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호흡 준비 과정의 복습 조금
▣ 대념처경 - 신념처3[호흡수행 준비과정 복습](부산 수행 170613)
[동영상] ☞ https://youtu.be/qahZP1dcNA4
(13분 2초 ~ 20분 20초)
이때 생겨난 사띠의 역할은 사념처 수행의 두 측면입니다. ①전제 : ‘놓치지 않음’, ②기법 : ‘아-따-삐- 삼빠자-노- 사띠마-’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념처 수행은 이어보는 것, 놓치지 않는 것이 전제입니다. 그리고 둘째 기법이 ‘아-따-삐- 삼빠자-노- 사띠마-’입니다.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이어보며 머물러야 하는데, ‘놓쳤구나’ 라고 발견되면 되돌립니다. 어떤 방법으로? ‘아-따-삐- 삼빠자-노- 사띠마-’이지요. 이것이 전제에 이어지는 두 번째 기법입니다. 놓치면 되돌린다는 이것이 바로 하나의 대상, 기준점을 붙잡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붙잡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라는 부분까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띠의 역할은 호흡의 향상을 분명히 아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용하는 기법은 현상을 분명히 알기 위한 과정에서 조정되어야 합니다.
사띠가 생겨나서 오직 사띠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는, 이 준비과정을 마치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호흡 수행은 어떻게 해요? 바로 앞에서 본 것처럼 빠자나띠(분명히 안다)합니다.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고, 이렇게 빠자나띠합니다.
잘 붙잡는 일이 필요해서 붙잡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할까라고 했다면, 그 붙잡기 위해서 동원하는 방법을 끝까지 끌고 갈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붙잡는 일이 되면 그 다음에는 빠자나띠 분명히 알기 위한 상태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런 관계를 설명드렸지요.
그래서 이런 이해 위에서 수행의 과정은
1) 콧구멍 주위를 지향함,2) 사띠를 생겨나게 함,3) 사띠 하면서 들이쉬고 사띠하면서 내쉬기 위한 과정[욕탐의 활용에 의한 붙잡음],4) pajānāti 즉 잘 인식하기 위해서 욕탐을 가라앉힘의 네 단계로 설명하였습니다.
오직 사띠하면서 들이쉬고 오직 사띠하면서 내쉬자고 하면 어떤 형태로든 이 사띠가 떠나지 않게 호흡을 붙잡고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지요. 그런데 그냥은 되지 않으니까 어떤 방법을 씁니다. 바로 인식 과정에 간섭하는 욕탐이라는 것을 활용해요.
사실은 욕탐을 활용한다는 것이 이미 앞에서 나온 거지요. 사띠를 생겨나게 할 때 어떻게 했나요? 계속해서 기억하자라고 하는 이 사유를 욕탐에 실어가지고, 호흡 그 자리에서 얹혀줌으로써 사띠를 생겨나게 했잖아요. 그것도 어떻게 했나요? 욕탐이라는 것을 호흡보는 일에다가 끌고 들어와서 욕탐을 그냥 네 멋대로 작용하라고 하지 말고, 이어보자라고 하는 사유의 형태로 욕탐을 작용시켜 사띠를 생겨나게 했지요. 이것이 욕탐을 활용하여 사띠를 생기게 한 것이지요.
욕탐을 활용한다는 표현을 지난 번 수업 때부터 쓰고 있습니다. 욕탐이 간섭자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어떤 욕탐의 상태를 만들어서 간섭시키는가에 따라, 해탈된 삶에는 미치지 못해도, 지금보다 좋아지는 (그런 삶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겁니다.)
참고로 번뇌가 상(想)의 병든 상태라고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덜 병든 상태로만 상(想)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상이 나옵니다. (그리고) 니밋따라는 것이 외입처가 왜곡된 것이지만 그 왜곡된 상태를 조금씩 개선해가는, 순차적으로 향상하는 니밋따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욕탐이라고 하는 이것도 왜곡을 줄어들게 하기 위한 또는 하나의 대상을 붙잡기 위한 용도로 이 욕탐을 어떤 상태로 끌고 들어와서 간섭시킬 것인가 한다면, 이것을 욕탐의 활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요.
욕탐을 활용하여 사띠를 생겨나게 한 상태에서 이제 하나의 대상을, 공기가 남기는 느낌이라는 이 대상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 붙잡기 위해서 ∙ 이어보기 위해서 어떤 기법을 동원해야 할까? 라고 하면 이것은 욕탐의 활용입니다.
그렇게 욕탐을 활용하여 잘 붙잡았다고 하면 붙잡은 다음에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붙잡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고, 내가 붙잡은 이 대상이 일차적으로는 긴지 짧은지를 빠자나띠 하려고 붙잡은 것이지요. 즉 단지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빠자나띠하려니까 붙잡으려는 필요성이 있게 된 것이었지요. 따라서 붙잡는 데까지가, 오직 사띠하면서 들이쉬고 오직 사띠하면서 내쉰다는 여기까지가 붙잡는 것이고 준비과정입니다.
준비과정이후에는 빠자나띠한다는 이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오직 붙잡는 일로면 안주해서는 수행이 진행되지 못합니다. 이 개념을 잘 보아야 하겠습니다. 붙잡는 일을 해서 삼매에 갈 수는 있겠지만, 그 붙잡는 일 하나로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이르는 바른 삼매는 못 가는 거지요. 그런 측면 때문에 ‘4) pajānāti 즉 잘 인식하기 위해서 욕탐을 가라앉힘’(이 필요합니다.)
하여간 욕탐을 활용하여 붙잡았다면 그 다음 단계는 빠자나띠하기 위해서 그 욕탐을 가라앉혀주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다 썼으면 놓아주어라(는 말이 적절할까요?) 토사구팽이라고나 할까요? ...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