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낸 이야기 4 - 밭 갈고 씨 뿌린 뒤에
다성은 대학 1학년 때 철학개론을 들었습니다. 거기에서 사회학과에 다니는 한 학생을 만났는데, 이름을 학철이라고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다성이 학무동에서 빙청 선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했는데, 학철은 여름 방학 때 다성을 따라 학무동에 가서 빙청 선인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학철은 학우들로부터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학철이 서점에서 우연히 ‘숫타니파타’라는 책을 구입하고 나서부터는 주로 혼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구하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의니라'라는 말을 떠올리며 도(道)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학우들로부터 자신의 생활이 현실 도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학철은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다성을 만나 빙청 선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학철은 자신의 고민을 물어보고자 했습니다.
방학을 맞아 다성을 비롯한 친구들이 학무동으로 왔습니다.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권 부자에게도 인사드렸습니다. 권 부자는 쌀을 한 가마니 꾸려서 다성 편으로 천안계(溪)에 거처하는 빙청 선인에게 보냈습니다. 산을 올라가면서 자영과 학철은 철학의 깊은 뜻을 이야기하였고 친구들은 두 사람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빙청 선인과 제자들이 마당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불이가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다성은 지게의 쌀을 내려놓으며 빙청 선인과 불이와 다른 제자들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예를 갖추어 빙청 선인께 인사를 드리고 그 제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잠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다성이 학철을 데려 온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학철은 빙청 선인에게 질문했습니다. “저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무례한 말씀을 올리게 되었으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일을 해서 음식을 먹습니다. 그렇게 노동을 하고 나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손발을 움직여 노력하지 않고 남이 주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산 속에 있으면서 도(道)를 닦는 사람들도 남이 주는 것으로 살아갑니다. 농부들도 밭에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 여기 선인님과 제자분들께서도 직접 밭 갈고 씨를 뿌린 뒤에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온지요?”
그러자 불이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빙청 선인은 학철의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사회에서 사람들은 일을 하고 나서 음식을 먹습니다. 농부들도 밭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 그런데 나도 밭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말에 학철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선인님, 저는 여기 어디를 둘러보아도 농기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도 볼 수 없습니다. 선인님께서 밭 갈고 씨를 뿌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제가 알 수 있도록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빙청 선인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믿음’이라는 씨앗을 뿌립니다. 그리고 ‘여섯 가지 감관의 문’을 지키는 것으로 비를 삼아 씨앗을 싹틔웁니다. 소에 매는 멍에와 쟁기는 ‘지혜’입니다. 제부끄러움(히리)을 자루로 삼고, 뜻(意)을 끈으로 삼아 밭을 갑니다. ‘마음챙김(알아차림)이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입니다.
잡초를 제거할 때에는 몸을 수호하고 말을 수호하고 배에 들어가는 음식의 양을 아는 가운데, ‘진실’으로 낫을 삼아서 잡초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밭을 다 갈면 ‘온화함’으로 멍에를 내려놓습니다. 짐을 싣는 나의 황소는 ‘정진’인데, 이 노력(정진)의 힘은 속박에서 평온으로 이끕니다. 슬픔이 없는 곳으로 가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밭을 갈면 죽음을 넘어선 열매를 거두며, 이렇게 밭을 갈고 나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학철은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일하고 나서 먹는 것으로 알았는데, 빙청 선인은 학철이 알고 있는 그런 일과는 다른 일을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떨결에 학철은 절을 올리고 물러났습니다. 빙청 선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선택(도를 닦는 일)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불이의 마음도 밝아졌습니다.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인 학무동의 다성과 그 친구들, 그리고 학철과 다시 정겨운 마음으로 대화했습니다. 자영은 빙청 선인에게 나아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와 자신의 일상 생활을 들려주었습니다. 빙청 선인은 권 부자의 안부를 물으며 자영을 기쁘게 하고 분발하게 하고 격려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모두 돌아왔습니다. 학철의 마음도 편안해지고 있었습니다.