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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空)에 대해 생각하며

풀빛 너머 2020. 9. 10. 19:02

7. ()에 대해 생각하며

 

7-1 : 김생이(金生而)

()마을 가운데로 큰 시내가 흘렀습니다. 그래서 시내를 기준으로 용 윗마을과 용 아랫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마을의 공동 시조는 미르할아버지였는데, 그분은 미르 수훈(垂訓)’을 남겼습니다. 정월 초하루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 회당에서 미르 수훈을 합송했습니다.

 

그런데 후손 중에 김생이(金生而)가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김생이는 어렸을 때부터 생이지지(生而知之)로 인근 군()에까지 이름이 퍼졌습니다. 열다섯 살 전에 오경(五經)을 뗐습니다. 그를 가르칠 스승이 없자 혼자 온 나라를 주유했습니다. 학식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들을 찾아가 함께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거경궁리(居敬窮理)하는 선비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 몇 해 동안은 깊은 산중에서 홀로 기거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의 도리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산하니 그의 나이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김생이(金生而)가 처음으로 한 일은 미르 수훈에 새로운 의미를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공()을 완전히 독창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습니다. 한쪽은 김생이의 해석이 미르 할아버지의 뜻을 왜곡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시대에 맞는 훌륭한 해석이라며 극찬했습니다.

 

김생이는 미르 수훈의 다른 내용에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김생이를 반대하는 쪽과 지지하는 쪽이 서로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정월 초하루에 마을 회당에서 이 일을 진지하게 의논하였습니다. 그 결과 시내를 기준으로 따로 살기로 했습니다. 윗마을에는 김생이의 이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랫마을에는 지지하는 사람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김생이가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한동안 브라흐마-아뜨만이론이 유행했습니다. 아랫마을 사람들은 공()을 받아들였으므로 브하흐마-아뜨만에 나오는 아뜨만은 당연히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랫마을 사람들은 그런 아뜨만 없다는 것을 공() 사상에 접목하여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공()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예를 들면 극단주의자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 짐승도 죽는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도 죽는다.’는 명제에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른 생명있는 존재들이든 늙으면 모두 죽으니까 결국은 다음처럼 표현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죽음이다, 짐승은 죽음이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죽음이다하고. 극단주의자는 사람=죽음이라는 데까지 나갔습니다.

 

물질은 자아와 자아에 속하는 것으로는 공()하다고 표현하면 좋았을 텐데, 아랫마을 사람 중에서 극단주의자는 중간 과정을 생략한 채 결론으로 전체를 설명하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극단주의자는 어떤 주어(主語)에도 공()을 갖다 붙였습니다. 책상도 공하다, 나무도 공하다, 버스도 공하다, 몸도 공하다, 느낌도 공하다, 마음도 공하다, ... 심지어 진리도 공하다, 진리에 이르는 길도 공하다는 표현까지도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고로 브라흐마-아뜨만이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옛날 인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보니 만들어낸 것들이 너무 좋았습니다(사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자신을 쪼개어(분신, 分身) 그것들 속에 들어갔습니다. 사람에게도, 짐승에게도, 바위나 나무 같은 자연물에도 분신으로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만들어낸 책상 같은 것들에도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분신이 들어갔습니다.

 

한편, 창조의 신 브라흐마를 한자로는 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브라흐마에 의해 창조된 것이든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뜨만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아뜨만이 있고 짐승들에게도 아뜨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책상, 시계, 자동차에도 아뜨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뜨만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분신이라서, 브라흐마가 영원하고 행복하고 실체이며 지극히 깨끗하듯이, 아뜨만도 항상하고 행복하고 실체이고 깨끗한 존재라고 했습니다(상락아정, 常樂我淨). 그래서 아마 그쪽에서는 아뜨만이 브라흐마와 합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범아일여, 梵我一如).”

 

아랫마을 사람들은 이런 아뜨만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을 아뜨만 없다와 합쳐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극단주의자는 어떤 주어가 나오더라도 그 주어의 서술어에 공()을 갖다 붙이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었습니다. 바위도 공하고 책상도 공하다면서.

 

오전에 빙청 선인 일행이 용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아랫마을 아이들 몇이 동구에서 뛰놀다가 선인 일행을 보고는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할아버지, 아저씨들은 누구시며 어디에서 오셨느냐고 물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습니다. 다성이 우리는 지금 아침을 먹으러 마을 식당을 찾아 간다고 하자, 아이들이 안내해주겠다며 따라오시라고 했습니다. 아이들 모습이 아침을 못 먹은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한 아이가 말하기를, 자신들은 형제간인데 늦잠을 잤고 어머니가 일 나가시면서 차려주신 아침은 점심 때 먹으려고 남겨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성 일행 중 한 사람이 아저씨랑 밥 같이 먹자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당이 너무 조용했습니다. 주인이 연유를 말해주었습니다. 아침에 동장님이 어디 출타를 하시기에 어디 가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오늘 용 윗마을에 유명한 교수님이 오실 것이라면서 윗마을로 가신다고, 그래서 식사하러 오신 다른 손님들에게 동장님 출타 이야기를 했더니 한 사람 두 사람 모두 윗마을로 구경가서 지금은 식당이 텅 비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1이 빙청 선인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식당에는 이 아이들은 공()하지 않고, 식당 주인님도 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장님은 공()하고, 다른 마을사람들도 공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빙청 선인과 제자들, 칠지, 그리고 다성과 일행은 윗마을로 향했습니다. 윗마을에 도착하니 동구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 교수님 초청 강연회 :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도 그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마을 회관 지하 강연회장은 거의 만원이었습니다. 선인 일행은 남아있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용마을 사람들은 아랫마을 윗마을 할 것 없이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오늘 오신 교수님은 제발 공()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7-2 : 황 교수가 공()에 대해 발표하다

황 교수가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공()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을 보아도 남들이 설명해주는 것을 들어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자료를 정리하며 연구한 결과 이제는 공에 대해 나름대로 개념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공()에 대한 정통적인 정의(定義)를 읽었습니다. (M121)

 

예를 들자면, 아난다여, 이 녹자모 강당이 코끼리, , 암말들이 공()하고 금이나 은도 공()하고 여자와 남자의 모임도 공()하지만 비구 승가를 조건으로 하는 한 가지만은 공()하지 않다. 이와 같이 비구도 마을의 상()을 사유하지 않고 사람의 상()을 사유하지 않고 숲의 상()을 조건으로 하는 한 가지만을 사유한다. ...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는 이것은 존재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에 들어감이 있다.” (해피스님이 번역하신 (M121)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용)

 

자료를 읽고 나서 황 교수가, 이 글에 나타난 공의 의미를 어떤 분이 예를 들어주실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자신을 소개하고 나서 예를 들었습니다. “여기에 숲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숲에는 다람쥐, 토끼, 노루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람쥐는 공()하지 않다, 토끼는 공하지 않다, 노루는 공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공()하다, 호랑이는 공하다.’하고.” 황 교수는 참 좋은 비유라고 했습니다.

 

다른 청중 한 사람도 손을 들었고, 그는 수행자를 예로 들었습니다.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있다고 해보고, 그에게 열 가지 제거해야 할 마음의 나쁜 요소가 있다고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나쁜 요소 1을 제거했다면 그에게는 ‘1은 공하다. 그러나 나머지 2~10은 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고, 2개를 제거했다면 ‘12는 공하지만 3~10은 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거기에 남아있는 것은 있다고 하고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고 하는 것이 공의 정통적인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황 교수가 칭찬했습니다.

 

절반 정도의 청중들은 이제야 무엇인가를 알 것 같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절반 정도는 이렇게 쉬운 개념 정리가 어떻게 저 깊은 공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겠느냐며 불만 섞인 표정을 지었습니다. 황 교수가 말했습니다. “무릇 진리는 지자(智者)를 기쁘게 합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있다, 그러나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 이 얼마나 분명한 공()의 정의입니까?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공의 개념에 대해 혼동하거나 어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확신에 찬 황 교수의 발표에 절반의 청중은 더 확고하게 황 교수가 설명하는 공의 의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절반의 청중들은 더 불쾌해졌습니다. 황 교수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황 교수의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박했습니다.

 

청중1이 말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황 교수가 답변했습니다. “물질에서 아뜨만이거나 아뜨만에 속하는 것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상락아정의 아뜨만적인 물질은 없지만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인 물질은 있습니다.”

 

청중2가 말했습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에 (상락아정을 특징으로 하는) 아뜨만이 없기 때문에 공()이고, 그런 공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온지요? 비어 있기 때문에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 교수가 답변했습니다. “생겨나는 것에는 인()도 있고 연()도 있다고 했습니다. 공에서 만물이 생겨나온다고 하면 거기에는 인도 없고 연도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런 풀이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청중3이 말했습니다. “교수님처럼 공()을 그렇게 글자대로만 설명하시면 공의 깊은 뜻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세상의 이치가 공의 개념 하나에 들어있다고 해도 부족할 텐데 그것도 모자라 공의 의미를 축소하시다니,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황 교수가 말했습니다. “유학(儒學)을 알려면 송()대의 신유학을 먼저 읽기 보다는 논어를 먼저 읽는 것이 순서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공의 정통적인 설명을 놓아두고 그 위에 다른 의미를 덧붙여서 그것을 공의 의미라고 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점점 오리무중이 되고 말 것입니다.”

 

황 교수의 이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격앙되려고 했습니다. 각자의 신념이 부딪히려고 했습니다. 사회자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습니다. “저기 맨 끝에 계시는 분들은 처음 뵙는 듯합니다.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자1이 빙청 선인과 일행을 소개했습니다. 갑자기 청중들의 시선이 빙청 선인 쪽으로 쏠렸습니다. 사회자가 빙청 선인에게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 다른 청중이 손을 들었고 사회자는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청중4가 말했습니다. “교수님,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있어서, 교수님께서 정의하신 대로 내면의 나쁜 요소를 다 없앴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다 되었습니까?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공()합니까?” 황 교수가 답변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료를 읽는 것으로 대신해도 될 것 같군요. 같은 M121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그는 무소유처의 상()으로의 상()은 공()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비상비비상처의 상()으로의 상()은 공()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단지 이 몸을 조건으로 하는 생명에 조건 지어진 육입(六入)의 공()하지 않음은 있다.’라고.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는 이것은 존재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진실하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에 들어감이 있다.] ((M121)을 인용)

 

황 교수가 이어서 설명했습니다. “번뇌를 다 부수어서 괴로움을 멸진했지만, 그것은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 것에 해당합니다. 번뇌의 멸진이 몸을 다른 존재 등으로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몸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물질의 특성대로 흘러갈 겁니다. 몸은 늙고 무너져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그러나 그분들은 늙고 병들고 수명이 다하면서 몸이 변하고 바뀐다고 해서 마음의 괴로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겁니다. 그분들은 괴로움을 멸진하셨고, 삶을 완성하셨고, 할 일을 모두 마치신 분들이니까요. 마음의 번뇌는 없어 공하지만, 몸의 번잡함은 남아 공하지 않다고 이해합니다.”

 

절반의 청중들은 이제 공에 대한 개념 정리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있다, 그러나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 이 말에 다른 의미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7-3. ‘공성(空性)’이라는 용어

다성은 지금 공()에 대해 조금 배웠습니다. 그래서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려고 비유를 하나 만들어보았습니다. 여기에 누가 있어,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사견, 질투, 모욕 주기, 깔봄, 자만, 이간질, 잡담, 욕설, 폭력을 쓰려는 의도, 거짓말, 사기침, ...’ 이라는 해롭고 나쁜 요소들 중에서 이간질이라는 해롭고 나쁜 요소 한 개를 제거했다면 그에게는 어떤 말이 있을까요? 아마도 그는 지금 내게 이간질은 공()하다, 그러나 나머지 나쁜 요소들은 공하지 않다.’ 하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다성이 눈을 감고 이렇게 공의 뜻을 되새기고 있는데 갑자기 저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황 교수의 발표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청중 한 사람이 질문했나 봅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장이라고 밝히고 나서, “교수님께서는 공성(空性)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공성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시는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황 교수가 아니, 공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처음 들어보는 말이 아닌가?’ 하고 당황하여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황 교수는 생각했습니다. ‘()은 거기에 없다는 뜻이다. 여기 강당에는 교수가 공하지 않고 청중도 공하지 않다. 그러나 개는 공하고 소도 공하다. 수행자라면 낮은 단계에 있던 인식(또는 상()): 수행이 한 단계 올라가서는 이전의 그 인식이 없어질 때 그 인식을 공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장선생님이 언급하신 공성(空性)이란 무엇일까?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수행자가 먼저 있었던 것을 나중에 없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 또는 성질을 말하는 것일까? , 수행이 향상되면서 이전의 나쁜 요소들이 제거되는 어떤 원리나 법칙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교에서 말하는 제법(諸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런 어떤 성품이나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 공성(空性)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렇게 황 교수가 답변을 못하고 시간이 자꾸 흐르자 교장선생님이 쐐기 경(S20:7)에 보면 “... 공함(空性)과 관련된 ...”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에 황 교수가 해당 경을 얼른 찾아보았습니다.

 

... 4. “비구들이여, 미래의 비구들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그들은 여래가 설했고 [가르침이] 깊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이고, 공함[空性]과 관련된 경들을 외우면 그것을 듣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기지 않고, 그 법들을 잘 이해해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지었고 아름다운 시어를 가졌고 외도들이 지었고 [그들의] 제자들이 설한 경들을 사람들이 외우면 비구들이 그것을 듣고, 귀 기울이고,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기고, 그 법들을 잘 이해해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가 설했고 [가르침이] 깊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이고, 공함[空性]과 관련된 경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여래께서 설하셨고 [가르침이] 깊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이고, 공함[空性]과 관련된 경들을 외우면 우리는 그것을 들을 것이고, 귀 기울일 것이고, 잘 알아서 마음에 새길 것이고, 그 법들을 잘 이해해야 하고 정통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황 교수가 경을 읽고 검토를 마친 뒤에 말했습니다. “suññatappaṭisaṃyuttānaṃ이라는 해당 빠알리 어를 어떤 곳에서는 공함(空性)과 관련된이라고 번역하셨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공에 일관된이라고 번역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순냐(suñña)()’, 순냐따(suññatā)공함의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순냐따 suññatā를 그냥 공함으로 번역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공함이라는 한글 옆에 괄호를 해서 한자어 空性(공성)’을 넣으니, 제 느낌에는 어떤 알 수 없는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공성(空性)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니, 공을 형성하게 해주는 어떤 원리나 법칙을 새로 발견해내어야 한다는 쪽으로 공부가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 교수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쐐기 경의 해당 부분을 한자어 空性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냥 공하다의 명사형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공에 일관된의 번역을 선택하여 그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장선생님께서 질문하신 공성(空性)’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견해를 내지 않겠습니다. 널리 혜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저의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질의응답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청중들 반응은 둘로 갈렸습니다. 한쪽은 이제야말로 진짜 공에 대한 개념 정리가 완성되었다며 감격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황 교수의 발표가 깊이가 없다면서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황 교수를 지지하는 누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M121을 통해서 공()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은 거기에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수행자에게 공이란 어떤 내적 경향인 상(), 또는 어떤 인식이 없어진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수행자가 색계 삼매에 들어 소유와 관련된 욕계 중생의 상()이 없어지면 그에게는 그런 어떤 욕계 중생 수준의 상()이 공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색계 삼매에 들면 색계 중생 수준의 어떤 상()은 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수행이 완성되면 욕루(慾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의 번뇌 상태에 속한 상()들이 모두 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수행자가 탐 진 치에서 벗어나도 단지 이 몸을 조건으로 하는 생명의 조건 때문에 육처(六處)(여섯 감각장소)에 속하는 것의 공()하지 않음은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없는 것은 공()하다고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있는 이것은 있다고 분명히 안다.’는 내용을 잘 새겨놓으면 될 것 같습니다.” ((M121) 인용 및 변형)

 

모두 돌아갔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도 밖으로 나와 용마을을 벗어나서 큰 나무 아래에 잠시 앉았습니다. 그때 용 아랫마을 사람들 몇몇이 찾아왔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누고 환담을 한 후 용 아랫마을 사람들이 빙청 선인에게 질문했습니다. 오온이 공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시느냐고. 그러자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물질(())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고 가르쳐주신 대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뜻을 저는 물질을 나라고도 하지 말고, 물질을 가진 것이 나라고도 하지 말고, 물질이 나 안에 있다고도 하지 말고, 물질 안에 나가 있다고도 하지 말자.’ 하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듯이 저도 물질이 공하다는 말은 : 물질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는 것까지 공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알음알이(수상행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이해하겠습니다.”

 

빙청 선인의 말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였고, 또 공의 여러 가지 뜻 중에서 한 가지 뜻만 말하고 여러 다른 의미를 말하지 않는 것 같아서, 용 아랫마을 사람들이 더 물었습니다. ‘, , , , , 마노()가 공하다.’를 어떻게 이해하시느냐고. 그러자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눈은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고 경에서 알려주시는 대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눈을 나라고 하지 말고, 눈을 가진 것이 나라고 하지 말고, 나 안에 눈이 있다고 하지 말고, 눈 안에 나가 있다고 하지 말자.’하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도 눈이 공하다는 말이 : 눈은 무상하고 고이고 무아라는 것까지 공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 , , , 마노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이해하겠습니다.”

 

용 아랫마을 사람들은 빙청 선인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는 동의하고 어느 정도는 동의하기가 꺼려졌습니다. 조금 더 논의하다가 그들은 돌볼 일이 있어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쪽 어느 곳에 계신다는, ‘세상을 잘 알고, 궁극의 진리를 보고, 거센 물결과 바다를 건넌 분, 속박을 끊고 의존하지 않으며, 번뇌 없는 분’, 그분을 만나러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숫타니파타, p.167)

 

 

(참고 : 다성이 이해하는 공() -틀릴 가능성도 많음)

1 불교에서 말하는 한자 번역어 ()’은 빠알리 어로는 두 가지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

- 하나는 공간을 뜻하는 것이고,

- 다른 하나는 바로 여기서 논의하는 : 어떤 법()비어있다, 공하다, 나타나 있지 않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2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 공하다에 적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3 , 어떤 인식()비어 있을(공할)’ , ‘그 인식이 공하다고 적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