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사띠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면
(1시간 8분 29초 ~ 1시간 20분 00초)
5. 사띠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봅니다.
마지막 문지지인 사띠, 이 역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좀 마저 하고 가야겠어요. 어쨌든 “모르는 자들은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한다.” 라고 선택을 합니다. 그럼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런 수행 과정에서 사마타와 위빳사나도 들어오지만, 사실 이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주된 통행자는 누구겠어요? 주된 통행자는, 문이 내입처이니까, 이리 들고 나는 주 통행자들은 육외입처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한 쌍의 전령인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열반이라는 먼 곳의 소식을 가져오는 아주 특별한 상황이잖아요. 수행의 완성이라고 하는 특별한 상황의 사마타-위빳사나를 언급했지만, 사실은 여섯 개의 문이 육내입처라는 말은 이 문으로 보통 드나드는 주민들은 육외입처라는 말입니다. (바로) 색성향미촉법(입니다).
그래서 사띠는, 만약에 이것이 들고 나는 자가 사마타와 위빳사나뿐이라면, 사띠가 있을 필요가 없어요. 사마타 위빳사나가 들어오는 것을 제어할 일이 없지요. 그런데 사띠가 문지기가 되어 들어오지 못할 자와 들어올 자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은 육외입처라는 대상, 즉 보이는 것 들리는 것 ... 등의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 보릿단 경이 말하는 식으로 색성향미촉법에 두들겨 맞는 삶을 어떻게 풀어야 하니까, 사띠가 문지기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럴 때 저는 한 가지만 사띠에 대해서 명확히 하고 싶어요. 지금 경이 표현하기를 ‘모르는 자는 제재하고 아는 자는 들어오게 한다.’ 고 했어요. 그러면 육외입처를 직접적으로 보아서 ‘아, 지금 어떤 것이 보인다, 보이는 이것을 감각하자. 그런데 이 보이는 대상이 감각해야 하는 대상일까? 감각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 라고 대상을 직접 보는 일은 누가 하나요? 그것이 외입처의 몫일까요? 사띠의 몫일까요? 이것을 이 자리에서 주목하고 가야 해요.
경전은 그냥 이것을 하나로 묶어서 사띠가 있어서 이런 단속하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띠가 색성향미촉법이라는 대상을 직접 보아서, 사띠가 ‘내가 보는 대상이 나쁘니까 들어오지 마, 내가 본 대상이 좋으니까 들어와’ 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은 우리가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조금 가지고 (헤아려본다면) 그것이 아니라고 봐야 할 거예요.
이렇게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여섯 개의 문이 있어요. 이 여섯 가지 문에 대해 문지기는 두 가지 개념이 될 수 있어요. 하나는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으로써, 보통 드라마에서 보는 문인데, 하루 종일 열려 있는 문 앞에 문지기가 서서 확인해서 들여보내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이 문은 육내입처이니까 여섯 개가 있어요. 그런데 문지기는 한 명입니다. 한 명의 문지기가 여섯 개의 문을 동시에 다 지키는 그 일을 할 수 있나요? 한 명의 문지기가 여섯 개의 문을 동시에 지키면서 거기에서 그 일(확인하여 들여보내는)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사띠가 하는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여기서 사띠는 오직 문인 육내입처, 몸과 함께 하는 마음, 마음의 상태라는 이것만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념처 수행에서 이렇게 나오는 것이지요. 아-따-삐- 삼빠자-노- 사띠마-. 그래서 ‘사띠하자, 마음의 현재를 발견하자.’ 합니다. 그러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해서 - 그름은 버리고 옳음으로 돌아가자. 옳음은 유지 향상하자.’ 이렇게 사념처가 말하고 있잖아요.
사띠가 하는 일은 여섯 개의 문 모두가 열려있는 상태에서 어느 문으로 누가 들어오는지를 다 보고, 열어줄까 말까 ∙ 들여보낼까 말까, 이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지기 사띠는 일단 여섯 개의 문중에서 하나의 문에만 눈을 뜬 거예요. 우리 이것을 눈을 뜬 것으로의 사띠(라고 하지요). 이것을 어떻게 말했어요? 지난 번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지요.
5-1. 사띠의 역할에 대한 비유
제가 지금 김 법우님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은 김 법우님에게 눈을 뜬 것이지요. 이때는 (옆에 계시는) 이 법우님에게는 눈을 감은 거지요. 그러다가 이 법우님을 보면 이제는 김 법우님에게는 눈을 감은 거예요. 마음의 입장에서 눈을 뜬다 ∙ 안 뜬다 하는 것은, 어떤 대상을 선택했을까? 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감각하고 있는 대상 그 하나에만 눈을 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띠가 눈 뜨는 그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즉) 사띠가 작용하지 않으면, 정작 지금 나는 이 법우님한테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이 법우님하고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옆에서 김 법우님이 “스님 스님!” 하고 부르면 이 법우님과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상황을 놓치고, 김 법위님이 부르시는구나 하고 거기로 쫓아가지요. 그러면 지금 내가 중요한 의논을 해야 하는 이 법우님한테는 눈을 감아 버린 것이 되지요. 이것은 사띠 개념이 없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늘 그렇게 되지요.
그럴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사띠가 눈을 뜨게 하는 작용이라는 것은, 펑상시에는 김 법우님이 아주 좋지만 지금은 아무리 김 법우님이 좋다하더라도 내 마음이 김 법우님한테 가서는 안 되고, 이 법우님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때는 사띠라는 이 문지기가 ‘아니야, 지금은 (김 법우님한테) 가지마, 지금은 오직 이 법우님하고만 눈을 뜨고 있어야 해. 이 법우님만 붙잡아야 해.’ (라고 해야 하며), 이것이 눈 뜨게 하는 사띠의 기능이에요.
5-2. 사띠가 눈을 뜨게 한다
이런 의미가 있기 때문에 문지기가 사띠라는 것은, 이 사띠가 색성향미촉법 중에서 어떤 것이 여섯 개의 대문에 부딪쳐오면 부딪혀 오는 대로 다 “야, 이것들아.” 하면서 그것들을 다 붙잡아서 입장을 시켜줄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사띠는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 (하면서) 특히 사마타와 위빳사나라는 전령이 팔정도라는 길을 말달려서 오면 지체하지 않고 대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사띠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지요, 이 상황에서는.
그런데 이 문지기가 만약에 육외입처라고 하는 대상이 여섯 개의 문을 막 두들기는데 그것들을 쫓아가서 사띠가 움직인다면, 사마타 위빳사나라는 이 전령이 왔을 때는 문을 못 열어주지요. 이런 개념이지요.
그래서 사띠라고 하는 이 문지기는 외입처를 직접 보고 (그것을) 들여보낼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문을 열어가지고 ∙ 마노가 어떤 근하고 작용해서 필요한 문을 열어가지고, 거기로 필요한 사마타 위빳사나라는 이 전령을 받아들일까, 그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문지기인 사띠는 구체적으로 육외입처 자체를 판단하자는 이것이 아니라, 외입처라는 나의 대문이 지금 어떤 문은 열어놓고 어떤 문은 닫아놓음으로써, ‘야, 들어와야 하는 사람들은 다 이 문으로 들어와’(라고 하는 것이고),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문을 보고, 이 문은 마음의 눈이니까 특별한 문인데, ‘문아, 이제 알아서 열고 닫아, 어떨 때 열어야 되는지 어떤 때 닫아야 할지는 내가 도와줄게.’ 이렇게 (사띠는) 마음을 도와주는 것으로 대문을 통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하여간 이것이 어려운 비유에요. 그런데 표현하자면 낑수까나무가 완전히 만개한 상태의 (모습도 있었지요). (그리고) 완성된 상태의 가르침을 이 작은 비유로 부처님이 설명하시기 때문에 (이 비유를) 이해하는 자체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도 어쨌든 우리가 문자적으로는 다 풀었지요. 나중에 동영상을 통해 이 부분을 복습 좀 해보셔요. 잘 좀 들어보시면 지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설명이 될 것 같아요.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해요.
어쨌든 부처님이 완성된 형태의 비유로 알려주고 있는 거예요. 특히 ‘식은 일차인식에서 새끼쳐져 가지고, 이차인식에서 사마타 위빳사나 지혜와 함께 해서, 삶을 열반으로 향하게 하는 그 마음이다, 그 마음이 성주(城主)이다’ 라는 것(을 잘 보아야 하겠습니다).
(1시간 20분 1초 ~ 1시간 21분 30초)
6. 식은 물질과 함께 한다
여기서 참 또 봐야 하는 것이 있어요. 이 식이라는 것이 중앙 광장에 있는데, 중앙 광장이 무엇인가? 하니, ‘지수화풍 사대이다’라고 해서, 따지자면 사대조색인 몸이지요. 사대조색인 몸은 성(城)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 성의 중앙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지수화풍 사대가 있어요. 그러니까 지수화풍 사대는 요소 상태인 거잖아요. ‘요소 상태로의 지수화풍하고 새끼쳐진 식이 함께 있다’ 라고 하는 이 부분도 보아야 해요.
이런 개념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면 죽어가지고 다음 생으로 윤회할 때 어떤 형태로 가나요? 식만 가나요? 아니지요. 육계라고 하는 지수화풍공식, 여섯 개의 요소 상태가 간다고 나오지요. 그런 부분하고 좀 다 연결된 개념이 있어서 ‘식이 사대라고 하는 중앙 광장에 앉아 있다, 식은 이때에도 물질과 떨어진 형태로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개념을 함께 공부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 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