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법(法)에 대해 생각하며

풀빛 너머 2019. 6. 27. 07:23

어느 날 학동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박학다식(博學多識)이 무슨 뜻이에요?” 김향원이 대답했습니다. “학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다는 뜻이란다. 며칠 전에 들었는데, ‘많이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여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니, 이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중의 하나)(숫타니파타)이라고 하더구나.”

 

학동이 다시 물었습니다. “많이 배운다는 것이 어느 만큼인가요?” 김향원이 말했습니다. “어느 만큼인지는 나도 모른단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이렇게 생각해놓자. 한자를 1개 배우면 1개 알고, 2개를 배우면 2개를 알고, 세 개를 배우면 3개를 알고, 열 개를 배우면 10개를 알고, 오십 개를 배우면 50개를 알고, 삼백 개를 배우면 300개를 알고, 구백 개를 배우면 900개를 알고, 천팔백 개를 배우면 1800개를 안다고. 그래서 각자 배운 만큼 나는 구백 자를 안다, 나는 천팔백 자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다시 학동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연히 노자라는 책을 보니까 명심보감에서 배우는 것과는 내용이 무척 달라요. 그래서 아주 혼란스러워요.” 김향원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나도 그동안 죽 그랬단다. 도저히 노자라는 책이 이해가 안 되었단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사이버서원에서 노자에 대한 해설을 조금 들었단다. 그분 교수님들에 의하면, 노자는 처음에 구전 전통이었고, 상당히 압축되어 있고. 그래서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읽혀졌고, 노자는 아직도 판본이 정리되고 있는 중이라고 해. 정치를 비판하고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자의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 보통인데, 꼭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한가 봐. 어떤 판본을 가지고 어떤 주석서를 가지고 읽는가에 따라, 철저한 정치적인 관점에서 읽기도 하고, 반정치적인 관점으로 읽기도 하고, 유가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려고 순화해서 읽는 방식 등이 있다고 해. 그러나 비록 우리에게는 잘 이해 안 되더라도 당시 그 부류의 사람에게는 잘 전달되었을 것이라고도 해.”

 

김향원이 계속 말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니, ‘노자에는 인명이나 지명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시대를 짐작할 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누가 일부러 이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 한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노자는 반언(反言)이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 한 구절에, 絶聖棄智 民利百倍(절성기지 민리백배-성인을 끊어버리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복리가 백배나 될 것이다.)고 나온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 그러면 인류가 멸망할 것이다. 노자의 반언에 해당하는 대항 이데올로기가 유가이고 공자이다. 공자는 곧이곧대로 이야기하고 노자는 비틀어서 말한다. 당시 혼란한 시대에 일부 권력자들이, 사람들이 인을 가장해서 말하더라. 가장하는 자들에 의해서 仁義인의가 없어지고 말 것이다. 노자는 유자를 기준에 두고 반언으로 말한다. 유자가 없으면 노자라는 책이 나올 이유가 없다. 당시 혼란한 시대에 권력자들이 인이나 덕, 예를 가장하니까 그런 자들을 향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래서 노자는 반언(反言)으로 말했다. ...’고 하는구나.”

  

일요일 오전에 김향원은 불교수행반에 갔습니다. 법문하시던 스님께서 중간에 오늘은 법()에 대해 각자 배웠거나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보시라고 하셨습니다. 김향원도 과연 법이란 무엇인지 요 근래에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보면 법에 대해 많은 내용이 나왔는데 김향원은 그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양 대리 회사 동료1이 말했습니다. “제가 배우기로,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탐욕이 일어날 때 나에게 탐욕이 일어났다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예를 들어주었습니다.

 

김향원은 생각했습니다. ‘, 법이란 그런 것이구나. 나에게 탐욕이 일어나면 그 일어난 것을 지금 알 수 있는 것이로구나. 성냄도 마찬가지이겠구나. 그럼 들뜸도, 후회도, 인색도, 자만도 마음에서 일어나면 바로 알 수 있겠구나. 이런 것이 법이구나.’ 그러면서 김향원은 법의 뜻 하나를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한자 한 글자를 배우면 1개를 배웠다고 말하듯이.

 

양 대리 회사 동료2가 말했습니다. “제가 배우기로,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으니, ...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으니, ... 마노로 인식되는 법들이 있으니, ...> 라고 하셨는데, 마노로 인식되는 법들이 바로 법입니다.”

 

김향원은 생각했습니다. ‘, 법이란 마노로 인식되는 것들이로구나. 마음으로 분별하여 안 것들이 법이로구나. 그러면 이런 것들도 법이 되겠구나. 지금 눈으로 보고 안 것을 눈을 감고 떠올려 알면 그것을 법이라고, 귀로 듣고 안 것을 마음에서 떠올려 알면 그것도 법이라고, 코로 냄새 맡고 안 것을 마음에서 떠올려 알면 그것도 법이라고, 혀로 맛보아 안 것을 마음에서 떠올려 알면 그것도 법이라고, 몸으로 감촉하여 안 것을 마음에서 떠올려 알면 그것도 법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해서 김향원은 법을 이제 2 종류를 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양 대리가 동료2에게 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들려주신 말씀 중에 혹시라도 우리가 생략된 말씀을 보충하여 이해할 그런 내용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누가 서울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나는 오늘 오전 10시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려 합니다.’ 하는 말 등이 생략되어 있을 수 있듯이,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으니라는 경문에 혹시 생략된 내용들이 있을까요?” 김향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에 생략된 내용이라니!’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지도 스님께서 그런 내용은 너무 어려우니 넘어가자고 하셨습니다.

 

양 대리 동료3이 말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부처님께서 나는 법을 설하리라.> 하시면서 설한 법이 법입니다.”

김향원이 생각했습니다. ‘, 그렇구나. 법이란 부처님께서 나는 법을 설하리라 하시면서 법을 설하신 것이 법이로구나.’ 이렇게 하여 김향원은 법에 대해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중학교 일학년을 열심히 공부하여 마치면 중학교 1학년의 배움이 있듯이 김향원은 이제 법에 대해 3가지 용례가 있다는 것을 들었고, 이 세 가지에서 그 뜻을 자꾸 알아나가면 되었습니다. 만약 열심히 공부한다면 오늘보다는 일년 뒤가, 1년 뒤보다는 5년 뒤가 조금 더 법에 대해 배우고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나는 오늘 법에 대해 완전히 이해해야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무리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양 대리 동료 4가 말했습니다. “법이란 <심의식>의 고유대상입니다.”

그러자 양 대리 동료 5가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하시는지요? 만약 누가 사람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여기는 사람이고 저기는 동물입니다. 했어요.’ 그럼 다음 질문이 또 이어질 듯합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마음먹으며 살아갑니까?’ 하고. 이제 제가 이렇게 질문드리면 어떻게 대답하시는지요? ‘말씀하신 심의식의 고유 대상인 법은 어떻게 분류하여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마치 사람을 10, 20, 30, ... 70, 80대 등으로 분류하여 이해하기도 하고, 계를 지키는가 아닌가로 구분할 수도 있고, 성자인가 범부인가로 구별할 수도 있듯이.”

 

양 대리 동료 4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심의식의 고유대상이 법이라는 표현에서 매우 중요한 많은 의미들을 풀어내는 데, 동료 5는 내가 풀어내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구나. 그 대신 그는 법의 종류와 각각의 법 하나하나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는구나.’ 이때 지도 스님께서 오늘은 시간이 너무 흘렀으니 이만 수업을 마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양 대리와 회사 동료들, 김향원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김향원은 오늘 몇 가지를 한번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배우고 익힌 만큼 안다, 그러니 당장 한꺼번에 다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둘째, 옛날 한문 불교 서적에는 노자식의 어법에 영향을 받아 반언(反言)으로 말한 책들도 있겠구나.

셋째, 법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경전에서 세 가지를 배웠으니 법을 이해하려면 해당 경문을 자꾸

        외우고 그 말씀의 뜻을 알려고 자꾸 생각하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