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엇이 불타오르는가? - 불타오름 경(S35:28)을 읽으며
2. 무엇이 불타오르는가?
불을 숭상하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든 것의 근원이 불(火)이라고 믿고서 해마다 네 차례씩 불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을, 각 계절이 시작되는 달 보름에 마을의 번영과 축복을 빌며 불에 헌공하고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날에는 여러 지방에서 불을 다루는 마술사나 요술쟁이들이 찾아와서 묘기를 선보였습니다. 불을 공중에 띄워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낸다든가 불을 타고 하늘을 난다든가 불로 몸을 감싸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든가 하는 신기한 재주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요술쟁이는 일명 ‘요술부리는 불’로 음식도 만들어내고 새도 만들어내고 황금도 만들어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술사나 요술쟁이가 만들어낸 물건들을 구입하여 불을 헌공하는 제단에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얼음 수행자가 불을 숭상하는 마을에 들렀습니다. 얼음 수행자는 마을 뒷산 동굴에 자리를 잡고 경전을 읽기도 하고 수행도 하면서 ‘스스로를 독려하며’ 정진했습니다. 오전에는 마을로 내려가 음식을 얻었고 돌아와서는 호흡 관찰 수행을 하며 ‘세상에 대한 간탐과 고뇌’를 줄여나가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방에도 낮처럼 낮에도 밤처럼’ 정진하며 도달해야 할 곳을 향해 꾸준히 나아갔습니다. 아직 그는 재가시절에 친척이었던 어떤 천신이 내어 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체는 불타고 있다 합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습니까?” (불타오름 경(S35:28) 참고)
그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어느 날 불을 숭상하는 마을에 큰 행사가 열렸습니다. 전국의 마술사와 요술쟁이가 참여하는 <불 요술> 대회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어린이 노인할 것 없이 모두 모여 불 요술대회를 지켜보며 묘기가 연출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마침내 요술이 다 끝나고 사람들은 내년에도 이런 신기한 대회가 열리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늦게 노인 두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아, 우리가 늦었군. 벌써 대회가 끝났네.” 하면서 한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우리의 멋진 요술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보아줄 사람이 없네 그려” 다른 노인도 아쉬워했습니다. 두 노인은 못내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듯 마을 뒷산 동굴 근처 풍경이 좋은 곳에 가서 앉아 내일은 어느 마을에 가서 묘기를 보여줄지 의논했습니다.
그때 저기 아래에 어떤 사람들이 마을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두 노인은 눈을 반짝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 그리고 다성 일행이 불을 숭상하는 마을 입구에 막 도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저기 언덕 위에 음식을 마련해놓았으니 좀 드시고 가십시오.” 빙청 선인이 공손히 노인의 청을 받아들이자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이 앞장서서 마을 뒷산 동굴 근처로 갔습니다. 과연 음식이 한상 가득히 차려져 있었습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진귀한 음식들이 그릇마다 가득했습니다.
빙청 선인은 식사를 준비해준 노인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어떻게 자신들이 이 마을을 지나갈 줄을 알고서 미리 음식을 준비하셨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아,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려.” 하면서 붉은 구슬을 꺼내더니 주문을 외웠습니다. 곧이어 구슬을 던졌고 구슬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불길이 확 일어나더니 노인은 온데간데없고 노인이 차려놓았던 상과 음식도 사라졌습니다.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면서 다성 일행 쪽으로 번졌습니다. 다성은 놀라고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과 칠지는 침착하게 불을 끄고 다성과 일행들은 정신없이 불을 껐습니다. 그러나 불길은 잡히지 않고 더욱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이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푸른 구슬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나그네들이여, 두려워 마십시오. 만약 그대들이 이 문제를 풀면 불길을 꺼주겠습니다.” 하면서 문제를 하나 냈습니다. “나그네들이여, 일체(一切)는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체가 불타고 있습니까?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S35:28)에서 인용 및 변형)
근처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리자 얼음 수행자는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동굴 밖을 나오니 여러 사람들이 불길에 둘러싸여 있고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은 밖에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얼음 수행자가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달려가려는 데 그의 친척 천신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그대여, 저 푸른 옷을 입은 노인은 요술쟁이인데, 결국 불길에 휩싸인 사람들을 구해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지난 번 내가 내어 준 문제를 푸십시오.” 이에 얼음 수행자는 안심하고 그 자리에 앉아 친척 천신이 내어 준, 어떤 일체가 불타고 있고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지를 다시 숙고했습니다.
노인은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수행자차림의 빙청 선인과 제자들과 칠지 말고 다성과 일행을 지목하여 그대들이 한번 답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타고 있는 이 불길이 불타오르는 일체의 불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일체가 불타고 있는지 다성 일행은 답을 구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윽고 일행1이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불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불타오르는 이 불길만이 전체 불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여기서 구하는 대답은 그런 불 말고 다른 것을 말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다른 불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행2가 말했습니다. “하늘에서는 태양이 불타고 땅에서는 화산이 불타오릅니다.” 노인은 그런 불 말고 다른 불이 없는지 다시 잘 생각하여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른 일행들은 저마다 생각나는 것을 답이라고 말했는데, 그럴 때마다 노인은 그런 불 말고 다른 불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성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다성은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불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자신은 점점 두렵고 초조해졌습니다. 다성은 여기서 죽는가 보다 하면서 낙담한 채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불탑니다. 20대에 죽어야하는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불탑니다. 어머니와 권 부자 어르신과 학무동의 친구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절망으로 마음이 불탑니다. 이렇게 제 마음이 슬픔, 비탄, 고통, 회한, 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노인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은 정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면서 푸른 구슬을 불길이 타오르는 중앙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불길이 꺼져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처음으로 되돌아왔고 노인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성과 일행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저 놀랍고 어리둥절했습니다.
2-1 불타오름 경(S35:28)을 생각하며
한편, 근처에 앉아 있던 얼음 수행자는 마음이 불탄다는 이 말에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제야 기억이 나는구나. 일체 경(S35:23)과 불타오름 경(S35:28)에 나오는 가르침이 이제야 생각나는구나.’ 하면서 그 부분을 암송했습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일체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몸과 감촉,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 - 이를 일러 일체라 한다.” (S35:23)
3. “비구들이여, 일체는 불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일체가 불타오르고 있는가?
눈은 불타오르고 있다. 형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알음알이[眼識]는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은 불타오르고 있다.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은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고 있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 (S35:28)
그러고 나서 얼음 수행자는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들었던 거창붓다선원의 진경 스님 법문 동영상 내용을 떠올리며 무엇이 불타오르고 있는지를 숙고했습니다. 동영상 법문에 따르면, (동영상 법문 + 글쓴이의 생각을 섞어놓음)
“경의 가르침을 보면, ‘눈-귀-코-혀-몸-마노(意)가 불타오르고, 형색-소리-냄새-맛-감촉-법(法)이 불타오르고, 눈 등과 형색 등을 조건으로 생겨난 안식(眼識) 등이 불타오르고, 삼사화합한 감각접촉(觸)이 불타오르고, 눈 등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受)이 불타오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불타오르고 있는가요?
범부는 보고자 하는 갈망으로 눈이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보고자하는 갈망하는 업에서 생긴 눈의 감성의 물질은 : 거기에 부딪혀오는 형상에 대해, 보려고 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볼 만한 대상이 나타나면 마음을 형상으로 끌고 가서 거기에 푹 빠지게 합니다. 즉, 형상이 눈에 와서 객관적으로 보이게 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마음을 형상으로 끌고 가서 눈으로 보면서 그 형색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또는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며 형색에 대해 갈애하거나 성냄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눈은 보려고 만반의 준비가 된 채로 불타오르고 있고, 눈에 보이는 형색은 상락아정이라는 전도된 상(想)에 의해 불타오를 것 같습니다. 눈이 불타오르고 형색이 불타오르니 안식도 : 욕탐이 작용하여 불타오를 것 같습니다. 그러면 눈-형색-안식이 화합한 눈의 감각접촉도 : 지금 일어나는 이 눈-형색-안식의 화합을 진실이라 보고 불타오를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느낌도 불타오를 것 같습니다. 즐거운 느낌이라면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있는 쪽으로 불타오르고 괴로운 느낌이라면 불쾌하게 여기고 밀어내고 그렇게 묶여있는 쪽으로 불타오를 것 같습니다.”
얼음 수행자는 계속 동영상 법문의 내용을 숙고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볼 때는 눈의 기능에 의해 눈이 보는 역할을 하여 보게 되는 것인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내가 있어서, 아뜨만이라고 하는 내가 있어서 이 내가 보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못 알게 되니 탐욕과 성냄과 이리석음으로 일체가 불타고 있습니다. 즉, 눈이 불타고 형색이 불타고 안식이 불타고 눈의 감각접촉이 불타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
얼음 수행자가 이렇게 가르침을 떠올리며 숙고하고 있을 때 빙청 선인과 제자들, 그리고 칠지는 다성 일행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빙청 선인은 참 잘 해주셨다며 한 가지 일을 겪고 한 가지 지혜를 얻으셨으니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는 여정에서 오늘 같은 이런 고난을 잘 견뎌내 주어서 고맙다며 다성 일행을 위로했습니다. 빙청 선인과 나머지 사람들은 잠시 자리에 앉아 쉬었습니다. 그때 칠지가 다성 일행에게 호흡 수행의 기초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 호흡 수행의 길은, //사람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를 사라지게하기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괴로움이 없는 경지를 실현하기 위한 바른 경로(經路)// 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호흡 수행의 기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에 나오는 내용인데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먼저 조용한 처소에 가서 앉습니다.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하여 자세를 바르게 합니다. (현대인들은 결가부좌를 하기 어려우니까 책상다리를 해도 되고 자신에게 맞는 자세를 하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콧구멍 주위를 지향하고(콧구멍 주위에 마음을 두고), 사띠(염(念), sati, 마음챙김, 알아차림)를 준비합니다. 그는 오직 사띠 하면서 들이쉬고, 오직 사띠 하면서 내쉽니다.
즉 ‘①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압니다. ②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압니다. ...‘고 이렇게 호흡 수행을 연습합니다.” (근본경전연구회에서 번역한 (D22)에서 인용 및 변형)
2-2. 어떻게 불타오름을 끄는가?
칠지의 지도를 받으며 다성 일행은 호흡 관찰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다성과 사람들은 방금 배운 호흡 수행의 기초를 응용하면서 길을 걸었습니다. 마음 챙기며 알아차리면서 감관의 문을 지키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들판을 지나니 큰 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는 큰 바위가 놓여 있어 사람들이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위에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나그네여, 일체가 불타오를 때 그대는 어떻게 끄는가?” 서쪽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나는 문제들은 이렇게 알쏭달쏭했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과 칠지는 물러나 있었습니다. 다성 일행에게 자신들의 힘으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고 해서였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물로 불을 끄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런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혜를 사용하여 답을 하라는 문제였습니다. 다성과 일행은 무엇이 불타는지는 아주 조금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내 마음이 탐욕으로 물들어 더렵혀지고 성냄으로 물들어 더렵혀지고 어리석음으로 물들어 더럽혀질 때, 내 눈도 내 귀도 내 코도 내 혀도 내 몸도 내 마음도 불타오른다고 조금 이해했습니다. 내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불타면 저기 형상도 불타고 소리도 냄새도 맛도 감촉도 생각한 것들도 모두 불탄다고 조금 이해했습니다. 나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정당한 방법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여 얻지 않고, 나쁜 방법을 사용하고 남의 것까지 빼앗아서 얻는다면 그런 것도 불타오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이런 불타는 데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다성과 일행들은 계속 생각했습니다.
30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다성 일행은 아직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1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못 풀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바위 뒤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땡!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문제를 못 풀었으니 각자 자신에게 유익한 일 하나를 하십시오. 그러면 길이 터일 겁니다.” 어떤 유익한 일을 해야 하는가? 다성 일행이 생각에 잠기자 빙청 선인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자애(慈愛)의 마음을 5분 동안 닦읍시다.” 그래서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제자 한 사람이 다성 일행에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행복하기를! 안락하기를! 태평하기를!’ 하고 마음을 일으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성도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안락하기를! 태평하기를!’ 하고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런 마음을 5분 동안 일으키고 그쪽으로 기울이고 향하게 했습니다. 다성 일행들도 점점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5분이 지나자 바위가 사라지고 큰 길이 나왔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한편, 얼음 수행자는 처음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동영상 법문을 떠올리며 숙고했습니다. “그럼, 볼 때는 단지 눈의 기능과 역할에 의해서 보고 알게 되는 것이고, 고정불변하는 내가 보는 것이 아닌 줄 아는 현명한 제자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합니까? 그것은 바로 경에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렇게 공부하고 수행하면 되겠습니다.“
얼음 수행자는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바로 염오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일체가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서 (여실지견하여) 염오의 지혜를 계발해야 하는구나. 불타오름에 대한 법문 경(S35: 235)에서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불타오름에 대한 법문인가?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불꽃을 튀기고 빛을 내는 쇠꼬챙이로 차라리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파괴할지언정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색들에 대해 [세세한] 부분상을 통해서 표상(전체상)을 취해서는 안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의 알음알이가 표상(전체상)의 달콤함이나 [세세한] 부분상의 달콤함에 빠진 채로 유지되다가 그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면 그에게는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즉 그는 두 가지 태어날 곳 가운데 하나로 갈 것이니,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위험함을 보기 때문에 나는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여 염오해야하는구나.’
얼음 수행자는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염오하면 탐욕이 빛바래서 이탐(離貪)하게 되는구나. 이탐하면 그것 때문에 해탈하게 되는구나. 그래서 먼저 바르게 알고 보아 (여실지견-일체는 불타오르고 있다) - 염오하고 – 이탐하여 – 해탈하는구나. 그러면 다음에 아라한의 경지를 터득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얼음 수행자는 불타오름 경(S35:28)을 여러 번 외우며 그 뜻을 숙고했습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경행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나쁜 마법사가 마법을 부려 무서운 코끼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코끼리는 얼음 수행자에게 다가가 사람 말을 했습니다. “그대는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대는 나쁜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대는 사악한 마음을 가진 거짓 수행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얼음 수행자는 마음챙김을 놓쳤습니다. 내면에서 불쾌함과 성냄과 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재빨리 불타오름 경(S35:28)의 내용을 수관(隨觀, 아누빠사나anupassanā 거듭관찰. 수관)했습니다.
“일체는 불타오르고 있다. ... 귀는 불타오르고 있다. 소리는 불타오르고 있다. 귀의 알음알이는 불타오르고 있다. 귀의 감각접촉은 불타오르고 있다. 귀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이 불타오르고 있다.
그러면 무엇에 의해서 불타오르고 있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
그리고 진경 스님의 동영상 법문의 내용도 떠올리며 수관했습니다. “듣고자하는 갈망하는 업에서 생긴 귀의 감성의 물질은 : 거기에 부딪혀오는 소리에 대해, 들으려고 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을 만한 대상이 나타나면 마음을 소리로 끌고 가서 거기에 푹 빠지게 합니다. 즉, 소리가 귀에 와서 객관적으로 들리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마음을 소리로 끌고 가서 귀로 들으면서 그 소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또는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며 소리에 대해 갈애하거나 성냄을 일으킵니다. ...”
얼음 수행자가 이렇게 가르침과 해설을 수관(隨觀)하자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러자 코끼리는 온데간데없고 나쁜 마법사도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