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마음(심, 의, 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9. 어느 날 양 대리가 말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음은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토론을 하면 어떨까요?” 이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각자 발표해야 할 과제가 정해졌는데 김향원에게는 ‘일상에서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김향원은 집에 돌아가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서 일상에서 어떻게 마음을 이해해야 할지를 생각해나갔습니다. 먼저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그 글들을 여러 번 읽고 그 뜻을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일상에서 어떻게 알아지는지 이리저리 예를 찾아보았습니다.
“... 예를 들면 원숭이가 숲에서 돌아다니면서 이 나뭇가지를 잡았다가는 놓아버리고 다른 나뭇가지를 잡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낮이건 밤이건 생길 때 다르고 소멸할 때 다르다. ...” (S12:61)
“...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 (A1:5:8)
“... 이 마음은 빛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에 의해 오염되었다.” (A1:5:9)
“이 마음은 빛난다.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다.” (A1:5:10)
* 김향원이 생각해 낸 예들
예1 : 사람1이 눈으로 저기 앞의 물체를 보았더니 아주 험상궂은 괴물이었습니다(안식). 그러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두려움이 밀려오고 공포가 일어났습니다.(심). 그래서 ‘어서 피하자, 달아나자, 어디로 달아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의 또는 의업). 그래서 막 달아났습니다. 괴물 발자국 소리가 계속 났고(이식)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습니다.(심)
예2 : 한참 달아나고 있는데 그때 누가 “나그네여, 안심하시라, 내가 왔소이다.” 하는 소리가 나서(이식) 돌아보니 홍길동이 도술을 부려 괴물을 물리치고 있었습니다.(안식) 그러자 사람1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공포에서 벗어나서 안정되었습니다.(심) 그런데 어느 순간 홍길동은 간데없고 사람1만 혼자 남았습니다. ‘아,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네. 이제 나는 어디로 갈까? 그래, 샘을 찾아 목을 축이자’ 하고(의) 길을 떠났습니다.
예3 : 길을 가는데 아주 향기 좋은 빵을 굽는 냄새가 났습니다.(비식)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기쁨이 생겨났습니다.(심) ‘빵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어쩌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무엇인가 손에 닿았습니다.(촉식) 갑자기 멈칫 하다가(심) ‘혹시 돈이 아닐까?’하는 기대와 함께 ‘돈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으로(의) 꺼내보니 돈이었습니다. 그는 좋았고 기뻤습니다.(심)
예4 : 빵 가게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병고로 시름시름 한 듯한 주인이 무료로 준다며 음료수를 한잔 건넸습니다. 맛이 매우 향긋했습니다.(설식) 그는 맛을 즐기며 좋아했습니다.(심) 그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의식) 그러자 가게 주인이 동화속의 마녀나 마법사 같게 보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심) 그러자 별의별 이상한 생각이 막 떠올랐습니다.(의식) 그리고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예5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사람1이 정신을 차려보니 빵 가게에는 손님들이 드나들고 있었습니다.(안식) 그런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심) ‘혹시 내가 들을 수 없게 되었는가?’ ‘이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지?’ 하는 걱정 근심이 막 일어났습니다.(의) 그러자 사람1은 점점 우울해져갔고, 슬픔이 일어났고 절망했습니다.(심)
예6 : 그때 갑자기 ‘무상, 고, 무아’라는 가르침이 생각났습니다.(의식) 그러자 지혜가 조금씩 일어나서 그는 지혜가 있는 마음이 되어갔습니다.(심) 그래서 그는 종이를 꺼내 평소에 외워 놓았던 경전의 말씀을 하나 적어 주인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저를 가엾게 여겨 제 귀를 낫게 해 주십시오.” 병고로 시름시름한 듯한 주인이 글을 다 읽고 나서 사람1의 귀를 만졌습니다. 주인의 손이 귀에 닿자 무척 이상한 감촉이 일어났습니다.(촉식) 사람1은 깜짝 놀라 당황했습니다.(심) 조금 있으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의 귀가 나았습니다. 주인은 사람1이 건네 준 경의 말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나의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 (S22;1)
이제 김향원은 동네 학생이 앞에 앉아 있다고 가정하면서 다시 심의식을 연습했습니다.
그 동안 잘 있었니? 이제 여름이 시작되겠구나. 학교 진도 따라가랴 학원 가랴 힘들지는 않았니?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만약 내가 갑자기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래?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아마 뜻밖의 물음이라 당황할 거야. 늘 말해왔고 당연히 안다고 여겼던 마음을 직접 말해보려 하면 대부분 막막할 거야. 여기 이 몸은 ‘이것은 머리이고 이것은 팔이고 이것은 다리다.’고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할 수 있는데 마음은 볼 수도 없고 가리킬 수도 없으니 어떻게 대답할지 ... 나도 그렇단다. 왜냐하면 마음은 지혜로써 알고 보아 말할 수 있는데 나는 그런 지혜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렇지만 나는 며칠 동안 여기저기 검색하고 생각하여, 지금은 조금 말할 수 있게 되었단다. 자, 눈을 감아보자. 그러면 아무 것도 안 보여. 자, 이제 눈을 떠봐! 갑자기 산과 나무가 보여. 그래, 우리는 ‘바로 이것이 마음이구나’ 하고 받아들이자. 뒤에서 갑자기 누가 ‘철수야’하고 불렀어. 그러자 나는 보는 것에서 떠나 소리를 알게 되었어. 그래, 우리는 ‘바로 이것이 마음이구나.’ 하고 받아들이자. ...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세종대왕이 떠올랐어.’ 그래, 이렇게 무엇이 떠오를 때에도 ‘마음이 일어났구나’ 하고 받아들이자. 그래, 이렇게 마음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떠오를 때’ ‘이것이 마음이구나’ 하고 말할 수 있단다. 이때의 마음은 빠알리 어로 ‘윈냐냐(識)’라고 해.
그런데 내가 무엇을 보았을 때 갑자기 화가 나는 경우가 있어. 평소 내가 싫어하거나 미워했던 것을 보았을 때 화가 나기 쉬워. 이런 경우는 마음을 ‘찟따(心)’라고 많이 부르는가 봐. 어려운 말로 하면 마음이 손님으로 온 탐욕이나 성냄이나 어리석음으로 더러움에 물들 때 이때는 ‘찟따(心)’라고 부르는가 봐. 보통 기쁘고 행복하거나 슬프고 괴로울 때는 모두 ‘찟따(心)’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같아. 예를 들어, ‘아, 마음이 괴로워 죽겠어.’ 할 때는 찟따(心)를 말해.
다음으로 그래서 나는 지금 본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까? ‘이러면 안 돼. 이러지 마.’ ... ‘화를 떨쳐버리자, 얼른 떨쳐버리자.’ ... ‘... 화는 나에게 해롭고 그에게도 해롭고 우리 모두에게 해로워’ 하면서 화를 극복하려고 노력할 거야. 이렇게 어떤 것에 대해 사유하고 결심할 때는 마음을 ‘마노(意)’라고 부르는 것 같아.
나는 이런 비유를 인터넷에서 보았어. “보통은 김철수라고 하는 그는, 집에서는 철수 아빠, 회사에서는 김대리라고 이름을 다르게 부릅니다. 우리 마음도 그 역할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불러주어야 할 듯 합니다. 어떤 때는 심이라고 어떤 떼에는 의라고 어떤 때에는 식이라고.
그래, 어쩌면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일 거야. 그런데 막상 마음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선 듯 대답해 낼 수가 없는 것 같아. 왜냐하면 마음이 무엇인지는 지혜에 의해서 알고 보아야 할테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일상에서 눈, 귀, 코, 혀, 몸, 마노로 대상을 인식할 때는 ‘이것이 마음(윈냐나, 識)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내면에서 탐욕이 있거나 성냄이 있거나 어리석음이 있을 때에는 ‘이것이 마음(찟따, 心)이구나’하고 받아들이고, 뜻을 일으키고 사유하고 결심할 때에는 ‘이것이 마음(마노, 意)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에 대해 조금 말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