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급류에 휩쓸려 갈 때
6. 햇볕이 내리쬐던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갑자기 비가 내렸습니다. 빙청 선인 일행은 큰 나무를 발견하고 그 아래에서 비를 피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빙청 선인이 악마가 다가 오고 있으니 모두 마음 챙기며 감관의 문을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으로 변한 악마가 공중으로 지팡이를 던지자 저 앞의 산이 바다로 변했습니다. 바다가 점점 넓어지면서 빙청 선인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빙청 선인 일행이 비를 피하던 나무에서 나무 요정이 밖으로 나와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아주 큰 몸집을 한 아수라가 나타났습니다. “아수라는 바다를 볼 때마다 기뻐한다네. 큰 바다에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 만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네. 만약 그대가 이 중에서 세 가지만 말할 수 있다면 그대뿐만 아니라 여기서 비를 피하던 이 사람들까지도 구해주겠네.” ((A8:19)에서 인용 및 변형, 이하도 마찬가지임)
나무 요정은 옛날 어떤 일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날레루 님바 나무에 살 때였습니다. 서쪽 지방에 계신다는 그 위대한 영웅과 아수라 왕이 문답을 했는데, 바로 자신이 살던 그 나무 아래에서였습니다. 그날 그 영웅은 아수라 왕에게 아수라들이 큰 바다를 기뻐하는 이유를 물으셨고 아수라왕이 여덟 가지로 대답했습니다.
그날의 문답을 기억하여 나무 요정이 말했습니다. “큰 바다는 죽은 시체와 함께 머물지 않습니다. 큰 바다에 죽은 시체가 있으면 즉시 기슭으로 실어가서 땅으로 밀어내버립니다.” (인위적으로 조작한 경우는 제외함)
나무 요정이 계속 말했습니다. “아무리 큰 강일지라도 큰 바다에 이르면 이전의 이름과 성(姓)을 버리고 ‘큰 바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또 말했습니다. “큰 바다는 하나의 맛인 ‘짠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수라는 이 대답에 크게 만족하여 나무 요정과 빙청 선인 일행을 다른 곳에 옮겨주었습니다.
나무 요정과 아수라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빙청 선인 앨행은 감사의 표시로 앞마을에서 얻은 공책을 한 권씩 주었습니다. 그 공책에는 서쪽에 계신다는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어제밤 칠지가 그 공책의 내용을 빙청 선인과 제자들, 그리고 다성 일행 앞에서 대표로 읽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다성은 특히 “세상 살이 많은 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행복(중의 하나)입니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숫~ p.194)
다시 빙청 선인 일행이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창을 든 어떤 사나이가 코끼리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그대들을 도와 줄 이가 어디에도 없구나.” 하면서 창을 공중으로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났고 곧 내가 만들어지고 강이 만들어졌습니다. 사나이가 말했습니다. “온 사방이 폭류로 넘쳐흐르도다. 그대들에게는 의지할 섬(島) 하나 없도다. 어떻게 이 폭류 건너려는가?”
다성은 생각했습니다. 홍수로 넘쳐흐르는 저 폭류를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하늘을 날 수도 없고 의지할 섬도 없으니 어떻게 이 거센 흐름을 거슬러 건너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다성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는 듯하여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저쪽 언덕에 건너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성은 답을 구하려고 골몰하여 빙청 선인 일행이 절박하게 부르는 소리도 못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성이 급류에 휩쓸려갔습니다. 물속에 가라앉기도 하고 물위로 떠오르기도 하면서 점점 아래로 떠내려갔습니다. 그때 마지막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성님, 어제 밤에 읽은 공책의 내용을 생각해 내십시오.”
물에 잠기고 떠오르고 하면서 물을 들이마셨습니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고 정신이 희미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인가 하고 권 부자와 자영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전에 칠지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칠지가 인터넷에서 읽은 어떤 분의 경험담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가 일곱 살 때 얼음이 두껍게 얼은 강위를 걷고 있다가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며 얼음 아래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내려가면서 저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찰나간 저는 많은 전생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드릴 수 없는 현상들이 제 앞에 펼쳐져 있고 공포감에 떨었으며, 왜 나에게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 과거의 기억의 영상에서 모든 것이 전지적 시점으로 보이며, 상대방의 심리상태까지 알 수 있었고, 그 현장에 제 자신조차도 있었으니, ...
그러한 공포감이 섞인 위기감에서 살아야겠다는 필사의 신념으로 두꺼운 얼음을 손가락으로 뚫으니 얼음이 쩍하고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얼음 사이를 온 힘을 다해 잡고 겨우 나왔습니다. 이것은 제가 겨울에 외가집에 놀러갔을 때의 경험인데, 그날 옷 다 벗고 문 밖에서 한 시간 정도 손들고 벌을 받았지만, 그 경험에 사로잡혀 별로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 (○○○○○○○의 □□ 법우님의 어떤 댓글에서)
칠지가 들려준 어떤 분의 경험담이 생각나자 다성도 이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제 칠지가 읽었던 공책의 내용도 생각났습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모으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류를 건넜노라. 내가 멈출 때 나는 가라앉아 버렸다. 내가 [모으려고] 아등바등할 때 나는 휩쓸려나가 버렸다. 이처럼 나는 멈추지 않고 [모으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류를 건넜노라.” ((S1:1)에서 인용 및 변형)
그러나 다성은 이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지혜로는 이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해한 만큼만 소리 내어 외쳤습니다. “나는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채우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으면서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의) 폭류를 건너갈 것입니다. ...” 이 말을 듣고 사나이가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누가 들려준 것일까? 이 말에는 성자의 말씀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 하면서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폭우가 멈추었고 홍수도 사라지고 폭류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다성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다성은 빙청 선인과 제자들, 칠지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습니다. 빙청 선인과 제자들은 안도했고, 칠지와 사람들은 다성의 손을 잡기도 하고 등을 두드리기도 하고 얼싸 안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