달으면 어느 곳에 있든 모든 것이 다 열반이라고 하셨는데, 아주 이상한 논리인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 법은 각자 알아야 하는 것으로써, 한사람, 한 사람 이렇게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지 자신이 깨달았다고 해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두루뭉술하게 이말 저말을 섞는다면 사람들은 점점 혼란스러워질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질의응답을 들으면서 청중들이 다시 웅성거렸습니다. 그러자 사회자가 열심히 토론에 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시간이 다 되어 아쉽게도 오늘 강연을 여기서 마쳐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밖으로 나와 어느 큰 나무 아래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았습니다. 다성이 물었습니다. “아까 그분은 그 제자들이 말하는 진짜 예류자 맞는지요?” 칠지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까 그분은 불교에서 말하는 예류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그분은 법()에 대한 의심을 제거하지 못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빙청 선인 일행은 10가지 족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빙청 선인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