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이야기 ` - 공(空)에 대하여
어느 날 다성이 산책하러 나왔습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어떤 청년이 우우우 하고 소리를 내면서 뛰어왔습니다. 걸음을 빨리 걸을 수 없어서 다성은 옆으로 비켜있었는데, 달려온 청년은 다성의 등을 여러 번 때렸습니다. 그는 이웃에 사는 실성한 청년이었고 다성은 그 청년을 여러 번 길에서 만났지만 오늘 같이 사람을 치는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다성이 당황한 사이에 그는 사라졌고, 조금 있다가 다성은 그의 부모를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그를 데리고 다니던 부모를 몇 번 보았는데 그때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다성은 등의 고통은 심하지 않아서 참아낼 수 있었는데, 그 순간 그 청년에 대해서 ‘참 안타깝구나, 안 되었구나.’라는 연민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 부모에 대해서만 조금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다성이 계속 길을 가다가 피곤하여 큰 나무 아래에 앉았습니다. 가방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먹으려는데 저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집을 나와 수행하는 사람이었는데 손에 밥그릇을 들고 있었습니다. 다성은 가방에서 다른 빵을 꺼내어 봉지를 뜯고 그 빵을 발우 안에 담아주고 그 수행자가 빵을 다 먹을 때를 기다렸다가 다른 우유를 꺼내 발우안에 따라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성은 다시 길을 떠났고, 그 수행자는 나무 아래에서 참선을 시작했습니다.
다성이 어쩐 일인지 길을 잃어 아주 넓은 들판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광활한 들판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이상한 모습을 한 누군가가 손에 칼을 들고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내가 내는 문제를 맞추어야한다. 기회는 세 번이다. 만약 못 맞춘다면 너의 심장을 찢고나서 너를 저 멀리 던져 버릴 것이다.”라고.
다성이 두려움에 벌벌 떨며 숨죽이고 있었고, 그 무서운 자가 문제를 냈습니다. “이 들판에서 공(空)한 것은 무엇인지 말해보라.”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다성은 며칠 전에 공(空)에 대해서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배운 것에 의하면 “... 이 녹자모 강당이 코끼리, 소, 암말들이 공(空)하고 금이나 은도 공(空)하고 여자와 남자의 모임도 공(空)하지만 비구 승가를 조건으로 하는 한 가지만은 공(空)하지 않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성은 대답했습니다. “여기 들판에는 코끼리가 공(空)합니다.”라고.
그러자 그 무서운 자가 말했습니다. “저기를 보아라, 저기에 코끼리가 있지 않느냐?”
다성이 저쪽을 보니 정말로 코끼리가 있었습니다. 이 들판에서 코끼리는 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성은 들판의 여기 저기 눈이 미치는 곳까지 다 살펴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들판에는 버스가 공합니다.”
그러자 그 무서운 자가 이번에도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저기를 보아라. 저기에 버스가 있지 않느냐?”
다성이 저쪽을 보니 정말로 버스가 있었습니다. 버스는 이 들판에서 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다성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무서운 자는 내가 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구나.’ 이제 다성에게는 단 한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다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답을 궁리했습니다.
그러자 그 무서운 자가 말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네 소원이나 말하고 심장을 내놓아라.”
다성은 평소에 수행자를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이 생애에서 수행자가 되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는 수행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와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갑자기 그 무서운 자가 칼을 떨어뜨리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성도 너무나 뜻밖이라 주위를 둘러보니 다성의 뒤에서 정말로 수행자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아까 다성이 빵과 우유를 주었던 그 집을 나와 수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무서운 자는 ‘저 수행자는 나의 정체를 알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칼을 떨어뜨리고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다성이 잃어버린 길을 찾으려고 다시 걸었습니다. 한참 쯤 가니 이번에는 숲이 나타났고, 그 숲은 우거져서 햇볕도 들지 않아 어두웠습니다. 그때 갑자기 위에서 그물이 덮쳐왔고 다성은 그 그물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그 그물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공(空)을 실현한 사람은 이 그물을 찢어버리고 나간다. 그러나 공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지만 다행으로 알아라. 내가 너희 나약한 인간들을 위해서 이번에는 그물을 약하게 만들었으니, 단 0.000000001초라도 공을 실현하면 이 그물은 찢어질 것이다.”
다성은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에게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했으면 하는 간탐이 하나도 없을까? 나에게는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하나도 없을까? 나에게는 남에게 폭력을 쓰려는 의도가 하나도 없을까? ...’ 등을 생각해보니, 다성에게는 나쁜 요소들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기의 마음속에 없어야 ‘나는 간탐이라는 것이 없으니 나는 간탐이 공하다, 나는 분노하는 마음이 없으니 나에게는 분노가 공하다, 나는 남을 해치려는 생각이 없으니 나에게는 남을 해치려는 생각이 공하다.’라고 할 수 있을텐데, 다성은 그런 것들이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조차도 공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숲속에 쳐 놓은 그물을 찢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다성은 옛날의 저 훌륭한 수행자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수행자들은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했으니, 그들에게는 ‘간탐,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이 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행자들은 더 나아가 나쁜 요소들을 제거하고 족쇄들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다성은 기본적인 다섯 가지 장애부터 많았으니 더 높은 영역에서의 공은 꿈도 꾸지 못할 아득한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점점 흘렀습니다. 다성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길을 잃고 그물에 붙잡혔으니 큰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여기서 벗어난단 말인가? 어떻게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라고 걱정하고 근심하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한번 조용히 앉았고, 이것 때문에 다성의 마음은 한번 바뀌었습니다. 즉, 지금까지 다성의 마음이 1억개가 모여있었다면 지금 조용히 앉아 생긴 이 마음 알갱이 한 개가 이전의 마음 1억개에 쌓여 1억 1개가 되었고, 앞의 1억개는 사라졌습니다. 다성의 마음이 다시 조용해졌고, 그러자 그 조용해진 마음 알갱이 1개가 조금 전의 1억 1개째의 쌓인 마음에 쌓여 1억 2개째의 마음이 되고 1억 1개째의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다성은 삼매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있는 번뇌들을 멸진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번뇌들이 없는 상태인 공을 자신에게서 실현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성은 아무리 해도 이 그물을 찢고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성은 자꾸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해보자’ 라는 한 가지 생각을 일으키고 그 한 가지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왜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인지 생각이 났습니다. 맨 처음에 어떤 청년에게서 등을 맞았고, 그리고 어떤 집을 나온 수행자에게 빵과 우유를 주었고, 그러고 나서 길을 가다가 그 청년이 내 등을 때린 일이 생각났고 뒤이어 ‘왜 나는 처음에 그 청년이 실성하여 참 안 되었구나 라는 그런 연민을 일으키지 못할까?, 왜 나는 남의 아픔을 잘 알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에 마음이 빠져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비탈로 굴러 떨어졌고, 그래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습니다.
눈을 떠서 일어나 보니 비탈의 어느 곳에 다성 자신이 넘어져 있었습니다. 몸을 추슬러 일어났는데 별로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숲 속의 그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다성은 칼을 든 무서운 자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고, 또 숲 속의 그물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비탈을 올라와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참고: 공(空)이라는 말은 두 가지 빠알리 어 원어를 옮긴 말이라고 합니다.
* ‘순냐 suñña 공(空)한’ 와 ‘아까사 ākāsa 공간, 허공’를 모두 공(空)으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①순냐 suñña: empty; void. (adj.)
②아까사 ākāsa: the sky; space. (m.)
* 이 글에서 말하는 공은 ①순냐(비어서 없음)의 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