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성 5 : 몸(물질의 측면)에 대해 생각하며
5. 물질(몸의 부분)에 대해 생각하며
그대는 어디에 머뭅니까?
저기 앞에 마을이 보였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잠시 큰 나무 밑에 앉아 쉬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빙청 선인이 다성과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평소에 여러분들깨서는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하루 중 시간이 날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십니까? 어떻게 머뭅니까? 어디에 머뭅니까?”
다성과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독서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자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예. 여러분들께서는 시간이 날 때 그렇게 머무시는군요. 그런데 여기 제 제자들은 평소 조금 다르게 머뭅니다.” 이 말을 듣고 다성과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선인이시여, 저희와 같은 이런 머묾 말고 다른 머묾이 있습니까? 제자 분들께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요?”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함께 수행을 하다가 개인 시간이 주어지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저기 제자3은 자신에게 부족한 호흡 관찰을 해내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사념처를 제대로 닦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제자4가 니까야에 나오는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면서 머문다. ...”
다성과 사람들은 감동하여 말했습니다. “아, 수행자 분들께서는 그렇게 사념처를 닦으며 머무시는군요. 수행자에게는 또 다른 머묾이 있습니까?”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또 다른 머묾이 있습니다. 니까야에 나오는 말씀에 따르면,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라고 나옵니다. 이어 ‘제이선, 제삼선, 제사선을 구족하여 머문다.’라고 나옵니다. 이렇게 수행자들은 바른 삼매를 닦으며 머뭅니다.”
다성과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수행자 분들께서는. 그런데 만약 저희들같이 재가자로서 수행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시간이 날 때 닦아서 머물 수 있는 또 다른 어떤 것이 있습니까?”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예. 있습니다. 사념처 수행과 초선에서 제사선까지의 선정을 닦지 못한 재가자의 경우나 도를 잘 닦는 수행자들도 함께 닦는(닦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무량심을 닦아서 머무는 것입니다.”
그때 제자4가 니까야에 나오는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 여기 비구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뭅니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慈-metta]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뭅니다. ...”
다성과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예. 들려주신 가르침을 잘 새기겠습니다. 비록 저희들이 불민하오나 이제부터는 시간이 난다면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이라는 사무량심을 닦으며 여기에 머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빙청 선인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로 향했습니다.
5-1. 칠지와 대학생들이 물질(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 그리고 칠지, 다성과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철학 마을이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철학자였습니다. 존재란 무엇인가? 앎이란 무엇인가? 나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말(언어)이란 무엇인가? 윤리란 무엇인가? 하면서 서로 묻고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식당에서 요기를 한 후 빙청 선인과 제자들은 숲 속 나무 밑으로 가서 호흡 수행을 했고 칠지와 다성과 사람들은 마을에 남아 철학자들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그때 그곳 대학생들이 다성 일행 쪽으로 와서 자신들은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칠지를 중심으로 둘러앉았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누고 대학생1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셨는지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시나요?” 칠지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지금 50대 중반이니 저를 단지 ‘아저씨’라고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성과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어떤 말을 하고 칠지는 또 어떤 말을 할지 귀 기울였습니다. 칠지가 말했습니다. “제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를 물어볼까요? 만약 여기에 어떤 사람이 와서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대학생2가 말했습니다. “저라면 그가 하루 동안 생활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겠어요. 그리고는 ‘여기 이 사람이 바로 당신이에요. 이렇게 걷고, 벤치에 앉고, 친구를 기다리고, 생각에 잠기고, 친구가 오자 이야기를 나누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이 사람이 바로 당신이랍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보여주겠습니다.”
칠지가 말했습니다. “훌륭합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더 말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말에 대학생들이 멈칫했습니다. 다성도 칠지가 되묻는 것이 뜻밖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으면 저기 저 사람은 누구이고 여기 이 사람은 누구라고 알려주면 대부분은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칠지가 그런 대답 말고 다른 대답을 말해보라고 하니 대학생들이 생각을 좀 해야 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려운 문제인지 대학생3이 낙담하여 말했습니다. “그런 경우에 저는 친구가 대답한 ‘동영상을 찍어 이 사람이 당신입니다.’ 고 알려주는 것 보다 더 잘 말해줄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자 칠지가 말했습니다. “그럼, 만약 그 사람이 질문을 바꾸어, ‘<무엇을>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즉 ‘자기 존재, 자기 존재라고 하는데 무엇을 자기 존재라고 합니까?’ 하고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S38:15 참고) 대학생들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다성 일행도 무엇을 자기 존재라고 하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좀처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칠지가 대학생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무엇을 자기 존재로 보는지요? 즉 무엇을 <이것은 나다> 또는 <이것은 내 것이다> 또는 <이것은 나와 관련된 것이다>고 보는지요?” 그러자 대학생1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 몸이 나(我)라고 봅니다. 그리고 마음도 나라고 봅니다.” 칠지가 말했습니다. “예, 훌륭합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존재로 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마음까지 탐구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이 몸에 대해서만 대화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대학생들이 모두 동의했습니다. 다성 일행은 점점 흥미를 느꼈습니다. 과연 이 몸에 대해서 어떤 말들이 오갈지 궁금해졌습니다.
5-2. 몸이란 무엇인가? (물질의 측면에서)
칠지와 대학생들이 몸에 대해서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먼저 눈, 귀, 코, 혀, 몸이 각각 기능하는 영역 –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는 역할 - 은 빼자고 했습니다. 그 대신 걷고 서고 앉고 눕고 일하고 생활하면서 한평생 살다가 마지막에는 늙고 죽는 이 몸뚱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진행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몸은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밥과 죽과 빵 등의 음식으로 길러졌고, 수명이 다하여 죽으면 부서지고 파괴되고 해체된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참고 : (...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압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 사문과경 (D2))
칠지가 먼저 우리 몸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고 묻자 대학생들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도 하고 분자로 이루어졌다고도 하고 물질로 이루어졌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칠지가 원소나 분자도 다 물질의 영역이니까 몸은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좋은 의견이시라면서 <몸은 물질로 이루어졌다>를 하나의 명제로 채택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몸은 물질로서 나라고 여기는 것’, 또는 ‘나라고 붙잡은 물질이 몸이다’라고 정의(定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물음은 ‘물질이란 무엇인가?’로 넘어갔습니다. 대학생1이 말했습니다. “물질이란 100여종의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이루어진 덩어리입니다.” 대학생2가 말했습니다. “물질이란 우주 안의 모든 물체를 만드는 재료로서, 질량을 갖는 모든 것입니다.”(인터넷 검색에서) 대학생3이 말했습니다. “물질이란 공간을 차지하였다가 다른 것과 부딪히면 변형되는 것입니다.” 칠지도 말했습니다. “물질이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 이들 네 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S22:56)에서 인용 및 변형)
칠지의 말을 듣고 대학생들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만물의 근원으로 본 4요소설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칠지는 4요소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이 배워서 이해하는 물질은 지수화풍(地水火風) 각각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질을 ‘지수화풍 각각의 요소 + 지수화풍 각각의 요소들이 결합한 것’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질(또는 물체)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땅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땅의 요소에 반응하고, 물, 불, 바람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각각 물, 불, 바람의 요소에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물질(또는 물체)이든지 간에 땅에 두어도 그만큼 변형되고 물에 두어도 그만큼 변형되고 불에 두어도 그만큼 변형되고 바람에 두어도 그만큼 변형된다고 했습니다.
과학적 설명과는 조금 다른 칠지의 말을 듣고 대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래서 칠지에게 조금 더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칠지는 사람 몸을 예로 들었습니다. “물질로 된 우리 몸은 차가움에 의해서도 부딪혀 변형되고, 더움에 의해서도 부딪혀 변형되고, 배고픔에 의해서도 부딪혀 변형되고, 목마름에 의해서도 부딪혀 변형됩니다. 그리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들에 의해서도 부딪히고 변형됩니다. 이처럼 부딪힌다고 해서 또는 변형된다고 해서 물질이라고 합니다.” ((S22:79)에서 인용 및 변형)
5-3. 몸에 대한 태도
다성은 대화를 따라가면서 스스로 사유해보았습니다. 처음에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이것이 내 자신이다, 이것이 나다’고 하는 것에는 몸과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 대화에서는 몸을 주제로 서로 토론하는 중이었습니다. 다성이 듣고 이해하기로는, ‘몸은 <나 자신>이라고 붙잡은 물질’이었습니다. 몸은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밥과 죽과 빵 등의 음식으로 길러졌고, 나중에는 늙고 죽어 부서지고 파괴되고 해체되는 것이었습니다. 몸은 100여 가지 원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졌거나 지수화풍의 요소들로 이루어졌거나 간에 물질이기 때문에 부딪히고 변형되는 것이었습니다. 차가움, 더움, 배고픔, 목마름에 의해서도 이 몸은 변형되는 것이었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들에 의해서도 변형되는 것이었습니다.
칠지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 몸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대학생1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 몸을 함부로 하지 않고 소중히 하겠습니다. 한 평생을 지탱하고 살아가야 할 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생2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 몸을 아름답다고 여겨왔어요. 미인 대회에 나가도 된다는 말을 늘 들었어요. 그런데 오늘 토론하면서 이 몸에 대해 너무 자만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눈에서는 눈곱이, 귀에서는 귀지가,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서는 담즙과 가래가, 몸에서는 때와 땀이 흘러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리고 대변을 보고 소변을 본다는 생각을 하니, 이 몸에 대해 너무 아름답다고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숫타니파타, P.157 인용 및 변형)
대학생3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못 생겼습니다. 그래서 늘 주눅이 들고 의기소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안 그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몸도 있고 마음도 있으니, 비록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해서 마음까지 못 생길 이유는 없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남은 과거이고 지나간 일이고 제가 바꿀 수는 없잖아요. 그러나 마음은 내가 얼마든지 착하고 점잖고 예의바르게, 그러면서도 명랑하고 진취적이고 맑고 밝게 바꿀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칠지가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세 분 모두 훌륭하십니다. 장하십니다. 대학생이고 청춘의 한창 때에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려는 아름다운 생각을 하시다니 장하십니다.” 이렇게 대학생들을 기쁘게 하고 격려한 뒤에 칠지는 다시 물었습니다. “계속 하겠습니다. 물질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요?” 대학생들이 바로 <공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성은 역시 대학생이라서 말이 척척 나오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칠지는 맞다고 했습니다. 물질은 모두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질이 위치하려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물체든지 물체로 규정되려면 공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칠지와 대학생들이 앉은 자리도 공간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저기 나무도 앞뒤로 옆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저기 멀리 보이는 건물도 공간이 있어야 건물로 규정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저 건물에 공간이 없다면 그냥 시멘트 덩어리일 뿐이었습니다. 우리 몸도 공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몸 밖뿐만 아니라 몸 안에도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물질(몸)은 ‘물질을 이루는 요소들’과 ‘그 요소들이 결합한 것들’로서, ‘공간’을 차지한다고 규정되었습니다.
5-4. 마음이 몸에 묶임
이제 칠지가 아주 어려운 질문을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생들을 그윽이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은 이 몸에 어느 만큼 제약되어 있을까요? 우리 마음은 이 몸에 어느 만큼 기대어 있고 어느 만큼 묶여 있을까요? 과연 마음이 몸에 대한 기댐과 묶임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요?” ((D2)에서 인용 및 변형)
대학생들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의 마음이 몸을 떠날 수 없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따라 아프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마음이 몸에 기대고 묶이고 제약되어 있다는 칠지의 말을 듣고는 새삼 그 뜻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은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마음이 따라 휘둘리고, 목이 마르고 허기가 지면 마음이 따라 고통스러워하고, 몸자세가 불편하거나 몸에 닿는 감촉이 싫은 것이라면 마음은 따라 고통스러워하고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칠지의 말은 마음이 몸에 제약되고 묶여있는데, 어느 만큼 마음이 몸에 속박되어 있는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대학생1이 말했습니다. “질문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몸에 기대어 있고 묶여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칠지가 대답했습니다. “비유하면 아주 깨끗하고 품질이 최상인 유리 보석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최상의 보석이 여러 가지 빛깔의 실에 묶여 있습니다. 즉 최상의 유리 보석이 빛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못 보고 보석을 묶고 있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줄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있다고는 하지만 마음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이 몸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보석은 마음을 비유한 것이고 여러 색깔의 실은 몸을 비유한 것입니다.” ((D2)에서 인용 및 변형)
이 말을 듣고 대학생2가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조금 이해했어요. 우리는 몸이 원하는 것이 전부 진실인줄 알고 몸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뜻도 되겠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 많이 몸에 기대어 있고 묶여 있네요. 몸이 아프면 마음도 괴롭고, 몸이 늙고 병들면 마음도 늙어지고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을 보아요.” 칠지는 잘 말씀하셨다면서 대학생3을 바라보았습니다.
대학생3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대학생들이 칠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칠지가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굳이 제가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을 말씀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최상의 보석은 마음을, 여러 가지 색깔의 실은 몸을 비유하셨다고 나오므로, 이 몸은 참으로 다양한 빛깔의 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기 형상을 보는 이 눈은, 저기 소리를 듣는 이 귀는, 저기 냄새를 맡는 이 코는, 저기 맛을 보는 이 혀는, 저기 닿는 것을 감촉하는 이 몸은, 참으로 갖가지 색깔의 실인 것 같습니다. 눈-형상, 귀-소리, 코-냄새, 혀-맛, 몸-감촉에 따르는 무수한 즐거움에 빠지고 기대고 묶여서 마음은 제약되고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칠지가 계속 말했습니다. 우리들 범부가 몸에 제약되고 묶여 있는 모습들이 책에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한 예를 보면 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배우지 못한 범부는 ...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간다. 그의 물질이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의 알음알이는 ‘물질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인다. 그러면 ‘물질은 변화한다.’는 [생각에] 휩싸여서 생긴 초조함과 [해로운] 심리상태가 일어나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머문다.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는 겁을 먹고 걱정하고 안절부절못하고 그래서 취착에 의한 초조함이 있게 된다. ...” (취착에 의한 초초함 경(S22:7))
칠지의 말이 끝나자 대학생들이 “그럼, 우리는 어떻게 마음이 몸에 묶여 있는 데서 풀려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칠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그 문제의 답을 모릅니다. 그러나 괜찮으시다면 경전의 한 대목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면서 칠지가 삼매 경(S22:5)의 한 대목을 읽었습니다. “... (어떤 사람은) 물질을 즐기고 환영하고 거기에 묶여있다. 물질을 즐기고 환영하고 거기에 묶여있는 자에게 즐김(난디)이 일어난다. 물질을 즐기는 것이 바로 취착이다. ... / ...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은) 물질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다. 물질을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거기에 묶이지 않는 자에게 즐김이 소멸한다. 즐기는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한다. ...”
칠지가 읽기를 마치자 대학생들이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대학생들은 긴 시간동안 토론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칠지에게 고마워했고, 칠지는 대학생들을 만나 기뻤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며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칠지는 예전에 공부했던 것이라며 한번 참고삼아 읽어보시라며 대학생들에게 프린터 한 장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다성과 사람들게도 한 장씩 주었습니다. 이윽고 칠지와 다성과 사람들은 빙청 선인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은 아직도 자리에 앉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칠지와 다성과 사람들도 다른 나무 아래에 앉아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성은 빙청 선인이 가르쳐 주신,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쉴 때는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짧게 들이쉴 때는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쉴 때는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는 구절을 떠올리며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호흡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다시 정신 차리고 다시 정신 차리며 한번이라도 호흡을 관찰하려고 애섰습니다.
◌ 참고 : 프린터의 내용 (아비담마 길라잡이 (하) (구판), 초기불전연구원, pp.550~552.)
Ⅱ. 물질의 분류
§6. 한 가지로서
이 모든 물질은 원인을 갖지 않고, 조건을 가지며, 번뇌와 함께 한다
또한 형성된 것이며, 세간적이며, 욕계에 속하며, 대상이 없다
버릴 수 없는 것으로서는 한 가지이지만 안의 [물질], 밖의 [물질] 등으로서는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해설]
1. 물질의 한 가지로서의 특징
(1) 모든 물질은 원인을 갖지 않는다
← 왜냐하면 유익하거나[善] 해롭거나[不善] 판단할 수 없는[無記], 이런 원인은 모두 정신적인 법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아비담마에서는 탐, 진, 치, 불탐, 부진, 불치의 여섯을 원인[헤뚜]이라 한다
(2) 모든 물질은 조건을 가진다
← 왜냐하면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음식을 조건으로 해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3) 모든 물질은 번뇌와 함께 한다
← 물질은 네 가지 번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4) - (5) 모든 물질들은 형성된 것이고 세간적이다
← 왜냐하면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무더기[五取蘊]’의 세계를 넘어서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6) 모든 물질은 욕계에 속한다
← 색계에도 물론 물질이 존재하지만 물질은 그 성질상 욕계에 속한다
← 왜냐하면 감각적인 갈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7) 물질은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
← 마음과는 달리 물질은 대상을 인지하지 못한다
(8) 물질은 네 가지 출세간 도를 통해서 번뇌를 버리는 것처럼 버릴 수 없다
← 이런 의미에서 다른 주석서에서는 버릴 수 없음 대신에 도가 아님을 들기도 한다
2.『청정도론』에서는 『담마상가니[法集論』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청정도론ⅩⅣ.72』
①이 모든 것은 “원인이 아니고, 원인을 갖지 않으며, 원인과 함께 하지 않고”,
②“조건을 가지며, 세간적이고, 번뇌에 물들기 쉽다”라는 측면에서 볼 때 1가지이다
2-1. 주석서와 약간 다른 설명
『청정도론』과『담마상가니』에는 (물질의 측면에서)
①대상을 가지지 않음과
②버릴 수 없음이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