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 두려워하지 말라
12-1 빙청 선인 일행이 마을 회관 근처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제관이 부인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부인 곁에는 여행객이 서 있었습니다. 제관이 말했습니다. “동민(洞民) 여러분. 오늘 저와 아내는 합의 이혼을 했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도록 많이 도와주셨는데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여기 이분은 제 처남입니다.” 하면서 여행객을 가리켰습니다.
전후 사정은 이랬습니다. 여행객이 자형인 제관을 찾아갔더니 제관의 아내가 된 여동생이 오빠에게 더 이상 제관의 아내로 살 수 없다고 호소를 했습니다. 이유는 제관의 아내로 살자니 금기(禁忌)도 많고 행동의 제약도 너무 많아서, 또 자신은 도시에서 멋지게 살고 싶어서 라고 했습니다. 여행객이 여동생을 가엾이 여겨 이런 이야기를 자형인 제관에게 했더니, 제관이 순순히 동의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관은 젊은 여자가 이런 외진 곳에서 쓸쓸히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평소에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놓아주었습니다.
아내는 제관과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용서를 빌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아내 자신이 그 제자에게 함께 도망하자고 꼬드겼는데 제자는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며 거절했다고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아내의 이 말에 제관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끼는 제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고,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이 다 무너졌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내 때문이라는 분노도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관 자신도 제자에게 몹쓸 짓을 했기에 더 이상 아내를 탓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관과 아내는 서로에게 진 빛은 모두 없던 일로 하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제관에게 언젠가 그 제자분을 만나면 ‘제가 너무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세요.’ 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관은 이런 사실을 알리고 이제 자신은 제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자를 위험에 빠뜨렸고, 마을사람들의 기대와 은혜를 저버렸으니 자신은 더 이상 제관의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제자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겠다고 했습니다. 말을 끝내고 제관이 빙청 선인 쪽으로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수행자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제자를 찾으러 가는 중입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조금 전까지 제관이었던 그를 따라 숲으로 갔습니다.
한편, 그 제자는 솔개가 날아간 방향을 따라 달렸습니다. 솔개가 숲속으로 들어가 어느 초가집 마당에 책을 떨어뜨렸습니다. 제자가 숨을 헐떡이며 대문 앞에서 주인을 불렀습니다. “주인 계십니까?” 방안에서 웬 동자(董子)가 나오더니,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데, 할아버지는 출타 중이시고 언제 돌아 오실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제자는 동자에게 사연을 들려주고 솔개가 떨어뜨린 책을 좀 주워달라고 했습니다. 동자는 신기한 일도 다 있다며 책을 집어서 제자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는 감사의 표시로 동자에게 방울을 주었습니다. 제자가 밤에 공부할 때 잠이 오면 흔들어서 잠을 떨쳐버리곤 했던 방울이었습니다.
제자가 막 돌아서는데 웬 노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동자가 할아버지! 하면서 달려 나왔습니다. 노인은 제자를 집안에 들이고 동자에게 밥상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제자가 음식을 대접받고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노인은 여행객이 준 책을 함께 보자고 했습니다. 제자가 그 페이지를 찾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무명(無明)이 머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과 마음챙김(=알아차림, 사띠sati)과 삼매와 더불어, 의욕과 정진을 갖춘 지혜가 머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숫~ p.476)
갑자기 마음이 맑고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제자는 감동하며 기뻐했습니다. 비로소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노루 피를 마셔서 도(道)를 완성한다는 그런 이치는 없었습니다. 악한 행위를 버리고 차례차례로 선한 법을 배워 익혀나가는 것이 도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잘못되게 하는 어리석은 생각들과 관념이 머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들을 없애서 밝음(明명)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는 이제 스승인 제관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주면 되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마당에서 동자가 방울을 흔들며 놀고 있었습니다. 노인이 동자에게 무슨 방울이냐고 물으니 저분이 주셨다고 했습니다. 노인이 방울을 살펴보더니 여기에 글귀가 쓰여 있다며 제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不放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불방일, 불방일 – 방일하지 말라, 방일하지 말라.’ 하면서 제자는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노인과 동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제자는 숲을 돌아보았습니다. 어제하고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가시덤불이었던 숲이 보기 좋게 잘 손질되고 가꾸어진 것 같았습니다. 나무들하며 꽃들하며 동물들하며 모두 생기가 넘쳐났습니다. 동물들은 겁 없이 제자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노루도 다가왔습니다. 제자는 노루에게 어제 너를 죽이려고 한 것을 뉘우친다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잡히지 말고 잘 살라고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숲을 빠져나오니 제관과 사람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제자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승님. 강녕하셨습니까? 미련한 제자는 임무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제관이 말했습니다. “아니다, 아니다, 용서구할 사람은 바로 나다. 그동안 나의 훌륭했던 제자여. 이제부터 그대는 더 이상 나의 제자가 아닙니다. 나는 그대를 가르칠 자격을 잃었습니다.”
제자가 당황하고 황송하여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제관은 그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제자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제관이 아내도 함께 용서를 빈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제자는 어찌 제가 스승님과 사모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하며, 두 분의 참회를 삼가 받아들이오니, 두 분께서는 지금부터는 근심 걱정 없으시며 평안하시기를 바라옵고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린다고 했습니다.
제자는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시고 가르쳐주신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청안하시옵소서. 스승님, 앞으로 저는 세상에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결혼하면 아내와 자식을 잘 부양하고 돌보겠습니다. 부모님도 잘 모시겠습니다. 친척, 친구들에게도 잘 하겠습니다. 그리고 탐욕, 성냄, 이리석음을 버린 청정한 수행자분을 뵙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올리겠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마음의 더러움을 버리기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를 공경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속여 재물을 축적하면서 온갖 세속적인 즐거움을 탐하는 가짜 수행자는 경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